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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수업에 엄마 극한 스트레스···7세 아들에 닥쳤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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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아들의 숙제를 도와주던 어머니 A씨가 갑자기 극심한 스트레스 증세를 보이며 아들을 죽이려 했다. 아들은 겨우 몸을 비틀어 빠져나왔지만 30여분 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 B씨는 잠긴 방에 의식을 잃은 아내를 발견했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

“2020년 3월 학교가 문을 닫은 이후 일부 항목에선 우리의 우려보다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수학 과목의 경우 2019년 가을과 2020년 가을의 성취도를 비교했을 때, 전년 동급생보다 약 5~10% 낮았다.”(미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보고서)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의 장기화에 세계 각국이 우선 문을 닫아건 건 학교다. 자칫 집단감염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문제는 ‘비대면 수업’이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도, 학부모도 한계에 부딪히면서 곳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일사불란하던 각국의 대응도 엇갈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홍콩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을 두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코로나19가 홍콩인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며 “이 비극은 장기간 쌓인 스트레스가 무엇을 유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달 나온 미국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다룬 보고서는 또 다른 측면에서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후유증을 암시한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한 학교 교실에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학생들이 자신의 코 속에 직접 면봉을 집어넣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한 학교 교실에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학생들이 자신의 코 속에 직접 면봉을 집어넣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급격히 하락하는 학업성취도…저소득층에 더 큰 타격”

학생들의 ‘잃어버린 1년’을 눈에 보이는 수치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나 될까.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 재정연구소(IFS)는 코로나19로 반 년간 등교하지 못한 영국의 학생들이 평생에 걸쳐 3500억 파운드(약 533조원)의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선진국에서 한 해 교육을 받으면 개인 수입이 연간 약 8% 상승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결과다. 이를 근거로 IFS는 “학습 손실의 장기적 영향은 더디지만 상당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21일 독일 뮌헨 Ifo연구소에서도 “독일 내 온라인 수업이 2월 말까지 유지될 경우 학생들의 미래 수입이 평균 4.5%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손실액은 3조3000억 유로(4414조) 규모로 학생 수의 차이는 있지만 영국의 연구보다 약 9배의 손실이 더 발생할 것이라 내다본 것이다.

전체 수준의 하락보다 우려스러운 건 벌어지는 상대적 격차다. 학교의 공백을 사교육으로 보완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저소득층 간 격차가 유례없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IFS는 “교육 프로그램 예산을 대폭 확대하지 않는다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배경을 가진 계층의 자녀들이 집중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美“등교 재개”…英‧獨 “시기상조”

세계 등교 재개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세계 등교 재개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런 딜레마에 각국의 대응도 엇갈리기 시작했다.


누적 확진자 세계 1위인 미국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이후 ‘전면 등교’ 준비가 한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취임사에서 “안전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밝힌 뒤, 곧바로 등교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바이러스 접촉 추적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봉쇄 해제에 보수적인 방역전문가들까지 직접 나서서 등교 정상화 필요성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지난 29일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6000명 이상의 교사들과 화상 회의를 통해 “아이들의 이익, 부모의 이익,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학교에 돌려보낼 때까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에 이어 이탈리아‧루마니아‧스코틀랜드 등 각국에선 등교 재개를 시작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반면 영국과 독일 등은 여전히 등교 재개에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해 섣불리 등교 재개를 서두르다 재차 팬데믹이 시작되며 큰 혼란을 겪었던 탓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7일 학교 봉쇄 연장을 발표하며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의 좌절을 이해한다”면서도 “지금은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1차 확산 당시의 두 배에 달하는 환자가 입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30일 랄프 브링크하우스 독일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연합(CSU) 원내대표도 “차라리 지금 더 길게 더 강력한 조처를 하는 것이 왔다 갔다 해서 모두를 지치게 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로 16~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에 들어간 이스라엘도 아직은 등교 재개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CDC “학교가 더 안전”…“집단감염 우려 여전”

바이든 행정부의 등교 정상화 방안에 힘을 실어 주는 연구들도 발표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6일 “직원이 밀집해 있는 직장이나 공동생활 시설에서 자주 나타났던 가파른 확산이 학교에선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보건기구(WHO)도 “10세 이하 어린이의 경우 코로나19 감염의 감수성(질병 감염 가능성)과 감염력이 낮고, 전 세계 인구 중 어린이와 청소년 인구 비율이 29%지만, 코로나19 환자의 비율은 8% 내외 수준이었다”고 발표했다. 다른 연령보단 상대적으로 위험이 적다는 의미다.

등교 재개 여부 둔 전문가 입장.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등교 재개 여부 둔 전문가 입장.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하지만 이런 연구결과만으로 등교 재개가 순조롭게 이뤄지길 기대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학생만이 아니라 학부모와 가족, 교사 등 학교를 고리로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최근 세 번째로 큰 교육구인 시카고의 교사 노조가 교원들의 안전 문제로 출근을 거부하면서 10개월 만의 등교 재개는 불발됐다. 교사는 필수산업 노동자로 지정되지 않아 백신을 맞지 못한다는 불만에서다. 지난 29일 파우치 소장의 화상 대담도 이런 교사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집단감염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도 여전히 제기된다. 셀소 쿠냐 노바대 의료미생물학과장은 “확진자가 계속 발생하는 상황에선 학교뿐만 아니라 그 어떤 모임도 방역 시스템에 구멍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에반 앤더슨 에모리 의대 소아과 전문의도 현재 긴급 사용 승인을 얻은 백신 대부분이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한 점을 두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해 (백신의) 안정성과 효능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학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감염 위험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세계 각국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당장 새 학기 시작을 한 달 앞둔 우리 정부의 선택도 주목된다.

일단 정부는 오는 3월부터 초‧중‧고등학교 등교수업을 확대하겠다는 방향만 내놓은 상황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8~29일 수도권 지역의 교원‧학부모‧학생 1만여 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78%가 등교 확대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무증상 감염자 문제로 교사 감염 가능성이 있고, 최근 학교 내 집단 감염도 발생해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1년간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검토하되 이번 설을 기점으로 확진자가 늘어나는지 여부를 먼저 확인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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