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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도양 전략 vs 미국 인도태평양 쿼드, 미얀마서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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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는 2일(현지시간) 전날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에 대한 정부 차원의 원조를 중단하고 군부에 대한 제재 검토에 들어갔다. 이날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의장국인 영국은 쿠데타를 규탄하고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 등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의 구금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려고 했으나 중국이 “국내 문제”라며 반대해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다.

중국 ‘진주목걸이’ 수송로 확보 위해 #미얀마 군부 이권사업 지원해와 #세계 리더십 재확보 노리는 바이든 #“원조 중단” 꺼냈지만 실효성 의문 #수지는 ‘무전기 불법수입’ 혐의 기소

미얀마의 군사 쿠데타로 지정학적 요충지인 이 나라를 둘러싼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오랫동안 중국과 밀착했던 미얀마 군부가 다시 권력을 잡으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전략에 대한 미국의 고민도 깊어진다.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동남아시아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중국은 미얀마 쿠데타를 군부 지원의 기회로 여기고 있어 바이든 행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제재 카드를 들면 미얀마 군부가 중국으로 급속히 기울 우려가 커진다. 그렇다고 국제사회에 “미국이 돌아왔다”고 외친 바이든 행정부가 군부의 민주정부 전복을 방관할 수도 없다.

중국의 ‘인도양 진주목걸이 전략’과 원유·가스 수송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중국의 ‘인도양 진주목걸이 전략’과 원유·가스 수송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에 대해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의 김열수 안보전략실장은 “인권 대통령 이미지가 강한 바이든이 세계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선 미얀마 사태에서 물러서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의 장준영 연구원은 “미국이 제재하면 군부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에 더 매달릴 게 분명하므로 바이든 행정부도 적절히 수위 조절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이 미얀마를 통해 숙원인 인도양 진출로를 뚫으면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Quad: 미·일·호주·인도의 집단안보협의체)에 악재가 된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의 하나로 서남부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에서 미얀마를 관통해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철도·도로 건설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얀마 민주화에 관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지만 현 상황에선 군부 설득이 쉽진 않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인프라 건설 사업에 미얀마 군부의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장 연구원은 “중국은 군부의 비자금 마련을 비호해 왔다”며 “군부가 기본적으로 중국으로 기우는 건 전략적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미얀마 군부는 전역 군인들이 운영하는 국영기업 미얀마 경제지주공사(UMEHL)를 앞세워 보석·목재 등 알짜 사업에 손을 대면서 경제를 장악해 왔다. 군사정권 시절 군부가 국제 제재에 발목을 잡히자 중국이 나서서 이권 사업을 지원해 왔다.

중국은 미얀마 군부와 군사 협력도 추진해 왔다. 미얀마의 섬에 레이더 기지를 지어준 뒤 정보를 공유받아 미군과 협력하는 인도군의 동향을 살폈다는 의혹도 있다. 중국은 해양 수송로를 확보하는 ‘진주목걸이 전략’의 하나로 미얀마와 인도 동북부를 잇는 물류 거점인 시트웨항, 윈난성까지 연결된 원유·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시작 지점인 짜욱퓨항에 눈독을 들여 왔다. 미얀마에 중국의 경제적·안보적 이익이 걸려 있는 셈이다.

중국은 이들 거점 항구에 인민해방군 주둔을 원했지만, 미얀마 군부는 외국군 주둔을 금지한 헌법을 들어 이를 거부했다. 미얀마 군부가 중국과 협력하면서도 영향력 확대는 경계해 온 셈이다. 그 배경으로는 미얀마의 고질적인 소수민족 분쟁이 거론된다. 135개 민족·종족이 거주하는 미얀마는 1948년 독립 이후 계속 분쟁을 겪어 왔으며, 군부는 특히 동북부 국경지대인 샨주와 카친주의 무장 세력이 중국과 연계할 가능성을 경계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러한 경계심을 이용해 미안마 군부를 중국을 견제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미얀마 정부를 제재해도 효과는 미미할 전망이다. 2020 회계연도에 미얀마에 지원한 금액이 1억8500만 달러(약 2064억원)이고 그중 정부에 유입된 금액은 더욱 적기 때문이다. 제3국이 미얀마 정부·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면 현지에 투자한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기업도 타격을 입게 된다. 결국 미국의 미얀마 군부에 대한 압박 수단이 제한적이고,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도 중국의 견제에 막히면서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는 과거 오바마 시절 ‘당근(제재)과 채찍(대화)’ 전략으로 군부의 민정 이양을 끌어냈던 경험을 정책에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1월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은 미얀마를 방문해 민주화 일정을 지지하고 북한과의 군사 관계 단절을 촉구했으며, 2015년 총선 결과 수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집권했다.

한편 미얀마 경찰은 수지를 수출입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오는 15일까지 구금하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3일 보도했다. 군부 관계자들이 수지의 자택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휴대용  무전기(워키토키) 10여 개를 발견했는데, 이들 무전기가 불법 수입돼 허가받지 않고 사용됐다는 것이다. 수지는 유죄 확정 시 최고 3년형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수지를 옭아매려는 군부의 술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서울=김상진·박용한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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