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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최고의 득템은 이것…기념품을 위한 변명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31) 

기념품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 따르면 ‘기념으로 주거나 사는 물품’이라고 한다. 영어사전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여행에서 구입한 기념품은 ‘souvenir’이고 ‘어떤 일을 기념하기 위한 물품은 ‘memento’이다. 집 정리해 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나 같이 기념품을 집에 모시고 사는 사람을 맥시멀리스트라고 부르고, 될 수 있으면 버리라는 충고를 해준다. 오늘은 기념품을 위한 변명을 하고 싶다.

미술관의 경우는 기념품의 판매가 상당히 중요한 매출인 모양이다. 전시회를 보고 나면 출구 앞에는 기념품 매장이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내 주머니를 털어가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지만, 싫지 않다. 오히려 환영이다. 미술관 기념품 매장 구경은 마치 전시회 2부처럼 이어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많이 다녀본 것 처럼 말했지만, 사실 미술은 ‘젬병’이다. 유명하다는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을 한 시간 반 만에 다 봤다는 경험담으로 증명할 수 있을 듯하다. 이렇게 미술에는 조예가 없지만, 그림을 보고 크게 감동 받았던 경험이 있다. 근무했던 백화점에서 페르난도 보테로라는 콜롬비아 화가의 전시회를 주최했을 때의 일이다. VIP 고객 안내를 하던 중 ‘꽃 3연작’이라는 작품을 봤다. 하던 일도 잊고 한참을 서 있을 정도로 넋을 놓고 봤다.

처음으로 그림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재벌 정도 되어야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싸고 유명한 그림인 데다, 사람만 한 크기의 그림을 걸어둘 집도 없다. 엽서라도 찾아보려고 기념품 매장을 갔는데, 그곳에서 ‘꽃 3연작’의 아트 프린팅을 발견했다. 아크릴 재질로 A3 크기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다. 한 개에 거의 10만 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기억나는데, 그림이 3개니 결국 30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뭐가 씌었는지 충동구매 해버렸고, 현재 가장 잘 산 기념품이다.

직접 보면 더 감동적인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 [사진 Practica Espanol]

직접 보면 더 감동적인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 [사진 Practica Espanol]

이것처럼 득템했다고 생각하는 기념품도 많았지만, 대부분 미술관 기념품 매장에서 산 것은 사실 지금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른다. 전시회를 보고 나온 직후 여운에 젖어 샀던 도감은 대부분 책장을 장식하는 기념품이 되었다. 명화가 그려진 문구류나 우산 같은 것은 살 때는 멋져 보였는데, 쓸 때는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져 결국 그 쓰임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생 영화’라는 말처럼 보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 장르는 달라도 그런 여운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 사실은 빠져나오고 싶지 않다. 내게는 만화 ‘슬램덩크’가 그랬다. 아직도 명대사는 외우고 있고, 친구가 주인공의 유니폼을 선물로 줄 정도로 팬이다. 군 복무 중에는 주인공이 신는 농구화를 몇 달 치 월급을 모아서 샀고, 신발이 삭아 부스러질 때까지 기념품으로 십수 년간 애지중지 모시고 살았다.

즐겨보던 드라마가 종영할 때는 마치 하나의 세계가 끝나는 느낌이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과 ‘하얀거탑’이 끝날 때는 종영이 너무 아쉬워 레코드 가게에서 드라마 OST CD를 샀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OST를 들으며 여운을 달래고, CD 자체를 기념품으로 가지고 싶었다. 지금처럼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어도 드라마 OST CD를 샀을 것이다. 마치 아이돌 팬이 좋아하는 가수의 정규앨범을 굿즈처럼 수집하는 마음과 비슷할 것 같다.

영화의 경우는 포스터가 기념품 역할을 하는 것 같다. 2000년대 초반 사촌 형 방에는 영화 포스터가 액자에 걸려있었는데, ‘그랑블루’라는 프랑스 영화였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어렸던 내게도 그 포스터는 멋져 보였다. 몇 년이 지나 대학생이 되고 난 후 문득 생각이 나 영화를 찾아봤던 적도 있다. 당시 몇몇 영화의 포스터가 이런 식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레옹’, ‘프리윌리’ 등의 영화 포스터가 자주 보였던 기억이 있다.

영화 포스터는 좋은 인테리어 아이템이기도 하다. [사진 오늘의집]

영화 포스터는 좋은 인테리어 아이템이기도 하다. [사진 오늘의집]

여행 중에 사들인 기념품은 다른 기념품들과 다르게 컬렉션으로 모을수록 시너지가 나는 특징이 있다. 여행을 갔던 도시별로 기념품을 수집할 때, 이왕이면 같은 품목으로 사 모으는 게 좋다. 세계적인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의 도시별 머그잔을 모으던 동료가 기억난다. 본인이 못 가본 곳에 여행을 가는 사람이 있으면 머그잔을 사다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는데, 나중에 모아보니 꽤 멋진 컬렉션이긴 했다. 물론 다른 기념품에 비해 무겁고 깨질 염려가 있는데, 사실 운반에 고생을 했기에 더 아끼게 되는 것 같다.

도시별로 상징이나 명소를 담은 스노우 볼이나 마그넷도 좋은 기념품이다. 그러나 스노우볼 같은 경우 비행기를 타려다 검색대에서 빼앗기는 경우도 종종 있어 주의해야 한다. ‘I♥NY’ 같은 문구를 넣은 티셔츠도 재미있다. 좋아하는 디자인이라서 몇 개 도시별로 모았으나 흰색 의류이다 보니 얼룩 등 관리가 어려워 사 모으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I love NY' 티셔츠는 이젠 세계 각 도시 버전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사진 필웨이]

'I love NY' 티셔츠는 이젠 세계 각 도시 버전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사진 필웨이]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여행 기념품은 엽서다. 유명 관광지가 프린트된 엽서를 단순히 사 오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몇 자라도 적어 보내는 거다. 이십 년 전 아버지가 해외 출장을 갔을 때 국제우편으로 엽서를 보내주셨던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내와 연애 중에도 잘 활용했는데, 미국 여행 중 엽서를 사서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국제우편으로 보냈다. 봉투가 없는 엽서라 전달되는 과정에서 모든 분이 볼 수 있었는데,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큰 글씨로 사랑 고백을 써서 보냈다. 혹시 처가 식구들이 엽서를 전달해주며 먼저 보게 되면 점수 좀 딸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이것이야말로 가장 기념할 만한 기념품이 아닐까 싶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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