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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딸, 코로나 양성이면 어떡하나”…피말렸던 24시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77)

안동에도 한 태권도장에 코로나가 퍼져 어수선하다. 내 손자들은 학교수업 외엔 아무것도 배우러 다니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방학인데 코로나 때문에 놀이터도 못 가고 아파트에 갇혀 있으니 아이들보다 내가 더 돌아버릴 지경이야. 삼시 세끼 차려놓으면 멧돼지 때가 습격해 먹어치우는 것 같아. 어휴.” 상황이 상황인지라 내가 안부 전화하면 엄마 고생시킬 것 같아 외가에도 안 보낸다고 생색이다.

딸과 통화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손녀의 번호가 뜬다. “할머니 우리 좀 데리러 와 주시면 안 돼요?” 마치 포로수용소에서 구조 요청하듯 애틋한 목소리다. 어쩐지 모녀가 짜고 치는 고스톱 같지만 속아 넘어간다. 하여, 내가 쉬는 날 아침이면 아이들의 구조 전사가 되어 데리고 와서는 먹이고 놀리고 하룻밤을 재워 보낸다. 평화롭다.

딸과 통화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손녀의 번호가 뜬다. “할머니 우리 좀 데리러 와 주시면 안 돼요?” 마치 포로수용소에서 구조 요청하듯 애틋한 목소리다. [사진 pxhere]

딸과 통화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손녀의 번호가 뜬다. “할머니 우리 좀 데리러 와 주시면 안 돼요?” 마치 포로수용소에서 구조 요청하듯 애틋한 목소리다. [사진 pxhere]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을 받던 딸이 볼멘소리한다. “엄마, 나 코로나 검사받으러 가야 할지도 몰라.” 너무 놀라 “네가 왜?”라고 물으니 확진된 학생의 부모 한 분이 막내 손자가 다니는 센터 담임이랑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선생이란다. 그리하여 접촉자들이 줄줄이 소환되었는데 담임이 양성으로 나오면 딸은 1차 접촉자가 되어 검사대상이고 2차인 나도 대기자가 된단다.

공동 검사소가 된 근처 초등학교엔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고 입구엔 경찰과 코로나 의료진이 어수선하게 돌아다닌다. ‘접촉자가 양성이 나오면 삶의 굴레로 부딪혀 줄줄이 엮인 사람들은 또 무슨 부담인가?’ 반나절 사이에 평범했던 일상이 먹구름 낀 풍경이 된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셋째 녀석의 담임이 확진되면 딸아이와 셋째는 당연히 등하원시 날마다 접촉하니 불안하다. 그러면 다음이 나, 그러고 나면 또 나를 만난 사람들도? 마치 굴비 엮이듯 엮여 바이러스에 항복한 약한 존재가 된 모습을 상상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설마, 마스크 끼기를 생활화했는데, 아~ 아니네. 아이들과 집 안에 있을 때는 벗었네.’ 상상의 탑을 쌓고 부수며 멍하니 있는데 저녁 7시에 딸에게서 전화가 온다. “엄마,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이 담임 쌤 동료가 양성 나왔대. 그래서 지금 담임이 검사를 받았고, 그 접촉자인 나도 검사해야 한데.”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 야간에도 검사한다고 나오라 해 큰애들은 집에 있으라 하고 셋째랑 검사하러 가는 중이란다. 휴대폰은 이럴 때 필요한 거였다. 화상 전화로 집에 남은 아이들과 옆에 있는 듯 대화를 하며 아이들을 안정시켰다. 사돈도 지인들도 걱정이 되어 전화통이 불이 난다. 하루 사이에 마음은 지옥에 도착한다.

세 시간짜리 영화 두 편으로도 날짜가 안 바뀐다. 밤이 너무 길다. 요즘 머리도 자주 무겁고 몸도 피곤했는데 혹시? 딸 아이도 요즘 부쩍 피곤해하고 셋째도 미열이 있다고 했는데 혹시? 갑자기 코로나 증상이 나타난다. 불안감에 몸서리가 쳐진다. 남은 애들은 어떡하지? 1차 접촉자가 양성이 나오면 2차 접촉자는 음성이 나와도 2주 격리 후 재검해야 한다. 그러면 셋째의 담임 결과가 가장 중요하다. 잠을 잔 것인지 안 잔 것인지 머리가 터질 것 같이 무겁다.

대전의 한 코로나19 임시 선별진료소에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의 한 코로나19 임시 선별진료소에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다음 날 아침, 딸은 먼저 검사한 담임의 음성 판정 문자를 보내주며 긴장이 풀려 목이 멘다. 본인도 밤새 잠을 못 이룬 것이다.

“그래, 사서 걱정할 필요 있나, 마음의 여유도 능력이다. 양성이 나오면 또 그대로의 치료 방법이 있겠지. 기다려보자.”

담담하게 말해준다. 그래도 딸과 손자의 판정을 기다리는 피 말리는 기다림은 너무 지루하다. 시간을 죽이며 기다리기보단 일을 하자고 앞집의 소 외양간에 올라가 분뇨 청소를 거든다. 장화와 작업복을 입고 소똥을 치운다. 냄새에 절어도 초조한 기다림보다는 백배 낫다. 모호한 시간이 질서 있게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설명할 수 없는 심리다.

내가 가슴앓이 한 거는 알기나 할는지, 기다림에 지쳐 오후 7시가 넘어 딸에게 전화했다. “아직 연락 안 왔니?” “아~엄마, 5시쯤 둘 다 음성이라고 연락이 왔어. 너무 기뻐 어머님께 전화하고 이리저리 연락하고 애들 씻기고 밥 먹이고 음식물쓰레기도 버리고 이제 엄마에게 하려고 했지이. 엄마아~우리 모두 깨끗하니까 내일 놀러 가도 돼? 호호.” 아이고 정말 밉살스러운 딸이다. 친정엄마는 딸의 슬픈 소식은 가장 먼저 알고 기쁜 소식은 가장 늦게 받는다.

그래도 오늘 아침 마스크를 뒤집어쓴 채 잠옷 바람으로 달려온 손자들에다 혼을 내려다가 두 팔 벌려 꼭 안는다. 어제도 오늘도 평범한 일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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