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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리드는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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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부정행위 의혹을 받는 속에서도 우승한 리드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부정행위 의혹을 받는 속에서도 우승한 리드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패트릭 리드(미국)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달 31일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생긴 ‘무벌타 드롭 사건’과 관련해서다. 합리적 의문이 많다. 살짝 튕겼다가 다시 떨어진 공인데 "땅에 박혀 있었다"는 리드의 주장은 수긍이 안 된다.

이어지는 무벌타 드롭 사건 의혹 #의혹·동기·전과에도 물증이 없어 #‘교과서적 일처리’ PGA 평가 섬찟

경기위원이나 다른 선수에게 보여주지 않고 공을 집어 들어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혐의도 있다. 동기도 충분하다. 공이 있던 곳은 깊은 러프였다. 우승 경쟁 중이었기에 치기 좋은 곳으로 옮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전과도 있다. 리드는 2019년 벙커에서 연습 스윙하면서 공 뒤를 두 차례 쓸어냈다. TV 중계에 잡혀 벌타를 받았지만 “카메라 각도가 이상했다”며 잘못을 부인했다. 방송 해설자 피터 코스티스는 “리드의 라이 개선을 최소 네 번은 봤다”고 말했다.

리드가 이번에 부정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는 목격자를 6명이나 확보했다. 함께 경기 한 선수와 캐디, 자원봉사자에게 “공이 튕기는 걸 봤느냐”고 물었다. 모두 아니라고 했다. “튕기지 않았다”보다는 “못 봤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어쨌든 그는 목격자 발언 덕분에 경기위원으로부터 무벌타 드롭 판정을 받았다.

리드는 엄밀히 말하면 ‘무죄(innocent)’보다는 ‘유죄가 아니다(not guilty)’ 쪽이다. 심증은 있지만, 유죄의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호재도 있다. 로리 매킬로이가 같은 날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동료의 동의만 받고 경기위원을 부르지 않았다. 형식 면에서는 리드가 규정을 더 엄격히 지켰다. 그는 "매킬로이 건도 있으니 상황 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공이 박히지 않았고 나중에 발각될까 불안했다면 경기위원을 부르는 게 안전하다. 경기위원이 현장에서 결정하면 불가역적 최종 판결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확실한 안전판을 마련했다. 정직하게 경기하는 매킬로이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본다.

개연성이 낮은 일을 두 사람이 나란히 겪은 게 신기하다. 매킬로이에게 일어난 일이니 리드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셜록 홈스라면 개연성 낮은 일이 동시에 생길 경우 뭔가 있다는 의심을 할 것이다. (뒤에 자원봉사자가 매킬로이의 공을 실수로 밟아 박힌 것으로 드러났다.)

홈스라면 둘의 드롭 위치 차이도 주목했을 거다. 매킬로이는 원래 자리와 같은 깊은 풀 위에서 드롭했다. 공을 움직여 이득 볼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반면, 리드는 짧은 풀 위로 옮겼다. 공이 땅에 박히지 않았어도 옮기고 싶었을 거라는 의심은 타당하다.

물론 지금으로선 의심일 뿐이다. 같은 조에서 경기한 선수들이 왜 인터뷰를 거부했는지, 왜 리드에게만 이런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지 등에 의문이 생겨도 이제는 의미가 없다.

결론적으로 리드는 ‘유죄가 아니’고, 우승으로 사건을 덮어버렸다. 만약 그가 속였다면 알리바이를 많이 만들어 본 솜씨라고 추측할 뿐이다. PGA 투어는 “리드가 교과서적으로 일을 처리했다”고 평가했다. 이게 섬찟하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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