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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준다더니 쏘나타”…대기업 성과급 논란 불붙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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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M16 준공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날 최 회장은 직원들의 성과급 불만에 대해 "SK하이닉스에서 받은 보상은 SK하이닉스 구성원에게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사진 SK하이닉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M16 준공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날 최 회장은 직원들의 성과급 불만에 대해 "SK하이닉스에서 받은 보상은 SK하이닉스 구성원에게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사진 SK하이닉스]

“(회사에서) 제네시스를 준다고 했는데 통장에 찍힌 건 2000만원대 후반의 쏘나타였다.”

지난달 29일 성과급을 받은 삼성전자의 한 간부는 “‘진짜 승자’는 국세청 같다”며 심드렁했다. 회사에서 성과급으로 제네시스를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인 5000여 만원을 받았는데 세금·고용보험료 등을 떼고 나니 실제로 손에 쥔 소득이 줄었다는 뜻이다.

“제네시스가 쏘나타 됐다. 승자는 국세청”

이렇게 주로 직장인 사이의 화젯거리였던 대기업 성과급이 공론의 장(場)에 오르고 있다. 1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에서 받은 보수를 구성원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최근 SK하이닉스가 “초과이익분배금(PS)으로 연봉의 20%를 지급한다”고 공지한 뒤 직원들의 불만이 제기되자 기업 총수가 이례적으로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매출은 31조9000억원, 영업이익은 5조원이었다. 이에 대해 회사 노조를 포함한 직원들이 “2019년보다 영업이익이 두 배 가까이로 늘었는데, 성과급은 같다니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하면서 논란이 됐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2조71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는데, 당시엔 성과급 대신 미래성장특별기여금으로 연봉의 20%를 줬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최 회장이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며 “최 회장의 지난해 보수총액은 다음 달 말쯤 돼야 알 수 있으며, 그 전에 보수 반납 방법과 용처가 결정될 듯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로부터 2019년 30억원, 지난해 상반기 17억5000만원을 받았다.

논란이 확산하자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2일 사내 메시지를 통해 “올해는 구성원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다. 연중에 PS 예상 수준과 범위에 대해 소통을 확대하도록 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내부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사업에서 매출 72조8600억원, 영업이익 18조8100억원을 기록한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지난달 29일 임직원 5만여 명에게 연봉의 47%를 초과실적성과금(OPI)으로 지급했는데, 이는 영업이익의 8% 안팎으로 추정된다. OPI는 목표 이익을 넘어섰을 때, 초과이익의 20% 이내에서 연봉의 50%까지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중 무역갈등과 코로나19 등 불확실성 속에서도 역대 네 번째로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이 회사 직원 10만여 명은 연봉의 수십%를 성과급으로 받았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중 무역갈등과 코로나19 등 불확실성 속에서도 역대 네 번째로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이 회사 직원 10만여 명은 연봉의 수십%를 성과급으로 받았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연합뉴스]

올해는 ‘성과급 양극화’ 더 심해져

삼성전자의 고성장 비결로 성과급제 안착이 꼽히기도 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수익을 내면 함께 나눈다’는 메시지를 통해 직원들 사이에서 ‘월급 1~2% 올리려고 싸울 필요 없다. 그 시간에 일에 집중하자’는 성과주의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성과급이 반드시 사업부서나 개인의 실적만 따지는 것은 아니다. LG전자는 지난해 만년 적자에 시달리던 스마트폰(MC)사업본부 직원들에게 100만원씩을 지급했다. 격려금 성격이 짙은데, 재계에서는 LG 특유의 기업문화가 성과급에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한다.

올해는 성과급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코로나19 여파로 여행·항공·호텔 업계 등이 직격탄을 맞아 업종별 편차가 커진 탓이다.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반도체·가전, 가계 대출 증가와 ‘동학개미’ 효과로 은행·금융투자 업계 정도만 ‘훈풍’이 불고 있다.

“지금 같은 ‘깜깜이’ 산정방식 개선돼야”  

이번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에서 핵심 이슈는 ‘산정방식 공개’다. 이에 앞서 자신을 ‘4년차 직원’이라고 밝힌 SK하이닉스의 한 사원은 이석희 사장 등 임직원 2만8000여 명에게 e-메일을 보내 “성과급 산출방식과 목표를 달성하면 최대 몇%까지 지급 가능한지 공개해 달라”고 주장했다.

사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의 성과급 결정과정은 ‘깜깜이’에 가깝다. 주요 임직원들을 제외하고는 자세한 산정방식을 알지 못한다. 최태원 회장이 보수를 반납하겠다고 했지만 SK하이닉스 내부에서는 “해결책이 아니다. 실효성도 떨어진다”고 여론 비중이 높다.

전문가들은 성과급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의 불만을 명확히 표현하고, 디지털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MZ세대(1980년대 후반~200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직장생활을 본격 시작하면서 보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찬 서울대 경력개발센터장은 “지금 성과급 때문에 잡음이 나오는 회사들은 연말에 전체 마진을 정해두고 ‘얼마 나눠주고, 얼마 남기자’는 식으로 시뮬레이션한 듯한 인상”이라며 “(성과급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전에 기준이 공유되는 ‘룰 세팅’이 이뤄지고, 이에 따른 성과관리 체계가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승철 사람인 HR연구소장도 “성과급 지급에 따른 불만과 부작용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초기에 명확한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며 “또한 조직 관점과 개인 관점을 구분해 주기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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