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매력적이거나 재앙이거나…호불호 갈리는 이 위스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05)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피트(peat)’ 위스키. 소독약, 지푸라기 태우는 향, 스모키 등 다양하게 표현되는 이 위스키는 다른 술이 따라 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피트 위스키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석탄이 부족해 피트(이탄)로 건조 작업을 한 게 기원이란 말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어떤 이가 유럽을 떠돌며 피트를 전파했다는 설도 있다.

대표적인 피트 위스키 생산지는 스코틀랜드 아일라(Islay) 지역이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다른 지역도 피트 위스키를 만든다. 특히 피트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이는 스페이사이드(Speyside) 지역도 불과 몇십 년 전까지 피트 향이 담긴 위스키를 만들어왔다. 2차 세계대전 때 석탄이 부족해 맥캘란조차 맥아 건조에 피트를 사용했다는 건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1990년대 재오픈한 벤로막(Benromach) 증류소는 가벼운 피트향이 감돌던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를 재현해내고 있다.

벤로막(Benromah) 35년. [사진 김대영]

벤로막(Benromah) 35년. [사진 김대영]

주력제품이 피트 위스키가 아닌 증류소는 피트 위스키 전용 브랜드를 만든다. 토버모리(Tobermory) 증류소는 기본 제품에 증류소 이름을 쓰지만, 피트 위스키 제품엔 ‘르첵(LEDAIG)’이라는 이름을 쓴다. 에드라두어(Edradour) 증류소는 ‘발레친(Ballechin)’이라는 이름으로 피트 위스키를 출시한다. 증류소 이름으로 피트 위스키를 출시하면, 소비자가 혼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트향을 싫어하는 사람이 늘 마시던 위스키에서 피트향을 느끼는 건 재앙에 가깝다.

같은 에드라두어 증류소에서 만든 위스키지만, 피트 제품은 ‘발레친’이다.

같은 에드라두어 증류소에서 만든 위스키지만, 피트 제품은 ‘발레친’이다.

피트 위스키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증류소도 피트 위스키의 풍미에 욕심을 낸다. ‘글렌모렌지(Glenmorangie) 더 트리뷰트’는 글렌모렌지가 과거에 만들었던 가벼운 피트 향 위스키의 후속작이다. 글렌피딕(Glenfiddich)의 익스페리멘탈 시리즈 중에 ‘FIRE & CANE’이란 제품이 있는데, 흔치 않은 피트 향 입힌 글렌피딕 위스키를 블렌딩했다. 위스키의 여러 가지 향을 배합하는 마스터 블렌더에게 피트 향은 아주 매력적인 연구 자료임이 분명해 보인다.

글렌모렌지 더 트리뷰트.

글렌모렌지 더 트리뷰트.

많은 증류소가 대형 공장에서 피트 처리된 몰트로 위스키를 만든다. 그러나 발효와 증류 방식, 숙성 지역과 오크통 종류에 따라 맛과 향은 달라진다. 강하게 코를 찌르는 피트 위스키도 있고, 은은하게 다가오는 피트 위스키도 있다. 하나의 피트 위스키를 경험해보고 '나는 피트가 싫어'라고 단정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어릴 때 못 먹던 채소를 나이가 들면 음미하듯, 당장 피트를 견디기 힘들어도 언젠가 피트를 음미하고 있는 당신을 보게 될지 모른다.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