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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기주의·사재기…‘백신 민족주의’ 암초에 코로나 탈출서 좌초 위기

중앙일보

입력 2021.02.02 09:50

업데이트 2021.02.0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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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확보와 공급이 부자나라와 개발도상국간에 현저한 차이를 보이면서 ‘백신 격차’ 해소가 새로운 세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연합(EU)이 백신 공급 지연을 우려해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공장이 있는 영국을 압박하고 있지만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백신 접종은커녕 확보도 제대로 하지 못한 나라가 수두룩하다.

영국과 스웨덴 다국적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회 0.5m씩 주사한다. 사진 속 유리병에는 10회분인 5ml가 들어있다. AFP=연합뉴스

영국과 스웨덴 다국적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회 0.5m씩 주사한다. 사진 속 유리병에는 10회분인 5ml가 들어있다. AFP=연합뉴스

1억 접종시대…70% 집단면역 앞둔 나라도  

지난달 전 세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1억 명을 초과한 데 이어 이달에는 백신 접종자도 1억 명을 넘기게 된다. 1일 블룸버그 통신 집계로 전 세계 접종자는 9830만으로 1억 고지가 눈앞이다. 유엔이 집계한 전 세계 인구가 현재 78억 명이니 접종률은 7.53%다

코로나19 백신 접종하는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장. AP=연합뉴스

코로나19 백신 접종하는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장. AP=연합뉴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최고 의학자문역인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NIAID) 소장은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접종률이 70~90%에 이르면 집단면역이 형성된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를 60~70%로 봤다. 전 세계적으로 집단면역에 형성되면 정상생활 복귀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미국은 3억 3100만 인구에 현재까지 3180만 명이 1회 이상 접종해 9.75%의 접종률을 보인다. 현행 하루 135만 명의 접종 속도를 유지하면 222일이면 전체에, 140일이면 전체 70% 인구에 접종이 가능하다. 이르면 앞으로 5개월 정도 뒤인 6월 말쯤 집단면역 형성을 기대할 수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기 지난해 12월 19일 텔아비브 인근 시바 메디컬센터에서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백신에 대한 국민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네타냐후 총리는 백신 접종 과정을 생중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기 지난해 12월 19일 텔아비브 인근 시바 메디컬센터에서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백신에 대한 국민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네타냐후 총리는 백신 접종 과정을 생중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은 6790만 인구에 지금까지 937만 명이 맞아 접종률이 14.2%다. 하루 38만 명의 속도로 맞고 있으니 남은 인구의 70%에 접종하려면 100일쯤 걸릴 전망이다. 접종 속도가 세계 최고인 이스라엘은 866만 인구의 53.58%인 485만 명이 1회 이상 접종을 받아 접종률이 53.6%에 이른다. 하루 17만 명이 맞으니 1주일 남짓이면 전 인구의 70%가 접종받을 수 있다. 영국은 5월 초, 이스라엘은 이달 중 집단면역 단계에 이를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이에 비하면 뒤진다. 4억4600만 인구에 현재까지 1227만 명이 맞아 접종률이 2.76%이다. 하루 53만 명의 속도이니 70%가 접종받으려면 566일(1년 7개월)쯤 걸린다는 이야기다. 일부 회원국에서 관료주의 등으로 접종 속도가 더딘 데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출고가 지연되면서 백신 대란을 겪고 있다.

1억 확진 이어 이달 1억 접종 돌파
전 세계 62개국서 9830만 백신 맞아
미얀마·방글라데시·네팔서도 접종 시작
이스라엘 2월, 미 6월, 영 5월 집단면역
백신 확보·접종서 부익부빈익빈 심화
인도 22억, EU 14억, 미 10억 곳간에
개도국에 20억 공급할 코백스, 7억만
부자나라들, 경쟁적으로 백신 ‘블랙홀’
아프리카·아랍권·동남아 접근 어려워
백신격차, 향후 국제질서에 부정 영향
글로벌 난제로…인도는 백신 나눠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국가 전략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확보에 주력해왔다. 인구 13억의 인도는 지금까지 모두 22억 회분의 백신을 확보해 세계 최고 백신 보유국이 될 전망이다. 인도는 최근 이웃한 네팔, 부탄, 방글라데시, 미얀마와 인도양에 있는 몰디브와 세이셸과 백신을 나눴다. AFP=연합뉴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국가 전략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확보에 주력해왔다. 인구 13억의 인도는 지금까지 모두 22억 회분의 백신을 확보해 세계 최고 백신 보유국이 될 전망이다. 인도는 최근 이웃한 네팔, 부탄, 방글라데시, 미얀마와 인도양에 있는 몰디브와 세이셸과 백신을 나눴다. AFP=연합뉴스

백신 공급과 수요 불균형…현재 84억 회분 계약

하지만 여기까지는 부유하고 사회적 여건이 좋은 나라나 지역의 이야기다. 현재 전 세계 백신
접종 속도는 하루 420만 인분 수준이다. 이 속도라면 78억 세계 인구의 70%가 백신을 1회씩 접종받는 데 1833일(약 5년)이 족히 걸린다는 이야기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백신 공급 물량이 접종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84억9000만 회분에 해당하는 110건 이상의 백신 공급 계약이 이뤄졌다고 추정했다. 대부분의 백신이 2회 접종이니만큼 전 세계 78억 인구의 54%에 면역력을 제공할 수 있는 분량이다. 하지만 이 물량이 모두 긴급사용 허가를 받고 생산되고 공급되려면 2022년이나 그 뒤까지 기다려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백신을 통한 면역력 확보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더욱 문제는 백신 탐욕이다. 백신을 부자나라나 큰 나라, 생산기지(위탁 포함)를 끼고 있는 국가가 독점하다시피 한다. 일부 국가는 아직 긴급 사용허가도 받지 못한 품목을 포함해 인구의 몇 배나 되는 물량을 확보하면서 글로벌 백신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이하 단위는 회분)

백신 공평 분배를 위해 활동하는 코백스 사이트는 엄마와 아기의 사진으로 시작한다.백신은 인류의 생존과 건강을 보장하는 필수재라는 이상을 주는 이미지다. [코백스 홈페이지]

백신 공평 분배를 위해 활동하는 코백스 사이트는 엄마와 아기의 사진으로 시작한다.백신은 인류의 생존과 건강을 보장하는 필수재라는 이상을 주는 이미지다. [코백스 홈페이지]

인도 22억, EU 14억, 미국 10억…공평분배 코백스 고작 7억  

전 세계 백신 곳간의 사정을 살펴보자. 인구 13억의 인도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를 각각 10억씩, 가말레야(스푸트니크V) 2억 등 모두 22억을 확보했다. 인도는 백신 위탁생산 공장을 운영한다. 4억4600만 인구의 EU는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사노피·GSK 백신을 각 3억씩, 큐어백 2억2500만, 존슨&존슨 2억, 모더나 8000만 등 모두 14억500만을 공급받기로 했다.
미국도 아스트라제네카 3억, 모더나와 화이자 각각 2억, 노바백스 1억1000만, 존슨&존슨과 사노피·GSK를 각 1억씩 등 모두 10억1000만을 확보했다. 3억3100만 인구를 감당하고 남는 물량이다.
6800만 인구의 영국은 자국에 공장에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1억을 비롯해 노바백스와 사노피·GSK, 발네바를 각 6000만씩, 화이자 4000만, 존슨&존슨 3000만, 모더나 1700만 등 모두 3억6700만을 들여올 예정이다. 인구 3760만의 캐나다도 7종류의 백신 2억3400만을 도입할 계획이다.
국제적으로 공평한 백신 분배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코백스 퍼실리티는 아스트라제네카 3억, UBI 2억, 사노피·GSK 2억 등 모두 7억을 확보했다. 올해 말까지 공급 목표인 20억에는 한참 모자란다. 돈도, 네트워크도 여의치 못한 대부분의 개도국이 코백스에 매달리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로고. 사진=아세안 홈페이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로고. 사진=아세안 홈페이지

전 세계 62개국 접종…대부분 부자 나라

현재 접종 상황을 봐도 글로벌 백신 격차가 확연히 드러난다. 블룸버그 조사에 따르면 현재까지 최소 62개국이 백신 접종에 들어갔다. 지난주에는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네팔·부탄·몰디브·세이셸이 인도의 백신 지원을 받아 접종에 들어갔다. 부유한 북미와 유럽 지역을 제외한 접종국은 많지 않다. 주요 지역연합 단위로 접종 현황을 살펴봤더니 상황이 심각하다.
22개 회원국 전체 인구가 4억2300만 명에 이르는 아랍연맹(AL)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쿠웨이트·오만·이집트의 6개국만 접종하고 있다. 이집트 말고는 모두 부유한 산유국이다. 아랍연맹은 언어와 종교에서 동질성이 강하지만 경제력과 백신 접종에선 평등과 거리가 멀다. 아랍연맹의 평균 1인당 GDP는 2020년 추정치로 4200달러다.

아프리카연합 로고. 사진=아프리카 연합 홈페이지

아프리카연합 로고. 사진=아프리카 연합 홈페이지

아프리카 국가들, 백신에서 소외 

13억 2100만 인구의 55개 회원국으로 이뤄진 아프리카연합(AU)에서 접종국은 아랍연맹 회원국이기도 한 이집트를 제외하면 기니·세이셸이 고작이다.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접종국인 기니는 러시아의 가말레야(스푸트니크V) 백신을 55명에게 접종했을 뿐이다. 세이셸은 인도양에 있는 인구 8만의 작은 섬나라로 인도의 백신 지원을 받았다. 아프리카연합은 평균 1인당 GDP가 2200년 추정치로 1958달러다.
10개 회원국의 총인구가 6억6100만에 이르는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에선 싱가포르·인도네시아에 이어 인도의 지원을 받은 미얀마가 접종에 들어간 정도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조만간 접종을 시작한다. 아세안의 평균 1인당 GDP는 5017달러다.
자료를 공개한 국가 중 백신 계약량을 살펴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랍연맹에선 이집트(61%)·바레인(36%)·아랍에미리트(36%), 아세안에선 인도네시아(50%)·말레이시아(46%)·필리핀(36%)·베트남(21%), 아프리카연합에선 남아프리카공화국(6%)·민주콩고공화국(10%)이 고작이다. 나머지 국가는 5% 미만이다. 접종 국가 중에서도 싱가포르·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방글라데시·기니 등은 현재 확보율이 5%를 넘지 못한다. 백신 확보에는 경제력과 함께 정보력, 외교력, 행정력이 동시에 필요함을 보여준다.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앞날을 내다보는 비전과 리더십도 필요할 것이다.

글로벌 백신 격차 극복할 다자외교 필요  

글로벌 백신 격차는 경제 격차, 디지털 격차에 못지않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제질서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를 해결할 국제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코로나19를 이기려면 전 세계가 집단 면역을 확보해야 한다. 특정 국가나 지역만 집단 면역을 회복해선 정상화가 힘들다.  해외여행이나 교류 없이 국가나 지역 내에서만 정상을 회복하는 것은 코로나 극복의 의미가 없다. 전 세계가 열려 있는 글로벌 시대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백신 격차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제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할 문제로 떠오른다. 특정 국가의 인도주의적인 조치에 의존할 수도 없다. 국제기구나 연합체에서 다자 외교로 풀 과제다. 그래도 이런 시대에 자국 백신 물량의 일부를 국경이 맞닿거나 인도양에 있는 일부 국가와 나눈 인도는 돋보일 수밖에 없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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