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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허탕치고 돌아오는 길에…원정 근로 中동포 ‘승합차 참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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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건설 현장 잡부 일당 13만원인데…’

중국 국적의 외국인 근로자 10명과 한국인 2명 등 12명을 태운 스타렉스 승합차는 1일 오전 세종시 연서면을 출발했다. 차량이 향한 곳은 전북 남원시에 있는 건설 현장이었다. 거리상으론 170㎞, 이동하는 데만 2시간가량이 걸리는 곳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외국인 입국 중단 여파도

 스타렉스 승합차에 몸을 실은 중국인 근로자 10명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일당을 받는 일용직 근로자였다. 통상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잡부와 전문직으로 기술과 경력 등에 따라 13만~23만원의 일당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비 때문에 일이 취소되자 돈을 벌지 못한 채 숙소가 있는 세종시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고는 이날 오전 8시21분쯤 대전 유성구와 세종 금남면 경계인 당진∼영덕고속도로 당진 방향 남세종IC(당진기점 85㎞ 지점)에서 발생했다. 스타렉스 승합차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IC를 돌다 도로변 왼쪽에 설치된 하이패스 안내 표지판 기둥을 들이받은 후 무게 중심을 잃고 전복됐다. 이 사고로 차량에 타고 있던 7명이 숨지고, 동승자 5명이 다쳤다. 이 중 2명은 중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탑승자들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 인명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 찾아 원정’ 또 외국인 근로자 수송사고

1일 오전 8시21분쯤 대전 유성구 안산동 부근 당진~영덕고속도로 남세종 나들목에서 스타렉스가 전복돼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 한국도로공사]

1일 오전 8시21분쯤 대전 유성구 안산동 부근 당진~영덕고속도로 남세종 나들목에서 스타렉스가 전복돼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 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사고가 난 스타렉스는 이날 오전 4시51분 남세종IC에 진입해 오전 5시51분 오수IC을 빠져나갔다. 당시 평균속도는 120㎞였다. 이후 비 때문에 일이 취소되자 오수IC에 오전 7시13분에 진입해 남세종IC를 오전 8시21분에 통과했다. 이때 평균속도는 106㎞였다.

 경찰은 사고가 난 곳이 출구 램프 구간으로 제한 속도가 시속 40㎞였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사고 차량이 앞차를 추월하며 IC로 과속 진출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TV(CCTV) 영상도 분석 중이다. 경찰은 CCTV 녹화 영상과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 “안전벨트 매지 않아 인명 피해 커” 

1일 오전 8시21분쯤 대전 유성구 안산동 부근 당진~영덕고속도로 남세종 나들목에서 스타렉스가 전복돼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최종권 기자

1일 오전 8시21분쯤 대전 유성구 안산동 부근 당진~영덕고속도로 남세종 나들목에서 스타렉스가 전복돼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최종권 기자

 인력 공급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고가 ‘무리한 원정 근로’가 부른 비극이라는 입장이다. 통상 자치단체에 등록된 인력사무소의 경우 광역자치단체의 경계를 넘는 곳까지는 인력을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시에 있는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자치단체에 등록된 업소의 경우 통상 20~30㎞ 내에 있는 현장으로 일용직 근로자를 보낸다”며 “이번에 사고가 난 곳처럼 미등록 업소들의 경우는 타지역의 건설현장까지 원정 근로를 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국내 건설 및 농촌 인력시장이 외국인 위주로 변화하면서 원정 근로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인 근로자를 찾는 현장은 많은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외국인의 입국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국내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장거리 원정에 나선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외국인들의 추가 입국이 막히면서 기존 국내에 있던 외국인들이 먼 거리까지 원정을 다니는 일이 잦아진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근로자를 태우고 원정 근로를 가던 중 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7월에도 외국인 근로자 9명 등 총 16명을 태운 그레이스 승합차가 충남 홍성에서 경북 봉화군에 있는 쪽파밭으로 ‘원정 밭일’을 가던 중 강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산악지대에서 가드레일 들이받고 전복됐다.

 당시 사고로 4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2명은 외국인 근로자였다. 홍성군에서 봉화군까지는 자동차로 4시간가량이 걸리는 250㎞ 거리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무리한 원정에 나선 것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전·세종=김방현·신진호·최종권·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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