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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이러다 중국에 서해 다 뺏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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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영토 수호는 국민의 생명 보호만큼이나 중차대한 국가의 책무다. 그런데도 모르는 새 우리의 하늘과 바다가 유린당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7일엔 묻혔던 불편한 진실이 튀어나왔다. 중국 군함이 지난해 말 한국 쪽 바다로 10㎞나 침범, 백령도 40㎞까지 왔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하루 전인 2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이런 덕담을 했다. “중국의 국제적 지위와 영향력은 나날이 강해졌다”고.

중 군함, 갈수록 해상 경계선 무시 #“서해 전체의 71%가 중국 몫” 주장 #한·미 동맹, 비대칭 전력 활용해야

중국이 대놓고 해상 경계선을 무시하는 건 어제오늘이 아니다. 하지만 갈수록 도를 넘는다. 중국 군함의 한반도 인근 출몰은 2016년·2017년 각 110여 회에서 2018년 230여 회, 2019년 290여 회로 확 뛰었다. 지난해는 8월 말로 170회를 넘었다. 바다뿐이 아니다. 중국 군용기의 한국 하늘 유린도 심해지긴 마찬가지다. 지난 3년간 60번 넘게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넘었다고 한다.

이런 무도함엔 영토적 야심이 깔려 있다. 2004년 중국 입장을 대변해 온 신화사의 주간지 ‘료망동방주간(瞭望東方週刊)’엔 이런 글이 실렸다. “한국 논리대로 35만㎢의 서해를 등거리선 원칙대로 나누면 절반인 18만㎢가 남북한으로 넘어가 분쟁 소지가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중국이 25만㎢ 해역을 차지해야 한다.” 이는 서해 전체의 71%로 터무니없는 요구다. 중국 측 궤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상 경계를 인구와 경제 규모까지 고려해 정해야 한다”는 해괴한 주장도 나온다.

이 같은 중국의 ‘서해공정’은 2012년 시 주석이 해양강국 건설을 외치면서 본격화했다. 2017년 그가 또다시 해양강국 가속화를 주문하자 중국 측 침범은 심해졌다. 여기에 최근 미·중 간 갈등이 격화하면서 서해 침범은 더 잦아졌다고 한다. 미국의 대중 포위망에서 한국은 빠지라는 무력시위인 셈이다.

중국의 침범은 한국뿐이 아니다. 대만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 24일엔 중국 군용기 15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을 넘나들었다. 지난해에는 380번 이상의 ADIZ 침범이 이뤄졌다. 중국 군함의 해상 경계선 무시 역시 부지기수다.

하지만 양국의 대응은 확연히 다르다. 한국은 대충 넘겨온 반면 대만은 큰소리를 내며 의연히 맞서 왔다. 대만은 대규모 침범이 자행될 때마다 군·외교부 또는 총통부에서 비판 성명을 냈다. 심지어 주미 대사는 기고와 인터뷰를 통해 중국을 규탄하며 미국 측 도움을 구했다. 이에 미 국무부는 지난 24일 “중국은 대만을 겨냥한 군사적 압박을 멈추라”는 성명으로 화답했다.

우리도 대만처럼 한·미 동맹의 힘을 빌려 중국의 해상·공중 침범을 막아야 한다. 그냥 두면 관례로 굳어 언제 자기네 바다라고 우길지 모른다.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강국과 힘을 합쳐 옆 나라를 견제한다는 건 옛 중국에서만 통하는 지혜가 아니다. 옆 강대국 중국과는 영토·자원 등을 놓고 다퉈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토대로 중국에 맞서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특히 미국 편에 서지 말라고 위협하면 할수록 한국은 한·미 동맹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중국에 주지시켜야 한다.

안으로는 중국의 침범에 단호히 맞설 수 있게 힘도 길러야 한다. 물론 총체적 전력으론 상대가 안 된다. 하나 ‘고슴도치 전략’이라는 게 있다. 맹수도 이 작은 짐승을 만만히 보고 덤볐다가는 가시에 찔려 치명상을 입는다. 대만도 중국이 쉽게 침략하지 못하도록 독침 같은 비대칭 전력 개발에 온 힘을 쏟는다. 대만과 미국은 비대칭 전력 구축을 위한 ‘연합특전지휘부’ 설치도 검토했다.

우리 역시 중국의 위협에 맞설 비장의 비대칭 전력을 마련해야 한다. 언제까지 중국이 누르면 눌리는 신세로 살 건가. 크림전쟁을 앞두고 19세기 영국의 존 러셀 총리는 이렇게 역설했다. “명예롭게 지켜지지 못하는 평화는 더 이상 평화가 아니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