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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익의 이코노믹스

거의 모든 지표가 2000년, 2008년 거품 붕괴 전과 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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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표로 분석한 미국 증시 거품 논쟁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올해 들어서도 미국 주요 주가지수가 거침없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증시 거품 논쟁도 가열되고 있다. 거품이 꺼지면 부채 문제가 함께 드러나면서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투자자는 늘 “주가 합리적” 판단 #그러나 지표로는 거품 징후 뚜렷 #S&P500 기준은 45% 과대 평가 #거품 초래한 환경 달라지면 위험

하지만 그 시점을 누가 알겠는가. 금융시장에서 거품은 사전적으로 진단할 수 없고 꺼지고 나서야 그때가 거품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주식 시장에서는 거품을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투자자마다 기대하는 가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에서 ‘미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투자자들은 누구나 자신이 추정하는 가격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이런 낙관적 기대를 객관화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를 이끄는 레이 달리오는 거품 여부를 판단하는 일곱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가격이 전통적 척도보다 높은가? 가격이 미래의 이익을 과대평가하고 있는가? 투자자들이 높은 레버리지를 활용하여 자산을 매입하고 있는가? 투자자 혹은 기업이 미래를 과다하게 사고 있는가? 시장에 신규 참여자가 늘고 있는가? 시장에 낙관적 분위기가 팽배한가? 통화정책 긴축 리스크가 거품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가?

달리오가 이런 기준에 따라 과거 10번의 주요 경제(금융) 위기 사례를 분석한 것을 보면 예외 없이 위기 전에 자산 가격이 전통적 척도보다 과대평가 되었고,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자산 가격이 급등했다. 또한 그는 대규모 차입에 의해서 자산이 매수되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가계 자산 중 주식비율 50% 도달

김영익의 이코노믹스 그래픽=신용호

김영익의 이코노믹스 그래픽=신용호

주식시장의 거품 여부를 판단하는 전통적 척도 가운데 하나가 주식 시장 시가총액을 명목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버핏지수’다. 시가총액은 어느 시장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여기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자금순환에서 각 경제주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모두 합한 것을 시가총액으로 정의했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3분기 현재 버핏지수가 270%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952년 이후 장기 평균인 106%, 2000년 이후 평균인 176%보다 훨씬 높을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혁명 거품이 있었던 2010년 초 210%를 크게 웃돌고 있다.

또 다른 전통적 척도가 주가수익비율(PER)이다. 미국의 대표적 주가지수인 S&P500 PER가 1월 현재 39로 장기평균인 16보다 2배 이상 높다. 기업 수익보다 주가가 지나치게 올랐다는 의미다. 미국의 산업생산, 소매판매, 고용 등 주요 거시경제 변수로 S&P500의 적정 수준을 판단해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45% 정도 주가가 과대평가되었다.

과열상태 보여주는 버핏지수

과열상태 보여주는 버핏지수

미국 투자자들이 빚내서 주식을 사고 있는 것도 거품 징조일 수 있다. 주식 신용대출(Margin debt)이 지난해 11월 말 7221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3월 말 저점 이후 67% 늘었는데, 8개월 사이에 50% 넘게 증가한 적은 정보통신 거품이 붕괴했던 2000년 3월, 2008년 금융위기를 앞둔 2007년 6월 이후 처음이었다.

주가 상승으로 지난해 9월 말 현재 미국 가계 금융자산(98조 7130억 달러) 가운데 주식 비중이 50%까지 올라가 196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식 비중이 2000년 3월 48%에 이어 2007년 6월에도 48%를 기록한 다음에 주가가 급락했었다. 요컨대 거의 모든 지표가 2000년, 2008년 거품 붕괴 전의 모습이다.

거품이 발생했다고 당장 붕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품을 초래했던 요인이 변하면 거품이 꺼질 수 있다. 그중 하나가 금리일 것이다. 2008년, 2020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Fed는 초저금리와 더불어 양적 완화를 통해 시장금리를 낮은 수준에서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 대표적 시장금리인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이 오르고 있다. 지난해 3월 0.5%까지 하락했던 시장금리가 올해 들어 1.1%를 넘어섰다. 미국 경제 여건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와 시장금리 상승이 불안 요인

우선 올해 미국 경제가 회복될 전망이다. 지난해 -3.5%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한 미국 경제가 올해는 4% 안팎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인다. 시장금리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소비자물가상승률도 지난해 1.3%에서 올해 2%를 훨씬 웃돌 전망이다. 바이든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도 시장금리 상승 요인이다. 바이든 정부는 ‘중산층 회복을 통한 안정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매수도 줄어들고 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미국과의 교역에서 5조 4283억 달러 흑자를 냈다. 이 돈 일부로 미국 국채를 사주었다. 그러나 중국의 미 국채 보유금액이 2013년에는 1조 2700억 달러를 정점으로 지난해 10월에는 1조 540억 달러까지 줄었다.

주식비중 50%로 높아진 금융 자산

주식비중 50%로 높아진 금융 자산

장기적으로 시장금리는 명목 경제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1970~2020년 국채수익률과 명목성장률이 연평균 6.2%로 같았다. 미국의 잠재적 명목 경제성장률은 3% 정도로 추정된다. 이를 고려하면 현재 1%대 초반의 금리는 지나치게 낮다. 빠르면 올 연말이나 내년에는 2%를 넘어서면서 적정 수준에 접근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식 시장이 조정을 거치거나 거품이 붕괴할 수도 있다.

금리 상승과 주식시장 거품 붕괴는 누적된 부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2008년 이후 두 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부채가 급증했다. 2020년 3분기 현재 민간과 공공 부문을 합한 총부채가 90조 2741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53조 9780억 달러)에 비해서 67%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민간 부문(가계·기업·금융) 부채는 42% 늘었으나, 공공 부문 부채가 무려 192%나 급증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대비 총부채도 같은 기간 368%에서 427%로 증가했다.

극단적 상황일 수 있지만, 주식시장 거품이 붕괴하고 부채 문제가 드러나면서 실물경제도 극심한 침체에 빠질 수 있다. 문제는 쓸 만한 무기가 별로 없다는 데 있다. 다시 정부가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운용하겠지만, 정부 부채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민간 부문의 부채도 매우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통화정책에도 한계가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실수를) 반복할 뿐”이라고 했다. 주식시장에서 거품이 생겼다가 꺼지는 현상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낙관적 투자 심리가 언제든 비관적으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투자자의 성공 스토리를 단숨에 역전시킬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면서 동시에 비관적이어야 주식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다.

주식시장의 거품과 붕괴는 늘 반복된다

한국 주식 시장의 경우도 거품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따르면 정도는 다소 약하지만 미국과 유사하다. 지난해 말 버핏지수가 103% 정도로 사상 처음으로 100%를 넘어섰다. 2000~2019년 평균이 66%였다. 주가지수와 상관관계가 가장 높은 일평균 수출액과의 괴리도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보면 30% 이상 벌어졌다. PER도 과거 평균보다 50%가량 높다. 신용융자도 최근 21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어디 가나 주식 얘기를 할 만큼 시장에 대한 낙관적 분위기가 팽배하다.

주가는 장기적으로 명목 GDP 이상으로 오른다. 구조적으로 우리 경제가 저금리 상황으로 접어들었고 주식의 배당수익률이 은행 이자보다 높아진 만큼 금융자산의 일부를 주식에 배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타이밍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우량주를 제외하고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 비중을 좀 낮추는 게 좋을 것 같다. 특히 거품이 더 심하고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에 취약한 미국 주식 비중은 줄이고, 이에 덜 취약한 중국 등 일부 아시아 비중을 상대적으로 더 늘리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다가올 인플레이션을 고려해 물가연동채와 금 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