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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규모도 사업비도 모르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깜깜이 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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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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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 강서구 가덕도의 대항전망대를 방문해 신공항 부지를 살펴보고 있다. 민주당은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2월 중에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국민의힘도 부산시장 선거 판세가 어려워지면서 가덕도에 힘을 실으려는 움직임이다. [중앙포토]

지난달 2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 강서구 가덕도의 대항전망대를 방문해 신공항 부지를 살펴보고 있다. 민주당은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2월 중에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국민의힘도 부산시장 선거 판세가 어려워지면서 가덕도에 힘을 실으려는 움직임이다. [중앙포토]

4월에 치러질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가덕도신공항’ 이슈가 뜨겁다. 현재로썬 여당이 덕을 보는 듯싶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1월 17일 총리실 김해신공항검증위원회가 사실상 백지화로 해석되는 “근본적 검토 필요”라는 결론을 내린 지 9일 만에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는 특별법을 발의했다. 내친김에 2월 중 법안 통과를 공언한다.

부산시장 선거 노린 여당 “2월 처리” #야당도 판세 만회하려 동조 나서 #법안엔 규모와 사업비 등 모두 미정 #“예산낭비 우려, 논의와 검증 필요”

국민의힘도 부산지역 의원들이 비슷한 특별법을 엿새나 먼저 발의했지만, 내부 의견이 갈리면서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최근 판세가 심상치 않자 뒤늦게 가덕도에 힘을 실으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이런 상황을 미뤄보면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은 어렵지 않게 통과될 듯하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해당 법안을 찾아봤다. 여당이 발의한 법안명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촉진 특별법’이고, 야당은 ‘부산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다. 24시간 운영 가능한 여객·물류 중심의 남부권 관문공항을 가덕도에 건설하라는 게 요지다. 가급적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해주라는 조항도 있다. 앞서 2011년 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조사에서 가덕도(0.7)와 밀양(0.73)은 예타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인 경제성(B/C)이 1.0에 못 미쳐 탈락했다.

그런데 법안에는 어떤 규모로, 얼마를 들여 공항을 지으려는 건지 언급이 없었다. 여당 법안에 첨부된 문건 하나가 눈에 띄었다. ‘비용추계서 미첨부 사유서’로 국회 예산정책처가 작성했다. 국회법상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의안을 발의할 때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곤 소요 비용에 관한 예산정책처의 추계서를 제출토록 돼 있다.

사유서를 열어보니 비용추계서가 없는 이유가 이렇게 적혀 있었다. “현시점에서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공사의 구체적인 규모 및 향후 공항 건설 지역에 입주하는 외국인투자기업의 규모 등을 예측하기 어려워 추가재정소요를 합리적으로 추계하기 어렵다.” 그러면서 예외 규정 중 하나인 “의안 내용이 선언적·권고적인 형식으로 규정되는 등 기술적으로 추계가 어려운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부울경에서 구상하는 가덕도신공항 조감도. 활주로는 3500m짜리 하나다. [사진 부산시]

부울경에서 구상하는 가덕도신공항 조감도. 활주로는 3500m짜리 하나다. [사진 부산시]

선언적·권고적인 법안이란 표현을 뒤집어 보면 사실상 ‘깜깜이’란 의미다. 24시간 운영 가능한 관문공항이라는 선언적 규정만 있을 뿐 사업 규모·사업비 등 주요 사항은 모두 미정이다. 급한 대로 입지만 가덕도로 해놓고, 나머지는 추후 정하자는 얘기인 셈이다. 선거를 의식해 급조한 특별법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가덕도공항을 요구해온 부산·울산·경남(부울경)에서 자체 조사한 자료는 있다. 1단계로 3500m짜리 활주로 하나를 놓고, 전체 공항 부지(598만㎡)의 43%를 바다를 메워서 조성한다고 돼 있다. 여객처리용량은 연간 3500만명이며, 추정 사업비는 7조 5400억원이다. 필요한 경우 바다를 더 메워 확장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2016년 프랑스의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 평가’ 때 가덕도공항의 사업비를 7조5000억(활주로 1개)~11조원(활주로 2개)으로 추정했다.

부울경과 ADPi 양측 다 해당 부지에서 시추 등 정밀조사를 통해 뽑아낸 비용이 아닌 탓에 바다 매립 등에 막대한 돈이 더 투입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쨌든 부울경에선 조사자료를 정치권에 제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야 모두 법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박동석 부산시 신공항추진본부장은 “국회에서 해당 자료가 우리 쪽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 있다고 본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SOC(사회간접자본) 분야에선 전례를 찾기 힘든 ‘깜깜이’ 특별법을 우려한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예타 대상 사업을 선정할 때도 개략적인 사업 내용은 다 나와 있고, 대부분 사전타당성조사를 거친 사업 중에서 고른다”며 “밑그림도 없이 어떻게 수조 원짜리 사업을 정하느냐”고 비판했다. 박동주 서울시립대 교수도 “이런 식으로 추진되면 견제 장치나 여과 기능이 없어져 엄청난 예산 낭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대한교통학회가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설문조사에서도 76%가 ‘공항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이유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추진에 반대했다.

이대로 법안이 ‘닥치고’ 통과되고, 예타까지 면제된다면 뒷감당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박동석 본부장은 “부울경에선 가덕도공항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상당하다”며 “나름 다양한 조사와 검토를 통해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합당한 절차를 건너뛰고, 기본을 생략한 채 추진하는 사업은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받기 힘들다. 향후 진행 과정에서 적지 않은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다. 급조된 선거용 특별법을 통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제라도 가덕도신공항을 놓고 이해 당사자와 전문가가 참여해 치열한 검토와 토론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이런 과정을 충분히 거친 뒤 특별법을 통과시켜도 결코 늦지 않다. 진정 선거용이 아닌 부울경 주민을 위한 신공항 특별법이라면 말이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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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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