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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짱 사진은 연출이었다? 김보름·노선영 3년전 그날의 진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 김보름(28)이 노선영(32)에게 지난해 11월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며 법정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노선영의 김보름에 대한 가혹 행위 여부와 함께 3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왕따 주행 논란’의 진실이 재판의 큰 쟁점이다.

김보름 노선영 양측 소송자료 살펴보니

1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양측의 소송 자료에 따르면 김보름은 이른바 ‘왕따 주행’이 사실이 아님에도, 노선영이 허위 인터뷰를 해 논란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선영은 허위 인터뷰를 한 적이 없으며, 김보름이 입은 피해는 자신 때문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왕따 논란’의 시작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노선영(왼) 선수와 김보름 선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노선영(왼) 선수와 김보름 선수.

사건의 시작은 지난 2018년 2월 19일,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팀 추월 준준결승 경기였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김보름, 노선영, 박지우가 함께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 마지막 두 바퀴를 남기고 노선영이 혼자 뒤처졌다. 팀 추월 경기는 마지막에 들어온 주자의 기록을 기준으로 순위가 결정된다. 하지만 김보름과 박지우는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나아갔다. 결국 준결승 진출은 무산됐다.

비난의 화살은 김보름과 박지우를 향했다. 두 선수가 고의로 노선영을 챙기지 않고 따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기가 끝난 뒤 김보름이 “뒤에(노선영이) 저희랑 격차가 벌어지면서 기록이 조금 아쉽게 나온 것 같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다음날 노선영 인터뷰 파문

다음날 문제가 커졌다. 백철기 국가대표 감독과 김보름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왕따 주행’ 논란을 해명했다. 하지만 곧바로 노선영이 SBS와의 인터뷰에서 기자회견 내용을 반박했다. 당시 노선영의 주요 인터뷰 내용은 이렇다.

 ◦한 번도 같이 훈련한 적 없다.
 ◦훈련 분위기가 안 좋았고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

 ◦경기 계획을 미리 정하지 않았고, 마지막 두 바퀴를 남기고 자진해서 맨 뒤로 간 게 아니다, 해보지 않은 방식이었다.
 ◦김보름과 박지우가 레이싱 막판에 스퍼트를 올려 쫓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2018년 2월 20일 당시 노선영 선수의 인터뷰. [SBS뉴스 캡처]

2018년 2월 20일 당시 노선영 선수의 인터뷰. [SBS뉴스 캡처]

한 달 뒤 노선영은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프로그램에서 “팀추월 경기는 빙상연맹이 버리는 경기였다”고 폭로했다. 4월에는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 “빙상연맹이 자신을 차별했다”고 주장했다.

◇김, 훈련 계획서 제출하며 반박

김보름 측은 2월 20일 자 인터뷰 전체가 거짓이라는 입장이다. 먼저 한 번도 같이 훈련한 적 없다는 노선영 측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법원에 주간훈련계획서를 제출했다. 계획서에 따르면 김보름과 노선영 등은 2017년 12월 18~12월 23일, 12월 25일~12월 31일, 2018년 1월 8일~1월 14일, 2018년 1월 16일~1월 22일 함께 훈련했다.

훈련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주장도 반박했다. 문제의 팀 추월 경기 이틀 전인 2월 17일, 세 선수가 감독ㆍ코치와 모여 경기 내용에 대해 상의했다는 것이다. 김보름 측은 “경기 전날 웃으며 대화를 나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으며, 노선영이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고 대화를 나눴다”며 이를 입증할 사진과 동영상을 법원에 제출했다.

팀추월 사건 다음날인 2018년 2월 20일, 팔짱을 끼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된 노선영과 박지우. 김보름은 이를 제시하며 '왕따 논란'을 반박한 반면, 노선영은 '연출된 사진'을 주장했다. [소장 일부 캡처]

팀추월 사건 다음날인 2018년 2월 20일, 팔짱을 끼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된 노선영과 박지우. 김보름은 이를 제시하며 '왕따 논란'을 반박한 반면, 노선영은 '연출된 사진'을 주장했다. [소장 일부 캡처]

◇노 "팔짱 사진 연출된 것"

반면 노선영은 ‘함께한 훈련이 부족했다고 느낄 만했다’는 입장이다. 2018년 10월 나온 문체부 감사보고서는 전반적으로 여자 대표팀의 훈련이 부족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냈는데, 선수에 따라 느끼는 부분이 다를 수 있음을 암시했다.

“다만, 올림픽 직전 두 달 동안에는 국내대회 참가로 함께 훈련하기 어려움이 있었던 부분은 사실임. 또한 김보름 선수는 개인종목인 매스스타트 훈련을 병행함에 따라 팀추월 훈련에만 집중할 수 없어 노선영 선수가 팀추월 훈련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음” (감사 보고서 5페이지)

김보름 측이 제출한 ‘팔짱 사진’ 등은 연출된 것이라는 게 노선영 측 입장이다. 노선영은 준비 서면에 “평소 팔짱을 끼지 않던 박지우가 갑자기 팔짱을 꼈고 그 순간 사진이 찍혔다”며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이 박지우에게 시켜서 미리 짜고 사진을 찍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노선영 3번 주자’는 계획됐나

2018년 2월 20일 노선영의 인터뷰. [SBS뉴스캡처]

2018년 2월 20일 노선영의 인터뷰. [SBS뉴스캡처]

노선영이 3번 주자로 달린 당시 팀추월 경기 방식이 계획된 것이었는지는 2018년 10월 문체부 감사 보고서에 나와 있다. 감사 보고서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노선영은 당초 2번 주자가 좋다고 했지만, 경기 전날 박지우가 백철기 감독을 찾아가 ‘노선영이 3번 주자로 가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냄.

  ◦백 감독은 ‘선수들끼리 합의해 결정하라’고 했지만 이후 별도 논의가 없었음.

  ◦경기 당일 백 감독이 ‘노선영 3번’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지만, 김보름과 노선영이 이해하지 못함.

  ◦노선영은 컨디션에 자신이 없어 3번 주자를 망설였지만, 주변에서 괜찮겠다고 하니 책임감에 그 자리에서 결정함.

보고서를 놓고 양 선수는 다르게 해석한다. 김보름 측은 노선영이 최종적으로 3번 주자로 뛰는데 사전 합의했음에도 마치 ‘왕따 문제’인 것처럼 사건을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선영 측은 “중요한 것은 전날 밤에 순서가 정해진 것이 아니고, 경기 당일 즉흥적으로 주행 순번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고의로 따돌렸나

2018년 2월 19일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팀추월 경기 후반에서 앞서나가는 김보름, 박지우 선수. 뒤처진 노선영 선수. [일간스포츠]

2018년 2월 19일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팀추월 경기 후반에서 앞서나가는 김보름, 박지우 선수. 뒤처진 노선영 선수. [일간스포츠]

김보름과 박지우가 고의로 노선영을 따돌렸는지 여부에 대해 문체부는 ‘아니다’란 결론을 내놨다. 마지막 두 바퀴 구간 속도가 다른 구간 속도와 비교해 특별히 빠르지 않으며, 해외 경기에서도 이런 사례가 종종 있다는 근거를 들었다. 이에 대해 김보름은 “노선영이 경기력에 대해 국민들에게 질타를 받을 것을 우려해 그 화살을 김보름에게 돌렸다”는 입장이다. 또 “통상 뒤처지는 선수는 사인을 보내 앞서 주행하는 선수에게 알려주는데 노선영은 아무런 사인을 보내지 않아 알 수 없었다”라고도 했다.

 반면 노선영은 문체부 감사는 측정 방식에 문제가 있을 뿐, “김보름과 박지우가 자신을 무시하고 경기한 게 맞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지난 2014년 올림픽에서도 3번 주자가 뒤처지는 일이 발생했었는데, 그때는 김보름이 속도를 줄이고 뒤를 돌아보면서 경기를 했다는 것이다. 2월 19일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박지우가 “사실 선영이 언니가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건 아니었다”고 한 인터뷰를 들며, 사전에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법정에서 가려질 3년 전 '그 날'

두 선수는 이 일로 모두 상처를 입었다. 김보름은 “대대적인 국민적 비난을 받아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며 피해를 호소했다. 노선영 역시 “빙상연맹에게 밉보이고 이제 스케이트를 타는 일 자체를 할 수 없게 됐다, 심지어 개명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3년 전 사회를 뜨겁게 달군 ‘팀추월 사태’의 진실은 법정에서 한 번 더 가려질 전망이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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