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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어느 당이 선거에서 이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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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밀턴은 1644년에 『아레오파지티카』라는 책을 썼다. 자유주의시대의 새벽에 나온 이 책은 언론자유에 관한 한, 고전 중에서도 고전으로 꼽힌다. 이 책이 오래도록 생명력을 갖는 것은 그 안에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시버트 교수가 말했듯이 『아레오파지티카』는 언론 자유 개념의 핵심인 ‘사상의 공개시장’과 ‘자율조정 과정’이라는 두 원리의 원천으로 평가받고 있다. 누구든지 자유로이 사상의 공개시장에서 자기 의견을 드러내게 하면, 다양한 의견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동으로 바람직한 공론이 창출될 수 있다는 낙관적 믿음이야말로 자유주의의 기본 가정이다. “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논쟁하게 하라. 누가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하게 된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진리의 논박이 허위를 억제하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밀턴의 이 말은 예나 지금이나 가슴을 파고든다.

3김은 인물선거, 3김이후 진영선거 #문빠처럼 진흙탕 만들어선 곤란 #진영의 자율조정과정 복원이 관건 #복원 못하면 중도층이 심판할 것

밀턴 이후 발전해온 민주주의는, 밀턴의 가정이 실현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아 의회에서 공적 의제에 대해 논쟁하게 한 대의제야말로 대표적인 결실이다. 시민이 일정 기간의 정치 행위를 평가하게 함으로써 자율조정 과정의 한 단계를 마무리하는 것이 선거다. 선거를 통해 국가는 과거를 정리하고 내일로 나아간다.

돌이켜보면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시대의 선거는 인물선거였다. 측근들이 가신그룹을 이루어 3김을 보좌하며 국민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3김 이후의 선거는 인물싸움이라기보다 진영싸움의 성격이 짙어졌다. 그 과도기가 김대중 시대였다. 김 전 대통령은 DJP 연대를 통해 호남과 충청을 묶어 진보정치의 막을 열었다. 매우 복고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진영정치 시대를 연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에는 지역 기반의 중요성이 현저하게 퇴색하고 진영대립의 성격이 두드러졌다. 민주주의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4월 21대 총선에서는 진보진영이 압승했다. 그러나 그 총선은 진보진영이 이긴 선거라기보다 보수진영이 진 선거였다. 보수진영은 상대적으로 수도 많고 힘도 센 영남을 주요기반으로 두는데도 왜 참패했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이 핵심 패인이었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은 진영 내부에서 자율조정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국민적 불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박 전 대통령이 실정을 하여 지탄을 받았다면 보수진영은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쟁을 통해 과오를 성찰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러나 친박세력은 태극기 부대를 앞세워 진영 내부의 자율조정 과정을 봉쇄했다. 그런 반동을 보며 국민은 보수진영에 대해 넌더리를 냈다고 보면 된다.

이제 4월 보궐선거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서울과 부산의 시장을 뽑는 선거인 데다 대통령선거를 앞에 두고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선거도 인물싸움이 아니라 진영싸움이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에는 진보진영이 보수진영과 닮은꼴의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나 윤미향 의원 사건에서 보듯이 진보진영도 진영 내부의 자율조정 과정을 거부했다. 사건이 났을 때 냉혹한 자기성찰을 통해 잘못을 스스로 드러내고 대대적으로 쇄신을 다짐했어야 한다. 그러나 조국 사태 때 진보진영은 총동원령을 내려 검찰에 화살을 돌렸고, 윤미향 사건에 이르러서는 비판하는 사람들을 토착 왜구로 몰았다. 엄연한 반동이다. 지금도 당내에서 이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당연히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유란 패권을 억제함으로써 향유하는 자유라야 하는데(임상원, 표현의 자유 원리) 진보진영은 지금 패권을 굳히는 자유만을 허용한다.

이런 현상의 한가운데에 문빠가 있다. 강준만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빠라는 오빠 부대는 ‘우리 오빠 이외의 다른 오빠를 섬기지 않는다’는 신조를 넘어, 우리 오빠를 위해 남의 오빠를 비난하고, 우리 오빠를 비난하는 모든 사람을 적대세력으로 돌린다. 문빠가 진영 내부의 자율조정과정을 심각하게 경색시키고 있는데도 말깨나 하는 여당 의원들은 그 세력에 편승하는 데 급급하고, 그릇된 팬덤을 민주주의의 양념으로 보는 대통령의 인식에도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진보진영은 그 진영의 걸출한 스승인 최장집·한상진·강준만 교수나 재야의 홍세화·김경률 씨 등을 내쫓았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내적 자율조정 과정을 막고 공론장을 진흙탕으로 만드는 문빠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인물을 평가하기보다 진영을 평가할 이번 보궐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어느 진영을 택할까. 사과는 했으나 아직도 과거에 무엇을 잘못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보수진영을 택할까, 아니면 보수진영이 저지른 과오를 되풀이하며 내부의 자율조정 과정을 차단하고 있는 진보진영을 택할까. 두 진영이 내부의 자율조정 과정을 복원하지 않으면, 늘 그랬듯이 게임체인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온 중도층이 바깥에서 자율조정 과정을 마무리할 것이다. 선거란 참으로 아름다운 장치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