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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세계경제전망

‘주식·부동산 활황, 약 달러’ 변화 요인이 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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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롤러 코스터 탄 글로벌 자산시장

김동호의 세계 경제 전망 저금리가 끌고온 글로벌 자산시장 점검 그래픽=신용호

김동호의 세계 경제 전망 저금리가 끌고온 글로벌 자산시장 점검 그래픽=신용호

『경제학 원론』 저자로 유명한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가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경제 분석이 눈길을 끌었다. 이 사람도 고민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다. 바이블처럼 여겼던 경제학 교과서가 힘을 못 쓸 만큼 새로운 경제현상이 꼬리를 물면서다. 맨큐는 ‘저금리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으로 왜 금리가 추세적으로 낮아지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하지만 명쾌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이 시대 최고 정통 경제학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다만 그는 상황 판단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가설을 추론했다. 역시 맨큐다운 통찰력이 들어 있었다.

거품 마지막 단계라는 경고 있지만 #‘실적 반영한 가치 상승’도 힘 얻어 #어느 쪽이든 초저금리가 핵심 배경 #올해 자산시장 변동 가능성 높아져

그는 크게 여섯 개의 이유를 꼽았다. 하나, 소득 불평등이 지난 20~30년간 확대됐다. 그 결과 경제적 자원이 부유층에 집중되면서 투자시장에 돈이 넘쳐나게 됐다. 둘,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중국인의 저축률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의 금리를 떨어뜨렸다. 셋,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현재 코로나19 충격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높이면서 기성세대의 저축성향이 더욱 높아져 저금리에 기름을 붓고 있다. 넷, 더 길게 보면 폭발적 생산성이 1970년대 이후 저하되고, 이에 따른 성장률 둔화가 금리를 끌어내리고 있다. 다섯, 실리콘밸리형 테크 산업은 과거 철도·자동차 공장만큼 자금 수요가 크지 않다. 여섯, 전반적으로 현대 비즈니스는 과거만한 자금 수요가 없다.

미국 금리는 지난 50년간 높았을 때는 최고 20%를 오르내리다 근래 들어 제로금리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제와 금융 상식을 뿌리째 뒤흔드는 엄청난 지각변동이다. 맨큐는 이 같은 저금리가 고령자에게는 대체로 재앙이고, 젊은 층에는 오히려 기회라고 봤다. 이자 소득이 줄어드는 만큼 고령자는 퇴직연금이 과거 대비 19% 더 필요하고, 젊은 층은 주택담보대출 비용이 줄어들어 좋다고 해석했다. 정부로서도 부채가 늘어나도 이자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더 장기적으로 보면 금리는 언제나 정상 수준으로 돌아온다면서 지금의 저금리는 양날의 칼이라고 경고했다. 경제 환경이 바뀌면 언제든 금리도 변동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거품을 알리는 경고

아직은 목소리가 작지만, 세계 각지에서 “글로벌 증시 과열 상태”를 경고하고 있다. 미국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수석 투자전략가 마이클 하트넷은 “한두 달 내 주식 비중을 줄여라. 증시가 거품의 정점에 이르러 급락 장세를 향하고 있다”고 거듭 비상벨을 울렸다. 금융버블 전문가 제러미 그랜덤 GMO 최고경영자는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 “시장은 이미 정점을 지나 거품의 후반 단계에 접어들어 이제는 폭락 국면을 향하고 있다. 지금은 20세기 최대 거품이었던 1929년 대공황과 1999년 닷컴 버블에 버금가는 과열 상태다. 매우 비정상적이고 불균형이 심각하다.”

연초 들어 하락세가 주춤한 원 달러 환율

연초 들어 하락세가 주춤한 원 달러 환율

이들 주장에는 적절한 논리가 있다. 저금리를 바탕으로 해서 대규모 재정·통화를 앞세운 세계 각국의 돈 풀기가 자산시장에 거대한 거품을 조장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맨큐가 지적한 대로 전 세계적인 부(富)의 양극화도 원인이 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 같은 양극화의 민낯을 대명천지에 들춰내는 계기가 됐다. 세계 주요국이 대중에 영합해 돈을 펑펑 뿌리는 배경이다.

투자 전략가 짐 로저스는 “아주 위험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며 “2021년이나 2022년에 증시 투매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내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표적 비관론자 그랜덤의 얘기를 좀 더 옮겨 보자. “현재 시장은 멜트 업(melt up) 장세에 있다.” 거품이 끓어올라 맥주가 잔을 흘러넘치는 순간처럼 주식시장이 과열돼 있다는 의미다.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 투자자문 그룹 최고투자책임자는 “투자심리는 2000년 닷컴 버블 때 본 것처럼 격앙돼 있다”고 활황세 뒤에 몰려올 폭락장세를 우려했다.

경쟁력 있는 기업에 돈 모인다

하지만 거품론은 낙관론에 파묻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지는 일단 세계 주요국의 증시 활황세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3대 증시 지수(나스닥, 다우존스 산업지수, S&P500)는 모두 역사적 고점을 연일 갱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코스피 지수가 3200을 돌파했다. 코스닥은 장중 1000을 돌파했다. 이 흐름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고무돼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말 “한국의 거시 경제가 좋은 흐름을 보여 다행”이라며 “코스피지수 3000시대 개막에 대한 희망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고 반등할 것이라는 게 시장과 국내외 투자자들의 평가”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돼 코스피 3000시대가 됐다. 이명박 정부 때도 나왔던 얘기였지만 이번엔 현실이 됐다.

3200 돌파 후 조정 양상 보이는 증시

3200 돌파 후 조정 양상 보이는 증시

어떻게 보면 10년 전부터 예고된 코스피 3000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적절한 근거가 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지난해 성장률이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추락하고 체감경기가 얼어붙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반도체를 필두로 한국의 첨단 제조기술은 세계적으로 막강하다. 조상들이 물려준 관광산업 비중이 큰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의 경제성장이 휘청거리고 한국이 마이너스 1%에서 선방한 배경이다.

한국의 반도체·화학·배터리·자동차 같은 업종은 코로나19에 아랑곳하지 않고 상승세를 보인다. 오히려 코로나19가 소비 패턴을 바꾸면서 내구 소비재는 활황을 누리고 있다. 자동차를 새로 사는 사람이 적지 않은 가운데, 고급 사양의 자동차는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자율주행차와 전기차가 속속 도입되면서 배터리 생산 기업의 주가도 높이 날아오르고 있다.

올해 세계 경제는 비관과 낙관이 크게 혼재하고 있다. 경제 구조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개인 차원은 물론이고 기업과 산업 차원에서도 극심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존력을 갖춘 기업과 새로운 산업은 승자독식의 기회를 누리고 있다. 프리미엄 자동차와 전기차 등의 재료를 가진 현대차와 초격차 반도체 기술을 유지하는 삼성전자 주가는 코로나 충격을 딛고 견조한 흐름을 보인다. 미국에서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테슬라 주가가 급등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조업이 강한 중국 역시 주가 흐름이 좋다.

코로나19 여파에도 글로벌 부동산 시장은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저금리가 지속하고 부유층을 정점으로 풍부한 유동성을 확보하면서 부동산시장의 뒤를 받쳐주면서다. 하지만 저금리 흐름이 생각보다 빨리 끝날 수 있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소걸음을 하고 있지만 최악의 상태는 지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이런 가능성이 고개를 들면서 미국의 국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코로나 극복을 위해 연방기금 금리를 당분간 올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런 움직임이 언제 어느 순간부터 금리 인상을 본격적으로 자극할지 모른다. 그야말로 올해는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자칫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요동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글로벌 경제 동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바이든 정부, 인위적 약 달러 반대

미국 달러화 가치도 변화의 모멘텀을 만났다. 빌 클린턴 정부 이래 강(强) 달러 정책을 유지해왔던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제조업 부활과 수출 진흥을 위해 약(弱)달러 기조를 이어갔다. 코로나19 대응으로 막대한 재정을 풀면서 지난해 미 달러화는 세계적으로 약세를 보였다. 그 여파로 지난해 달러화가 투자처를 찾아 해외로 나가면서 달러 이외의 통화는 강세를 띠었다.

하지만 조 바이든 정부는 입장이 다르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인위적 약 달러에 반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 대신 “시장에 환율을 맡긴다”고 하자 달러 환율 흐름에 변화가 보인다. 최근 들어 원화 환율이 1100원에서 더 내려가지 않고 하방 경직성을 보이고 있다. 국내 기업들로선 원화 강세가 누그러지면 수출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