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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의 시선

추미애가 벌인 난장(亂場)을 정돈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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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202012

강주안 논설위원 202012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취임 이후 행보를 따라가면 추미애 전 장관의 어지러운 발자국이 나타난다. 신임 장관은 전임자가 헝클어놓은 현장들을 찾아다니며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의지를 비친다.

전임 장관과 차별화 행보 박범계 #택시기사 폭행 이용구 교체해야 #윤석열과 협의, 첫 검찰인사 주목

박 장관이 집무 첫날 방문한 서울 동부구치소는 최악의 코로나19 집단 감염 장소다. 하루 수백명씩 확진자가 쏟아지고 수용자가 죽어가는 와중에, 책임자로서 구치소를 방문한 추 전 장관이 다음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읽을수록 난해하다. ‘코로나 시대에 사람과 사람이 거리를 두는 사이에도 사람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박 장관이 두번째 업무로 언급한 검찰 인사는 추 전 장관의 대표적 전횡 사례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의견을 묵살하고 검사들을 멋대로 배치했다. 박 장관은 “법(法)상 검사들의 인사에 있어 보직 제청은 장관이 하지만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되어있다. 법대로 할 것”이라고 말해 전임자와 차별화를 예고했다.

재임 기간 내내 윤 총장 몰아내기에 몰두했던 추 전 장관은 교정·인사뿐 아니라 검찰 개혁마저 후퇴시켰다는 평가가 있다. 검사의 직접 수사를 줄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추 전 장관 재임 중 오히려 검찰 권한이 세졌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현 정부가 추진한 검경 수사권 조정의 큰 틀은 ‘박상기 법무장관-조국 민정수석’ 체제에서 완성됐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부패·경제 범죄 등 여섯 가지로 제한했다. 그런데 추 전 장관 취임 후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의 대통령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약 수출입을 경제범죄에 넣어 검사의 직접 수사를 허용하는 등 검찰에 유리해졌다는 주장이다. “대통령령 협의 과정에서 의견이 대립할 때면 검찰 쪽에서 ‘(추미애) 장관이 재가한 사안’이라는 식으로 밀어붙였다”는 볼멘소리가 경찰에서 들린다. ‘실세 장관’이라는 간판이 협상장에서 경찰을 주눅 들게 하는 데 활용된 사실을, 추 전 장관이 몰랐다면 비극이고, 알았다면 소극(笑劇)이다.

퇴임 직전 언행도 후폭풍이 세다. 법무부가 정부 업무 평가에서 최하위인 C등급을 받았지만 추 전 장관은 친일재산 국가귀속에 노력한 공로로 광복회로부터 ‘독립운동가 최재형상’을 받았다. 후손들이 반발하면서 이 상은 시행 3회만에 존폐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달 21일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현판식을 두고서도 말이 많다. 김진욱 공수처장만 달랑 임명된 시점에 굳이 행사를 열어 추 전 장관과 사진을 찍어야 했느냐는 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소한 차장을 포함한 공수처 주요 보직자라도 결정한 다음에 현판식을 해야 보기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풀)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김진욱 초대 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 등이 참석해 있다. 장진영 기자

현장풀)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김진욱 초대 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 등이 참석해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달 6일엔 한겨레 신문에 한 면 짜리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얼마 뒤 한겨레 기자 40여명이 집단 성명을 내고 간부가 퇴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추미애 라인’ 검사의 언론 플레이에 말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을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다는 이유다. 윤 총장을 징계하려 강행한 이 차관 발탁은 후유증이 가장 심각하다.

얼마 전 서울 양천구청은 ‘택시에서 구토한 승객을 태우신 기사님은 보건소로 연락 바란다’는 재난문자를 보냈다. 확진자 손님을 만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핸들을 놓지 못하는 택시 기사의 사정을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이 문자를 포털 사이트에 올렸다. 그런 사회적 약자를 술에 취해 폭행한 행위는 묵과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이 차관의 폭행 사실을 모르고 임명했다면 문재인 대통령을 속인 거고, 알았다면 국민을 기만한 행위다.

박 장관이 추 전 장관과 상반된 행보로 국민을 안도시킨다고 해서 재산 신고 누락 등 의혹이 묻히지 않는다. 학창시절을 비롯한 여러 시점의 폭력 의혹이 제기됐다. 2019년 4월 26일 ‘국회 패스트 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당시 야당 당직자를 헤드록한 혐의는 재판이 기다린다. ‘택시 주먹’과 ‘국회 주먹’의 깡을 합쳐 사법연수원 동기(23기)인 윤 총장을 완력으로 ‘개혁’해버릴 요량이 아니라면, ‘법무부 폭력 서클’은 해체해야 마땅하다.

1일 오전 박범계(왼쪽) 법무부 장관이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이용구 차관과 인사 하고 있다. 2021.2.1 김경록 기자

1일 오전 박범계(왼쪽) 법무부 장관이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이용구 차관과 인사 하고 있다. 2021.2.1 김경록 기자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줄다리기를 하는 사이 법무부 장·차관과 공수처 처장·차장을 판사 출신으로 채운 인선도 부자연스럽다. 헌법 위반 혐의를 이유로 여당 발(發) 판사 탄핵이 추진되는 마당에 핵심 수사기관의 지휘권을 전직 판사가 독식하는 모양새가 바람직할까. 이런 부조화들을 신속하게 해소하려면 법무부 차관부터 교체해야 한다. 추 전 장관이 벌여놓은 난장(亂場)을 하나씩 정돈해야 맑은 정신으로 검찰 개혁을 논할 수 있다. 정권에 불편한 수사가 굴러가는 상황에서 이뤄질 박 장관의 첫 인사가 그래서 중요하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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