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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 원전 문건 삭제, 철저히 수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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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산업자원부 공무원들의 월성 1호기 관련 ‘파일 삭제’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이 없앤 자료에 ‘북한지역 원전 건설 추진’ 문건 17개와 ‘탈원전’ 반대 시민단체 동향 파악 문건까지 포함된 사실이 확인돼서다. 특히 북한 원전 문건과 관련해선 정치권 논란이 거세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원전 게이트 수준을 넘어 충격적 이적행위”라고 비판하자 청와대는 “북풍 공작과도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맞섰다. 여당에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검토했던 일”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야 “이적행위”에 산업부 “아이디어 차원” #여권, 정쟁으로 몰지 말고 의혹 해명하길

논란이 커지자 산업부가 직접 해명에 나섰다. 산업부는 어제 오후 브리핑에서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이후 에너지 분야 협력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산업부 내부 자료”라며 “정부가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고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예정 시간보다 자료 배포도 1시간 이상 늦은 데다 브리핑도 부실할 만큼 짧았다. 자료 삭제 이유에 대한 별도의 설명도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민의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우선 산업부의 설명을 믿는다 하더라도 탈원전을 내세우며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한 문재인 정부에서 어떻게 북한 원전 건설 추진이란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자위적 수단으로 이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는 북한에 핵연료를 제공할 수도 있는 상황을 미국과 유엔이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국내 탈원전을 통해 발생한 잉여 장비와 인력을 북한에 투입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산업부의 ‘정부 정책으로 추진되지도 않은 아이디어 차원의 내부 자료’란 해명이 사실이라면 왜 굳이 고위 공무원들이 일요일 심야시간에 몰래 사무실에 들어가 없애려 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무리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행동임에도 산업부는 “유감이지만 산업부 차원의 개입은 아니다”며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파기한 탈원전 반대 시민단체 등에 대한 보고서를 “동향 보고 수준”이라고 일축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여권 인사들은 그간 자신들에게는 ‘사찰 DNA’가 없다고 주장해 오지 않았나.

진실을 밝힐 책임과 능력이 있는 청와대와 정부가 이 사안을 정쟁으로 몰고 가면서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런 태도를 보면 왜 그토록 최재형 감사원장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격했는지 짐작이 간다. 만일 최 원장과 윤 총장을 비롯한 수사팀이 친문 강성 지지자들의 압박에 물러섰더라면 삭제된 문건들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와 산업부가 국민이 원하는 진실을 알리지 않겠다면 검찰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내는 수밖에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