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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톱하면 망한다, 치킨게임 된 ‘게임스톱 대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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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헤지펀드에 대항한 개미들의 반란으로 화제를 모은 ‘게임스톱 대첩’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헤지펀드들이 공매도를 청산하지 않고 버티자 개미들도 방어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헤지펀드가 버티는 이유는 주가가 너무 오른 상태에서 공매도를 청산하면 막대한 손실을 보는 데다 버블 광풍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주가가 내리면 결국 이익을 거둘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반대로 개미들은 헤지펀드가 공매도를 청산하는 시점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추가 매수를 권장하고 있다.

미국개미 vs 헤지펀드 공방전 #헤지펀드 1월에만 22조원 손실 #“공매도 계속 유지” 버티기 나서 #“공매도 많아 주가, 달까지 갈 것” #개미들 ‘투더문’ 외치며 추가매수

게임스톱 주가 변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게임스톱 주가 변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미국 CNBC는 29일 시장조사업체 S3 파트너스를 인용해 “이번 주 게임스톱 공매도 잔량은 8% 줄어드는 데 그쳤다”고 보도했다. 멜빈캐피털과 시트론리서치 같은 일부 헤지펀드들은 손실을 떠안고 판을 떠났지만 대다수 헤지펀드들은 여전히 숏(매도)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 공매도하기 위해선 일단 주식을 빌려야 하는데, 주식을 빌릴 때 내는 수수료가 비싸졌다는 점도 공매도가 줄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CNBC는 전했다. 실제 게임스톱 공매도 주식 총액은 112억 달러(약 12조5000억원)에 달한다. 총액 기준으로 미국에서 테슬라, 애플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공매도 된 주식이다. 게임스톱 주가가 결국엔 급락할 것이란 기대감이 여전히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개미들은 같은 현상을 반대로 해석한다. 공매도가 많다는 사실은 아직도 ‘쥐어짜기’ 할 돈이 많이 남아있다는 의미라고 개인 투자자들은 풀이한다. 주가가 오르면 ‘내린다’에 베팅한 헤지펀드들은 손실을 멈추기 위해 비싼 값을 주고라도 주식을 사들이면서(쇼트스퀴즈·공매도 쥐어짜기) 주가가 더 뛰게 된다. 이 때문에 공매도 잔량이 많을수록 주가 상승 여력도 크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온라인 주식 토론방인 ‘월스트리트베츠(Wall Street Bets·WSB)’에서는 ‘투더문(to the moon)’이라는 구호가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본격적인 공매도 쥐어짜기가 시작되면 주가가 치솟아 달까지 닿을 것이라는 기대감의 표현이다.

국내 투자자 해외주식 결제금액

국내 투자자 해외주식 결제금액

S3파트너스에 따르면 1월 한 달간 헤지펀드가 게임스톱과 관련해 입은 손실은 197억5000만 달러(약 22조)다. 일부 헤지펀드들은 미국 불개미 떼의 공격에 백기 투항했다. 미국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인 시트론리서치는 29일 트위터에 “시트론리서치는 다시는 숏(매도) 보고서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헤지펀드 ‘포인트72’의 창업자 스티브 코언 역시 개미 군단의 공격에 트위터 계정을 닫았다. 며칠 전 게임스톱에 공매도를 걸었다 손실을 본 헤지펀드 멜빈캐피털에 포인트72가 투자한 사실이 보도되자 코언의 트위터 계정에 개미 투자자들이 몰렸다.

하지만 ‘반란 진영’에도 균열 조짐이 보인다. 개미들의 반란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했던 주식 거래앱 ‘로빈후드’가 지난 28일(현지시간) 개인 투자자의 게임스톱 주식 매수를 막았기 때문이다. 미 스탠퍼드대 출신의 블라디미르 테네프와 바이주 바이트가 2013년 창업한 로빈후드는 복잡한 주식 거래 절차를 생략하고 거래 수수료와 등록 예치금 ‘제로’를 무기로 서비스 6년 만에 1300만 명의 고객을 모았다. 로빈후드에서 활동하는 소위 ‘로빈후더’들은 주식 토론방인 WSB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게임스톱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반란 주도했던 거래앱 ‘로빈후드’ 매수거래 막아 …“배신자” 낙인

미국 개인 투자자들은 ‘로빈후드’를 통해 게임스톱 주식을 집중적으로 샀다. [AFP=연합뉴스]

미국 개인 투자자들은 ‘로빈후드’를 통해 게임스톱 주식을 집중적으로 샀다. [AFP=연합뉴스]

그런데 로빈후드는 지난 28일 돌연 게임스톱 주식 매수를 막았다가 개인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치면서 하루 만에 매수 제한을 풀었다. 로빈후드는 30일 블로그를 통해 “급증한 투자로 계약 불이행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의무 예치금 비용이 10배나 치솟은 탓에 매수를 일시 중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헤지펀드 매수는 허용하며 개인만 막은 로빈후드의 행동은 불개미에겐 배신으로 비쳤다. 일부는 집단소송까지 할 태세다. 블룸버그는 “‘모두를 위한 금융 민주화’를 내세우던 로빈후드는 정작 문제가 생기자 ‘고객이 원한다고 모두 살 수는 없다’며 월가의 논리를 들이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미 연방의회는 거래제한 조치를 한 로빈후드에 대한 청문회 열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도 로빈후드 감독에 나서기로 했다.

◆1561억원 매매, 서학개미도 참전=한편 해외 주식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인 ‘서학개미’들은 게임스톱 주식 600억원 어치를 매도, 차익 실현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29일 기준 예탁원을 통한 게임스톱 순매도 결제 금액은 5396만 달러(약 603억원)로 집계됐다. 국내 투자자들은 이 종목을 4286만 달러어치를 매수하고 9682만 달러어치를 매도, 전체 결제금액이 1억3968만 달러(약 1561억원)에 이르렀다. 이는 최근 국내 투자자에게 가장 사랑받는 해외주식인 테슬라 결제액(1억2386만 달러)보다 많은 하루 결제금액 1위다. 29일 기준 예탁원 결제 수치는 미국 현지에서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간) 거래분에 해당하는데, 이날 게임스톱 주가는 전날보다 92.71% 뛰어오른 147.98달러에 마감했다. 당일 주가가 폭등하자 국내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게임스톱 주가가 유례없이 격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어 서학개미들이 섣불리 뛰어들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스톱 주가는 27일에는 134.84% 폭등, 28일에는 44.29% 폭락했다가 다시 29일 67.87% 뛰어오르는 등 극심한 ‘롤러코스터’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28일에는 장중 483달러까지 치솟았다가 한때 112.25달러까지 떨어져 거의 4분의 1토막이 나기도 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단기 차익을 목표로 하는 주식 거래는 ‘기업의 주인이 되겠다’는 일반적인 주식 투자, 투자의 ‘정석’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며 “그런 투자 행위가 그 자체로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큰 리스크를 감수하는 행위임을 투자자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지유·이승호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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