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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임성근 판사 탄핵, 사법부 길들이기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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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더불어민주당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 본회의 보고·의결을 이번 주 안에 속전속결로 처리키로 했다. 판사 탄핵은 판사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파면하기 위한 제도다. 헌정사상 두 번의 소추안이 발의됐지만 가결된 적은 없다. 소추 대상도 대법원장과 대법관이었고, 일반 법관은 사상 처음이다. 정치가 사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어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하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범여권 의원 111명이 서명했다는 이번 탄핵소추안은 추진 시기와 사유, 절차 면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적지 않다.

최강욱 의원 유죄 선고 직후 강행 #사유·절차 미흡…법원 위축 우려

민주당이 주장한 판사 탄핵소추 사유는 부실하다.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인 이탄희·이수진 의원은 “법원이 1심 판결을 통해 반헌법 행위자로 공인한 판사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임 부장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세월호 7시간 의혹’ 칼럼을 쓴 일본 기자 가토 다쓰야의 명예훼손 사건 담당 후배 재판장에게 칼럼 내용이 사실무근임을 판결문에 적시해 달라고 한 재판 관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의 1심 판결문에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는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하지만 전체 판결 취지는 “권유나 조언에 불과하고 재판권 침해도 없었다”는 것이다. 직권남용 혐의는 무죄가 선고됐다. 선배 법관의 조언이 헌법 위반인지 여부는 항소심의 최대 쟁점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 추진을 용인했다.

여러 가지 사유로 수사 또는 재판을 받으면서도 금과옥조처럼 내미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내편 아닌 사람들에겐 무용지물이 돼야 하는 건지 의문이다. 수십 년 공직생활을 박탈하는 탄핵을 하려면 철저한 증거 조사가 전제돼야 한다. 현행법상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해 조사토록 하는 절차가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추가 조사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판사의 위헌적 행위를 묵과한다면 국회의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도 “(판사 탄핵이) 실익이 없고 각하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헌재에 탄핵소추 의결서를 보낸다면 추미애 전 장관이 밀어붙였다가 2전2패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러니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의심도 산다. 민주당 지도부가 탄핵소추를 용인한 것은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다음 날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대법원과 헌재에 진보 성향의 법관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일선 법원에선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집행정지 인용, 정경심 유죄 판결 등 여권으로선 곤혹스러운 판결이 잇따랐다. 이번 탄핵소추가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한 판사에겐 언제든 보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돼 사법부를 위축시킬까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