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네살 돼도 매일 "엄마 사랑해"…입양가족 평범한 일상

중앙일보

입력 2021.01.31 09:00

업데이트 2021.01.31 09:48

유보연 씨와 가슴으로 낳은 딸 예인이가 함께 찍은 사진. 본인 제공

유보연 씨와 가슴으로 낳은 딸 예인이가 함께 찍은 사진. 본인 제공

"보육시설에 갔는데 먼발치서 저희를 쳐다보는 아이가 있는 거예요. 저랑 남편 어렸을 때 모습이 오버랩 되는데 꼭 오래전부터 제 딸이었던 것 같더라고요."

입양을 준비하던 유보연(45)씨는 2년 전 남편과 함께 보육시설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생후 12개월 된 예린이를 처음 만났죠. 예린이는 태어난 직후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돼 이곳으로 왔습니다.

[밀실] 2021 신(新) 가족의 탄생

<4회> 가슴으로 낳은 아들, 딸
어느 평범한 입양 가족들의 일상

아이는 유독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유씨 부부를 바라봤습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부부의 어린 시절 모습을 빼다 박았죠. 그 얼굴이 며칠간 유씨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결국 예린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죠. 아이에겐 '예인'이라는 새 이름, 그리고 새 가족이 찾아왔습니다.

#예인이 엄마가 말하는 예인이와 일상,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

우리 주변 입양 가족의 삶, 특별하지 않아요

유보연씨와 남편의 어린 시절 사진과 예인이. 예인이는 엄마, 아빠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 본인 제공

유보연씨와 남편의 어린 시절 사진과 예인이. 예인이는 엄마, 아빠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 본인 제공

예인이는 어느덧 '미운 네살'이 됐습니다. 운명처럼 맺어졌다지만 사는 건 별다를 게 없습니다. 말 안 들으면 엄마의 큰소리가 나오고 혼도 냅니다. 하지만 딸의 투정도 유씨에겐 사랑스럽습니다. 그는 "졸릴 때마다 엄마를 찾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하루에 수십 번씩 '엄마 사랑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인이네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입양가족들이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됐습니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분노와 충격에 빠뜨린 '양천구 아동학대(정인이) 사건'의 불씨가 갑작스레 옮겨붙은 거죠. 정인이를 학대한 사람이 양부모라는 이유로 일각에선 '입양 절차를 더 엄격하게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부모와) 맞지 않는 경우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라고 발언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입양 아동이 물건이냐'는 비판이 이어졌죠. 청와대는 결연을 맺은 아동이 정식 입양 전 양부모 가정에서 일정 기간 생활하는 '사전위탁보호' 제도를 보완하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습니다.

때아닌 소용돌이에 휘말린 입양 가족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이들 대부분은 아이 키우기 바쁜 일반 가정입니다. 오히려 더 큰 사랑을 키워가는 집도 많죠. '특별하지 않은' 세 가족이 말하는 입양, 밀실팀이 들어봤습니다.

만난 지 30분 만에 '엄마'…아이가 선물한 새 삶

지난해 김세진씨가 아이들과 놀이공원 나들이 가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주혜, 주언, 주아, 주성. 본인 제공

지난해 김세진씨가 아이들과 놀이공원 나들이 가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주혜, 주언, 주아, 주성. 본인 제공

"주혜가 만난 지 30분 만에 절 '엄마'라고 부르는 거예요. 아이가 그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생각하니까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3년 전 기억을 되돌려봅니다. 김세진(39)씨는 여섯 살 주혜와 첫 만남을 잊지 못합니다. 입양가족 커뮤니티에 올라온 동영상에서 주혜를 처음 봤죠. 같은 보육시설에 지내던 친구가 입양돼 시설을 떠나던 날, 서럽게 울던 영상 속 아이가 눈에 밟힌 겁니다.

주혜만 있는 게 아닙니다. 김씨네는 4남매가 웃고 떠드느라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열 살인 첫째 딸 주아를 빼고는 모두 김씨가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이죠.

김세진씨네 가족 사진. 본인 제공

김세진씨네 가족 사진. 본인 제공

학창 시절 보육원장이 꿈이었을 정도로 아이를 좋아했던 김씨는 첫 출산 이후 유산이 거듭되자 입양을 택했습니다. 셋째 주언이를 제일 먼저 데려왔고, 둘째 주혜와 막내 주성이가 이어서 들어왔죠.

혈연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아이들의 행복은 곧 부모의 기쁨입니다. 김씨는 "주혜가 집에 오고 첫 생일 파티 때 자기만을 위한 케이크에 초가 꽂혀 있는 상황을 어색해했다. 금세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행복해졌다"고 말했죠.

이승아씨네 가족 사진. 본인 제공

이승아씨네 가족 사진. 본인 제공

입양 부모는 아이에게 새 삶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두 번째, 세 번째 인연을 맺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2년 전 영아원에서 생후 8개월 영광이를 입양한 이승아(44)씨는 올해 안에 둘째를 입양할 예정이죠. 이씨는 "나와 남편 둘 다 4남매 가정에서 자라 결혼하면 아이를 넷 낳자고 약속했다. 둘째 아이가 집에 잘 와서 영광이와 잘 놀았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입양으로 돈 번다" 여전한 오해엔 한숨

서울에 있는 동방사회복지회 영아 일시보호소. 생후 1~2개월된 유아들은 이곳 보호소에서 머물다 국내외로 입양된다. 중앙포토

서울에 있는 동방사회복지회 영아 일시보호소. 생후 1~2개월된 유아들은 이곳 보호소에서 머물다 국내외로 입양된다. 중앙포토

출생아 수와 합계 출산율이 해마다 최저치를 경신하는 상황, 정부는 입양 인식 개선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혈연중심 가족주의가 공고한 사회에서 입양 가족은 오해와 편견에 늘 부딪힙니다.

유보연씨는 주위에 입양 사실을 알릴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입양은 축하받을 일이지 칭찬받을 일이 아닌데 '대단하다'거나 '존경스럽다'고 말하는 지인이 대부분이다. 그런 시선에도 편견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죠.

정부가 입양 가정에 지원하는 보조금에 대한 오해도 여전합니다. 김세진씨는 "둘째 입양을 준비하면서 동네 어르신들이 '입양하면 돈을 많이 주나 봐'라고 수군대는 걸 들었다. 아이 이용해서 돈 번다는 인식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며 한숨을 쉬었죠.

실제로 입양 가족이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은 어떨까요. 아동 1명당 월 15만원(만 17세까지)의 양육수당, 1종 의료급여 정도죠. 장애 아동은 월 55만~62만원의 양육 보조금만 더 받습니다.

제2 정인이 막으려면…"아동 중심 입양 필요"

정인양이 안치된 경기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 메시지와 꽃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정인양이 안치된 경기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 메시지와 꽃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밀실팀이 만난 입양가족들은 정인이 사건 이후 우리 사회 각계에서 터져 나온 반응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습니다. 세 가족 모두 "이번 사건의 본질은 입양이 아닌 학대"라고 입을 모았죠.

유보연씨는 "사건 이후 몇몇 입양 가족이 지자체에서 '위기 아동 실태조사 대상'이라는 문자를 받고 당혹스러워했다.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입양 가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논의가 흘러가는 게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입양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절차가 복잡해질수록 피해를 보는 건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이라고 강조했죠.

다만 이번에 드러난 입양 사후관리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엔 공감합니다. 김세진씨는 "무턱대고 '입양 가정에 나쁜 프레임 씌우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도 정인이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거라고 본다. 학대에 중점을 두되 입양 사후관리에 허점이 있진 않았는지 체크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전국입양가족연대 회원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전국입양가족연대 회원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기자회견에서 나온 대통령의 입양 발언엔 단호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김씨는 지난 20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에서 "출산·입양·위탁을 다 경험해본 입장에서 한번 마음에 품은 내 자식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애착 형성을 위한 사전위탁기간에 입양을 취소하거나 다른 아이로 바꿀 수 있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죠.

지난 19일 보건복지부는 아동학대 대책과 함께 입양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입양 전 과정에서 지자체 등 공공기관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었죠. 민간기관 중심으로 입양이 이뤄지다 보니 관리·감독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수용한 겁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입양 전반의 과정을 정부가 관리하고, 입양 실행은 민간이 담당하는 게 맞다"면서도 "자녀가 없는 가정에 아이를 보내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가정을 찾아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딸이 물어본 '출생', 엄마는 대답을 준비합니다

유보연씨네 가족 사진. 본인 제공

유보연씨네 가족 사진. 본인 제공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

호기심 많은 예인이가 얼마 전 엄마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유보연씨는 제대로 답을 해주지 못했다고 하네요.

예인이는 아직 자기가 입양됐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대신 유씨는 예인이에게 입양 가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딸이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라고 다시 물어볼 날을 기다리면서 말이죠. 그때는 모두 다 이야기해줄 생각이라고 해요.

언젠가 예인이에게 입양 사실을 말해줄 때, 우리 사회가 입양을 보는 시선도 조금은 달라졌을까요. 유씨의 꿈도 여기에 맞닿아있습니다.

"'인간극장'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더 이상 입양 가정을 섭외하지 않는 그런 날이 오는 게 소망입니다. 입양이라는 특별함이 평범함으로 변해갈 날을…." 

박건·백희연·최연수·윤상언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이시은·이진영·조예진 인턴, 백경민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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