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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효도 계약’어긴 막말 아들…증여 재산 돌려받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우의 그럴 法한 이야기(20)

A(82·남)는 2005년 시가 20억 원가량의 서울 종로구 소재 주택과 대지를 아들인 B(53)에게 증여했다. A는 증여계약을 할 때 B로부터 각서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B는 본건 증여를 받은 부담으로 부모와 같은 집에 동거하면서 부모를 충실히 부양한다. B가 이를 불이행하면 A의 계약해제 조치에 관해 일체의 이의나 청구를 하지 않고, 즉시 원상회복의무를 이행한다”는 것이었다. 증여계약 체결 직후 B 명의로 부동산 등기를 마쳤고 A 부부는 주택의 2층에, B와 가족들은 1층에 거주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11년 지난 2016년 A는 B가 A 부부를 충실하게 부양하지 않는 등 각서에서 정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증여계약을 해제하고 주택을 돌려달라는 청구를 법원에 제기했다. A의 청구는 받아들여졌을까?

이른바 ‘효도계약’은 법률상의 용어는 아니지만, 연로한 부모가 중요한 재산을 자식에게 생전에 증여하되, 대신 부양이나 병간호 등 일정한 내용의 행동을 할 것을 자식들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증여계약을 법률적으로는 ‘부담부 증여(負擔附 贈與)’라고 한다.

‘부담부 증여’는 재산을 대가 없이 상대방에게 주는 보통의 증여와 다르다. 보통의 증여계약이 서면으로 작성되지 않았거나, 증여를 받은 사람이 증여한 사람에게 범죄행위를 하거나 부양을 하지 않는 경우 증여계약 후에 증여한 사람의 재정 상황이 나빠져 생계에 문제가 생긴 경우, 증여한 사람은 계약을 해제해 없던 것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증여의 이행이 완료된 부분에 대해서는 해제하더라도 돌려받을 수 없다. 만일 A와 B 사이에 ‘부모님을 충실히 부양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 각서를 쓰지 않았다면, 이는 보통의 증여에 해당한다. B가 배은망덕한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부동산 등기가 이전됨으로써 이행이 완료되었으므로 해제하더라도 돌려받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이른바 ‘효도계약’은 법률상의 용어는 아니지만, 연로한 부모가 재산을 자식에게 생전에 증여하되, 대신 부양이나 병간호 등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사진 unsplash]

이른바 ‘효도계약’은 법률상의 용어는 아니지만, 연로한 부모가 재산을 자식에게 생전에 증여하되, 대신 부양이나 병간호 등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사진 unsplash]

이와 달리 ‘부담부 증여’는 증여를 받는 사람이 증여를 받는 동시에 일정한 행동을 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말한다. 증여를 받은 사람이 계약에서 정해진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 보통의 증여계약과 달리 이미 이행이 완료된 부분도 반환해야 한다. 따라서 만일 B가 자신이 부담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A가 증여계약을 해제했다면, 이미 B명의로 마친 부동산 등기도 말소되고 A의 소유로 회복된다.

그러면 B는 각서에서 약속한 부담, 즉, ‘A와 같은 집에 동거하며 부모님을 충실히 부양’한 것으로 볼 수 있었을까?

A는 B에게 그 주택 외에도 남양주에 있는 임야 3필지를 증여했고, 또한 종로구 소재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의 주식 전부를 증여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그런데 B부부와 그 자녀들은 어머니인 A의 처가 2007년 이래 허리디스크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A 부부와 함께 식사하는 등 공동생활을 영위하지도 않았고, A 부부의 가사를 돕지도 않았다. 더구나 A의 처는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해 2015년에는 스스로 거동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지만, B 부부와 자녀들은 A의 처를 전혀 병간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주 찾아보지도 않았다.

참다못한 A가 B에게 증여 주택의 명의를 돌려주면 이것을 매각한 후 남는 자금으로 A 부부가 살 아파트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하였는데, B는 A에게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아파트가 왜 필요해, 맘대로 한번 해보시지”라는 등 막말을 했다. 결국 A 부부가 2016년경 증여 주택에서 나와 거주지를 옮겼는데, B는 부모가 거주하던 그 주택 2층의 유리창을 깬 후 수리해 두지 않았다. 이러한 행위를 한 B에 대해 법원은 부모를 충실하게 부양해야 하는 부담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결국 증여계약은 B의 부담 불이행으로 해제돼 등기가 말소되어야 한다는 판결이 선고되었고, 그 판결은 대법원까지 가는 다툼 끝에 A의 승소로 끝났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증여 재산을 효도 또는 부양 등 등가관계가 있는 비용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일까? [사진 unsplash]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증여 재산을 효도 또는 부양 등 등가관계가 있는 비용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일까? [사진 unsplash]

증여 계약에 따라 이미 등기까지 넘긴 A가 구제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부담부 증여’라는 취지를 명백히 밝힌 효도계약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불효자 방지법안’, 또는 ‘불효자 먹튀 방지법’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이전 국회에서도 여러 번 발의되었지만 결국 의결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고,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취지를 담은 민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개정안은 대체로 증여를 받은 사람이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부모 등에 대해 학대와 같은 패륜적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는, ‘부담부 증여’와 같은 효도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이미 등기를 넘기는 등 이행을 완료했더라도, 원래대로 되돌려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아직 불효자 방지법안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사례와 같은 각서를 받지 않은 채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이것을 걱정해 효도계약을 체결한다고 하더라도 ‘효도’나 ‘충실한 부양’을 계약의 내용으로 세세하게 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과연 ‘효도’나 ‘충실한 부양’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증여 재산과 효도 또는 부양이 등가관계가 있는 비용과 보상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일까?

사회가 급격히 변해감에 따라 가족, 효도, 부양에 대한 생각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노부모에 대한 자녀의 부양이 도덕적·법적으로 당연한 의무라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제는 세대마다 개인마다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다. 경기침체와 늘어난 만혼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이른바 캥거루족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가 그렇지 않은 성년 자녀를 부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령화와 함께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붕괴함으로써 독거노인과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고, 부모 재산을 증여받았음에도 오히려 부모를 학대하는 경우까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불효자 방지법이 요청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고 하나 되게 하는 가족과 효도, 부양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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