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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진리는 금지와 도발의 각축장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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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호 21면

금지된 지식

금지된 지식

금지된 지식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승희 옮김
다산초당

『종의 기원』의 출간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과학의 결정적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동물과 인간 사이의 간격이 동물들 사이의 간격, 예컨대 침팬지와 고릴라 사이의 차이보다도 작은 것이라니! 당시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을 표현하는 이런 영국식 유머가 유행했다고 한다.

우아하고 똑똑한 한 여인이 다윈의 진화론 얘기를 듣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원숭이에서 기원했다는 게 말이 되나요? 이 말이 틀렸기를 희망해요. 그러나 만약 그게 맞다면 모두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기도하겠어요.”

지금이야 이게 유머가 될 수 있지만, 다윈의 시대에는 “인간 진화에 대한 지식은 최소한 의심해야 하고 어찌 됐든 비난해야 하며 가장 좋은 건 억압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매우 진지하게 했다.”

그런 생각이 19세기에 처음 생겨난 건 물론 아니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의 ‘금지된 지식’이 깨진 뒤, 『고백록』을 써가며 ‘리비도 스키엔디(libido sciendi 지식 추구 본능)’를 금하려던 4세기 기독교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오늘날 빅브라더로 불리는 정보 통제와 지식 독점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지식을 억압하고 은폐하려는 “부질없는 시도”들과 싸워왔다.

프랑스 보르도대학의 도서관. 기득권 세력은 새로운 지식을 억압 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보르도대학의 도서관. 기득권 세력은 새로운 지식을 억압 했다. [AFP=연합뉴스]

유럽 최고의 과학사학자(출판사 설명이지만 굳이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로 불리는 저자는 인간의 호기심의 결과인 새로운 지식의 태동과 그것을 부인하고 숨기려는 기득권 세력의 각종 금지와 억압, 그리고 그것이 호기심을 더욱 자극해 지식을 더욱 널리 퍼지게 하는 과정을 촘촘히 추적해 그물 같은 인간 지성사를 엮어낸다.

그렇다고 지식이 정녕 우리를 자유롭게만 하는가? 그 또한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진실의 개척자들은 자신이 찾아낸 진실 때문에 억압을 당했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죽을 때까지 숨겼으며, 다윈은 『종의 기원』의 출판을 앞두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건 마치 살인을 자백하는 일과 같다네.”

또한 새롭게 찾아낸 지식이 영원한 진리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은 잠정적인 지식만 전달할 수 있을 뿐, 또 다른 실험에서 반박당할 수 있다는 것을 늘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지적했듯, 지식은 가능성이자 또한 힘을 의미하기에 그것의 어두운 면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원자폭탄과 배아 연구 등을 생각해보라)

저자가 지식의 궁극적 승리에 무한한 지지를 보내면서도, 지식이 통제돼야 한다는 조건을 거두지 않는 것이 그래서다. 저자는 페이스북을 예로 든다. “외로운 사람들을 연결해 사회적 결합체로 만든다는 단순하면서도 훌륭한 생각”이 통제 장치가 없는 까닭에 “고객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그들의 정보를 대가 없이 빼앗는 도구”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일부 사용자들의 태도도 당혹스럽다. “기계 앞에 홀로 고립된 이들이 금지된 일을 한다는 쾌감에 혐오 발언을 퍼뜨리고 인종주의 흑색선전을 조장하며 가짜뉴스를 유통시킨다.”

막스 베버가 선언한 탈주술사회를 넘어 원숙한 지식사회로 접어든 오늘날 지식의 의미는 과거와는 아주 달리 평가돼야 한다. 또 지식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 이용자도 통제력을 스스로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평생을 과학사 연구에 바친 노학자는 2000년 동안 끊이지 않았던 지식 관련 논쟁들을 펼쳐 보이면서 오늘날 지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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