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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서운 배불뚝이 중년 남성, 노화 아닌 갱년기 질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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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호 28면

헬스PICK

중견기업 임원인 김모(57)씨는 수 개월 전부터 이유 없는 피로감에 시달렸다. 회사에선 업무량은 많은데 일의 능률이 떨어져 난감했다. 집에서도 쉬 잠들지 못해 밤마다 뒤척이느라 편치 않았다. 지인들과 간간이 즐기던 골프마저 비거리가 줄면서 흥미를 잃었다. 성생활도 예전 같지 않아 상심이 컸다. 스트레스와 노화 탓인가 자책했던 김씨는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남성 갱년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남성호르몬 수치가 연령대별 평균 수치보다 20% 정도 낮은 상태였다. 그는 “적절한 치료와 생활 습관 교정을 병행하면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의사 말에 안도했다.

50세 넘으면 남성호르몬 감소 증상 #성 기능, 근육 줄고 탈모·뱃살 늘어 #비만, 만성 대사 질환자 특히 취약 #호르몬 치료, 운동·식이요법 병행 #가족 배려가 활력 회복에 큰 도움

갱년기는 성 호르몬 감소 탓에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 기간을 말한다. 주로 중년 여성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남성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은 폐경을 겪으면서 호르몬 변화 양상을 확실히 인지하지만, 남성은 서서히 진행돼 자신이 갱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전에 없던 피로감·불면증이 초기 증상

남성호르몬은 대부분 고환에서 생산되며, 남성의 신체 건강과 정신 상태를 조절하고 성생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분비가 왕성한 10~20대에 정점을 찍고 30대 전후로 서서히 감소한다. 70대엔 10대 청소년의 절반 가량 분비된다. 노원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이준호 교수는 “시상하부·뇌하수체·고환을 잇는 축의 활성이 저하하면서 남성호르몬 분비가 감소한다”며 “55~60세에 이르러 남성호르몬 감소에 따른 증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남성호르몬 분비가 줄었다고 모두 갱년기 증상을 보이는 건 아니다. 운동 부족으로 비만이 왔거나 오랫동안 과도한 음주·흡연·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과 같은 만성 대사 질환을 앓는 사람은 남성 갱년기에 특히 취약하다.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먼저 밤이 두려워진다. 성욕 감퇴, 발기부전으로 성생활이 원만하지 않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무기력감,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집중력이 부쩍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자던 이도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밤이 늘어난다.

신체 변화도 눈에 띈다. 근육량이 주는 대신 체지방이 늘면서 체형이 변한다. 거미처럼 팔다리는 가늘어지는데 배는 불룩 나온다. 체모가 줄고 골밀도가 감소하면서 뼈가 약해져 골절상을 많이 당한다. 한림대성심병원 비뇨의학과 방우진 교수는 “남성 갱년기 초기 증상으로 피로감과 수면장애,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를 간과해 질환을 악화하는 사례가 꽤 있다”며 “신체 증상인 근육량과 근력 저하, 복부 지방 증가가 동반된다면 남성 갱년기를 의심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르몬 수치를 재 보면 좀 더 확실해진다. 3.5ng/ml보다 낮을 때 남성호르몬이 저하돼 있다고 본다.

남성은 여성과 달리 갱년기를 겪어도 잘 표현하지 않고 숨기곤 한다. 스스로 병원을 찾아 상담과 치료를 받는 남성은 더 드물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남성 갱년기를 단순한 노화 현상이 아닌 질병으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방 교수는 “남성호르몬의 장기적인 저하는 골밀도 감소로 인한 골다공증·골절 질환을 일으켜 사망률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됐다”며 “호르몬 저하에 증상을 동반한다면 남성호르몬 보충요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호르몬 보충제는 먹는 약, 피부에 부착하는 약, 주사 등이 있어 환자 상황에 맞게 치료제를 선택해 시행한다. 보통 3~6개월 치료 받으면서 효과·부작용을 판단해 치료를 지속할지 정한다. 호르몬 보충요법은 증상에 따라 성 기능 개선 6~12개월, 체지방 개선 12~24개월, 골밀도 개선 36개월 시행 받았을 때 가장 효과가 잘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교수는 “치료를 꾸준히 지속하면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유리하다”면서도 “원하는 치료 효과가 나타나고 잘 유지된다면 잠시 치료를 중단했다가 다시 증상이 발생하거나 필요할 때 시작해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호르몬 치료만으로 끝내선 안 된다. 생활습관 교정은 남성 갱년기 극복에 필수다. 특히 규칙적인 운동은 호르몬 보충 치료의 부스터 격이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비뇨의학과 박민구 교수팀이 남성 갱년기 환자 50명을 대상으로 3개월간 치료 효과를 분석한 결과, 남성호르몬 수치가 호르몬 치료만 한 환자군에선 97% 증가했지만, 운동과 치료를 병행한 환자군에선 145% 증가했다. 박 교수는 “10개월 이상 충분한 호르몬 치료와 함께 규칙적인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남성호르몬 치료 중단 후에도 그 효과를 잘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땀 날 정도의 유산소 운동은 남성호르몬 수치를 높이는 데 효과적인 걸로 평가받는다.

6~12개월 호르몬 치료하면 ‘회춘 효과’

체중 관리 역시 중요하다. 비만 남성은 체중만 줄여도 남성호르몬 수치가 상승한다. 비만은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 대사증후군으로 이어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적정한 체중을 유지하는 게 곧 남성 갱년기를 관리·예방하는 길이다. 체중을 감량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은 식이 조절이다. 영양소가 고루 든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고지방식과 과식을 피한다. 남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아연은 굴·게와 같은 해산물과 콩, 깨 등에 많이 들었다. 마늘이나 부추, 토마토, 브로콜리, 견과류도 남성에게 좋은 식품이다.

무엇보다 갱년기 극복엔 가족의 사랑과 배려가 큰 도움이 된다. 부인과 자녀는 따뜻한 말과 대화로 정서적인 지지를 표현해주는 게 좋다. 가족 관계가 원만해지고 병의 경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갱년기를 겪는다면 함께 식습관과 운동습관을 개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교수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시대”라며 “예전과 다른 모습을 단순 노화로 치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치료한다면 건강하고 활력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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