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화웨이·SMIC에 첨단 장비 수출 규제…중국 ‘반도체 굴기’ 싹 잘라 패권 유지 전략

중앙선데이

입력 2021.01.30 00:01

업데이트 2021.01.30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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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호 08면

반도체 세계대전 - 미·중·한·대만 각축

신·증설 검토 보도가 나온 미국 오스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사진 삼성전자]

신·증설 검토 보도가 나온 미국 오스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사진 삼성전자]

스마트폰 약 40개, TV 약 120개, 자동차 약 300개, 레벌3 자율주행차 약 2000개….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 개수다. 개수도 개수지만 단 1개의 반도체만 사용한다고 해도 그게 없으면 제품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만큼 반도체의 중요성이 크다. 최근 자동차용 반도체가 모자라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가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반도체가 없으면 자동차가 굴러가지 않고, 전투기도 뜰 수 없고, 미사일도 쏠 수 없다.

미국, 시스템 반도체 70% 점유
중국 파운드리에 맡기긴 찜찜

중국, 전체 시장의 5% 그치지만
반도체 자립도 매년 무섭게 성장

미, 한·대만과 반도체 삼각 동맹
삼성전자·TSMC 공장 유치 나서

한국 정부 지원금 OECD 중 꼴찌
전문가 “세제 혜택 등 뒷받침을”

5G(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과 같은 첨단산업의 등장으로 반도체의 중요성은 이전보다 더 커졌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중추이자 국가 간 첨단 기술력 대결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주요국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차세대 기술패권 다툼이 핵심인 미·중 무역전쟁이 반도체 전쟁으로도 번진 가운데 한국·대만까지 참전하는 ‘세계대전’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 그동안 반도체 시장은 미국이 주도해왔다. 매출 기준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절반 수준인 47%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정보를 연산·처리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 최강자다. 시장점유율이 70%에 이른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두뇌인 중앙처리장치(CPU)·앱처리장치(AP)를 개발하는 인텔·AMD·퀄컴 등이 모두 미국 기업이다. 반도체 산업 구조를 크게 나누면 미국·유럽·일본 등이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하면 한국·대만·중국의 파운드리 회사가 생산하는 형태다. 파운드리는 설계대로 반도체를 만드는 곳이지만, 단순한 하청 공장은 아니다. 기술력은 물론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한 전문 분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기술력이 필요한 설계(팹리스)와 시설투자가 필요한 생산(파운드리)이 나뉘어졌다.

그런데 지난해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반도체 제재에 나서면서 최근 이 같은 구도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5월 중국의 통신장비 기업인 화웨이를 겨냥해 반도체 판매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미국 퀄컴의 AP를 받아 스마트폰을 만들던 화웨이는 직격탄을 맞았다. 미·중 반도체 전쟁의 도화선이다. 그로부터 넉달 후 미국은 중국의 파운드리인 SMIC를 블랙리스트(거래제한 기업 명단)에 올리고 반도체 관련 첨단 장비 공급을 차단했다. 사실 중국의 세계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2019년 기준으로 5%에 그친다. 미국은 물론 메모리 반도체시장을 이끌고 있는 한국(19%)과 비교해도 싸움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성장 속도는 무섭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가 곧 나라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보고 2014년부터 최근까지 1조 위안(약 170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자립을 추진했다. 이 기간 30여 개의 중국 기업이 다른 나라의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거나 기술을 가져다 쓰면서 단기간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이른바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중국은 중앙정부가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면서 최단 기간 외부 기술을 흡수해 성공한 예”라고 설명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미국은 물론 한국·대만 등 반도체 강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렸다. 중국이 나라를 가리지 않고 주요 기업의 반도체 기술을 훔치거나, 인재를 빼돌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2019년 화웨이가 통신장비를 통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미국은 이를 빌미로 중국과의 반도체 전쟁을 시작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화웨이야 통신장비 기업이지만, SMIC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이자 자존심”이라며 “기술 도용 등이 잦았던 만큼 미국의 제재는 중국이 자초한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중국에 대한 제재 배경엔 반도체 패권을 지키기 위한 미국의 정치적인 이유도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19년 중국의 반도체 생산량 점유율은 13.9%로 미국(12.8%)을 넘어섰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미국은 팹리스(시스템 반도체 설계 회사) 위주여서 반도체 생산량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미국의 팹리스가 중국 파운드리에 반도체 생산을 맡기는 형국이 되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스텔스 전투기나 미사일에 쓰일 고성능 반도체 설계도를 중국에 고스란히 넘겨주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지난해 6월 연례보고서에서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가 SMIC에 “2조7000억원을 투자하고 15년간 법인세를 면제해주겠다”는 파운드리 육성 전략을 내놓은 직후 미국이 SMIC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재성 극동대 반도체장비공학과 교수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주요 장비는 대개 미국이 만들거나 미국의 기술”이라며 “SMIC에 대한 장비 수출 규제는 중국 반도체의 싹을 자르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일본이나 한국, 대만의 반도체 장비 업체를 인수하는 식의 우회로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이 일본의 장비 업체 고쿠사이일렉트릭을 인수하려고 하자, 미국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는 최근 웃돈을 주고 고쿠사이를 사들였다. 어플라이드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SK하이닉스, 인텔,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대만 TSMC에 핵심 장비를 공급하는 세계 1위 업체다. 김동원 KB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중국 파운드리가 쪼그라들면서 시장 플레이어의 위치나 위상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며 “SMIC 대신 TSMC가 세계 각국의 러브콜을 받고 있고, 중국 수출이 막힌 퀄컴의 AP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잦아질 것으로 내다본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새로 출범한 조 바이든 정부도 안보·기술 보안을 이유로 트럼프 정부의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진행한 경영콘서트에서 “미국 내 반중국 정서는 73%에 육박한다”며 “미국은 여론이 주도하는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중국 정책이 유화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되레 미국이 한국·대만 등과 연합군을 형성하면서 세계대전으로 확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바이든 정부는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줄 세우기’로 반도체의 세계 서플라이체인(생산·공급의 연쇄적 과정)에서 중국을 배제시키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반도체 전문지 세미컨덕터엔지니어링은 “첨단 반도체 기술은 스텔스 전투기나 항공관제, 유도 미사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이기 때문에 한국·대만과 ‘반도체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 정부가 TSMC의 애리조나 주 공장 신설을 관철시킨 것이나, 미국 언론이 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 공장 신·증설 군불을 때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의회도 반도체 공장 신·증설에 250억 달러(약 29조원)를 지원키로 하는 등 반도체 기업 유치에 뛰어 들었다. 이종호 소장은 “미국 반도체 산업의 약점이라면 반도체 생산능력”이라며 “중국 제재와 동시에 TSMC, 삼성전자 공장을 (추가) 유치하겠다는 건 반도체 패권을 더욱 공고히 다져 4차 산업혁명 등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굴기 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첨단 반도체를 만들 기술은커녕 장비도 없기 때문이다. 최재성 교수는 “중국의 인적 네트워크가 워낙 좋기 때문에 일부 장비는 자급자족할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미국의 핵심 장비를 사오지 못하면 따라오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최 교수는 “SMIC의 기존 설비로 저성능 반도체 생산은 가능하므로 성능보단 안정성이 중요한 자동차·전기차용 반도체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도 “중국 정부가 전기차 개발에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고 내수시장이 워낙 커서 자동차용 반도체 분야에선 앞서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 문제는 한국이다. 경쟁사인 TSMC가 정부 지원과 한 발 앞선 기술력으로 반도체 시장에서 독주 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애플·퀄컴·소니 등 유수의 기업이 하루가 멀다 하고 TSMC를 찾아 제품 생산을 요청하고 있다. 그 사이 TSMC의 주가는 2배로 뛰었고, 시가총액 세계 10위에 진입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 중심의 개별 투자가 사실상 전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4~2018년 반도체 기업 매출 대비 정부 지원금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0.5~0.8%로 꼴찌 수준이었다. 미국·대만·중국이 반도체 기업에 대한 세금 공제나 연구·개발에 다양한 지원을 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미국도 의회까지 나섰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미·중 반도체 전쟁에 더해 일본 수출 규제까지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며 “우리도 세계 시장에서의 입지 수성을 위해선 연구·개발이나 세제 혜택 등의 정책적 뒷받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기현 상무는 “우리나라는 정부 지원이 거의 없다 보니 삼성과 같은 초일류 기업만 반도체를 하는데 자동차용 반도체 정도는 중견기업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정부 지원만 따라 준다면 반도체 생태계를 더욱 단단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용어 설명
팹리스·파운드리 반도체 제조사는 설계부터 생산까지 분업화된 과정을 거친다. 설계에 특화된 기업을 팹리스 업체, 주문생산을 하는 회사를 파운드리라고 부른다. 설계부터 생산까지 하는 기업은 반도체 종합제조사(IDM)라고 한다. 인텔·삼성전자·SK하이닉스 대표적 반도체 종합제조사다. ARM·퀄컴·AMD·엔비디아 등은 설계에 특화한 팹리스 회사이고, 대만의 TSMC는 파운드리다.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반도체는 상온에서 전기가 잘 통하는 금속과 통하지 않는 절연체의 중간 정도의 전기저항을 가진 물질이다. 이런 전기적 성질을 이용해 만든 반도체 소자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작업을 수행하고 행동하게 하는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로 나눌 수 있다.  D램·낸드플래시가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핵심인 CPU, GPU(그래픽카드), 앱 처리장치(AP) 등은 대표적인 비메모리 반도체다. 메모리와 비메모리 시장점유율은 3대 7 정도다.

반도체 수퍼 사이클 통상 반도체 시장의 사이클이라고 하면 메모리 시장의 사이클을 가리킨다.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변동성이 크고, 시장 지배자의 힘도 크게 미친다. 가격 변동성 커서 전체 시장의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는 사이클이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첫 사이클은 PC 보급 때 반도체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며 나타났다. 2차는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며, 3차는 서버 수요가 늘어난 클라우드 시대 영향으로 나타났다. 4차 사이클은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문화 영향이 크다. 재택근무가 늘며 서버 수요가 증가했고 PC 구입, 스마트폰 교체 수요도 늘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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