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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3개에 2조 쐈다' 美머크 보따리 풀게 만든 토종 제약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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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경기도 용인에 설립한 국내 최대 세포치료제 생산시설 '셀센터'. [사진 GC녹십자]

경기도 용인에 설립한 국내 최대 세포치료제 생산시설 '셀센터'. [사진 GC녹십자]

국내 제약사가 다국적 제약사에 원천기술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GC녹십자랩셀에 따르면, 이 회사가 미국에 설립한 관계사인 아티바바이오테라퓨틱스가  미국 머크(한국법인명 MSD)와 항암제를 공동 개발하기 위해 독점 협력 및 라이센스 계약을 28일(현지시간) 체결했다. GC녹십자랩셀의 기술을 활용해, 아티바바이오테라퓨틱스와 머크가 공동으로 항암제를 개발한다는 것이 양사의 이번 계약 내용이다. 단계별 기술 수출료를 다 합칠 경우 양사의 이번 계약 총규모는 18억6600만 달러(2조900억원)다. 2015년 한미약품, 지난해 알테오젠에 이어 국내 제약업계 사상 3번째로 큰 규모의 기술수출이다.[단독] 녹십자랩셀 항암제, 미국 머크에 기술수출

29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미국 머크가 최대 2조원대 보따리를 풀면서까지 눈독 들인 GC녹십자랩셀의 기술은 크게 3가지다. 이런 기술이 향후 블록버스터급 항암제를 개발하는데 유용할 것으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①NK세포 대량 배양기술 

NK(자연살해·Natural Killer)세포는 면역을 담당하는 백혈구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암세포를 직접 공격·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세포다. NK세포는 소량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NK세포치료제를 만들려면 우선 NK세포를 고활성·고순도로 분리하고 대량 배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GC녹십자랩셀은 지난해 6월 일본 특허청으로부터 NK세포 배양 방법 특허를 취득했다.

GC녹십자랩셀과 GC(구 녹십자홀딩스)가 입주한 GC녹십자 본사 건물. [사진 GC녹십자]

GC녹십자랩셀과 GC(구 녹십자홀딩스)가 입주한 GC녹십자 본사 건물. [사진 GC녹십자]

②NK세포 동결 보존 기술 

NK세포를 암 환자에게 주입하려면, 우선 건강한 사람에게 NK세포를 추출한 뒤 얼려서 보관한다. NK세포의 활성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이후 실제 치료 과정에 활용하려면 얼렸던 NK세포를 해동하는 과정을 거친다.

GC녹십자랩셀은 “NK세포를 동결·해동하는 과정은 상당한 기술력을 필요로 해 상용화의 핵심으로 꼽히는데, 머크가 이 기술에도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③키메라항원수용체 결합 기술

키메라항원수용체(CAR·Chimeric Antigen Receptor) 는 특정 암 항원을 인식할 수 있는 단백질이다. NK세포에 키메라항원수용체를 결합하면, NK세포가 목표로 삼는 항원과 만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GC녹십자랩셀은 키메라항원수용체와 결합한 NK세포의 증식·유지·활성화 관련 기술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GC녹십자가 설립한 아티바바이오테라퓨틱스 로고. 사진 아티바바이오테라퓨틱스

미국 샌디에이고에 GC녹십자가 설립한 아티바바이오테라퓨틱스 로고. 사진 아티바바이오테라퓨틱스

머크가 독점 협력 및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인 미국 아티바바이오테라퓨틱스는 GC녹십자랩셀이 미국에서 임상과 연구·개발을 위해 설립한 신약개발전문회사(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원천기술을 이전받아, 미국 현지에서 신약 개발만 담당한다는 뜻이다.

GC녹십자랩셀 로고

GC녹십자랩셀 로고

아티바바이오테라퓨틱스는 이미 림프종 등 혈액암을 치료하는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림프종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구성하는 림프계에 발생하는 악성종양을 말한다. 지난해 열린 제25회 유럽혈액학회에서 GC녹십자랩셀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GC녹십자랩셀의 항암제를 사용한 림프종 환자의 절반(50%)은 부분관해(PR·종양이 절반 이상 축소되면서 4주 이상 증상이 악화하지 않는 상태)가 관찰됐고, 부작용도 발견되지 않았다.

고형암 3종 치료제 공동 개발 

하지만 머크는 혈액암 대신 고형암 관련 제품 3가지를 개발하기로 했다. 혈액암이 림프기관의 암세포 때문에 발생한다면, 고형암은 간·폐·유방 등에 암세포가 덩어리로 자라난 경우다. 아티바바이로테라퓨틱스가 임상 중인 위암·유방암 이외에, 다른 유형의 고형암에 세포치료제 관련 기술이 통할지 양사가 공동으로 연구·개발해보자는 것이다.

양사가 고형암 치료제로 기술협력 범위를 한정한 이유에 대해서 GC녹십자는 “혈액암보다 고형암 세포치료제를 보다 시급하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머크가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 머크와 기술수출 및 독점 협력 사실을 공개한 아티바바이테라퓨틱스. 아티바바이오테라퓨틱스 캡쳐

미국 머크와 기술수출 및 독점 협력 사실을 공개한 아티바바이테라퓨틱스. 아티바바이오테라퓨틱스 캡쳐

다만 기술 수출의 특성상 양사가 세포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효과가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나면 계약 규모는 축소될 수 있다. 총액의 절반가량(9억6675만 달러·1조800억원)을 단계별 성공에 따른 기술료(마일스톤·milestone) 형태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술 개발에 성공해 실제로 제품을 출시할 경우 상업화에 따른 사용료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허혜민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기술 이전 계약은 GC녹십자랩셀의 글로벌 경쟁력을 검증하는 시작 단계”라며 “다국적 제약사에 대규모 기술 이전 레퍼런스를 보유하면 추후 추가 기술 수출이 용이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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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9일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961.23)보다 32.50포인트(3.38%) 내린 928.73에 마감했지만, 머크와 계약 소식이 알려진 녹십자랩셀 주가는 6.83% 급등해 12만82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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