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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벨' 언제 울릴까…‘정상통화 순번표’로 본 한반도 운명

중앙일보

입력

지난 20일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화 정상 외교를 진행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2일 캐나다를 시작으로 유럽 우방 정상들과 통화를 마쳤다.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28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 통화했다.

미국의 전화외교에는 일반적인 룰이 있다. 캐나다 등 인근 동맹국을 시작으로 유럽 우방국과 아시아 동맹국으로 이어지는 수순이다. 다만 새 행정부의 관심사와 향후 추진할 외교전략에 따라 순서에 변화가 생긴다. 이 때문에 각국 정상들은 미국 대통령의 통화 순서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 룸에서 코로나19 관련 대응책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 룸에서 코로나19 관련 대응책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가장 큰 변화를 줬던 이는 2009년 1월 20일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오마바는 취임 다음날인 21일 팔레스타인ㆍ이스라엘ㆍ이집트ㆍ요르단 등 중동지역 정상들과 가장 먼저 통화했다. 당시 중동은 말 그대로 ‘화약고’였다. 이곳 정상들과 가장 먼저 접촉했던 오마바 행정부의 외교는 실제로 중동에 집중됐다. 재임 중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한반도 문제는 소외됐다. 이는 전화외교 순서에도 반영됐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에 이어 유럽의 우방국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총리는 물론 후진타오(胡錦濤) 중국국가 주석과도 통화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의 첫 통화는 취임 2주가 지난 2월 3일이었다. 일본과 비교하면 5일이나 늦다. 오바마 정부가 한반도 문제를 ‘후순위’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1년 5월 1일 밤 11시 35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긴급 발표했다.[백악관]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1년 5월 1일 밤 11시 35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긴급 발표했다.[백악관]

이러한 인식은 ‘전략적 인내’로 불린 대북정책으로 이어졌다. 요약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제재를 가하며 기다리는 전략이다.

북한은 미국의 전략에 2차 핵실험으로 응수했다. 2012년엔 장거리 미사일 ‘광명성 3호’ 발사와 이듬해 2월에 3차 핵실험이 이뤄졌다. 특히 미국 대선이 치러진 2016년엔 4ㆍ5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20차례나 도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7년 1월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ㆍ미 정상통화를 상대적으로 앞당겼다.

트럼프는 영국을 시작으로 캐나다, 이스라엘, 인도 정상 등과 먼저 통화했다. 다음은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비롯해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우방국 정상이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봉쇄전략’에 앞장섰던 일본과는 유럽 국가보다 먼저 통화가 이뤄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는 취임 3주가 지난 2월 10일에야 이뤄졌다. 트럼프 임기 내내 이어졌던 미-중 갈등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한국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한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였다. 그럼에도 정상통화는 미ㆍ일 통화 다음날인 1월 29일 성사됐다.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 미국의 상황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현재 남북, 북·미 관계는 긴 경색국면을 거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를 외교적 우선순위에 배치하기를 바란다. 실제로 지난 18일 신년회견에서 “바이든 정부가 북ㆍ미 대화와 북ㆍ미 문제를 뒷순위로 미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 문제가 바이든 정부에 있어 여전히 우선순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반영하는 전화외교는 문 대통령의 기대와 다소 다르게 전개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바이든 대통령이 우선순위를 두고 통화한 국가의 공통점은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봉쇄전략에 직접 참전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이다. 미국의 최우선 외교과제가 한반도가 아닌 중국임을 분명히 한 대목이다. 특히 28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와의 통화 후에는 “일본과 미국, 호주, 인도 간 협력을 추가로 증진하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들은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두고 꾸린 ‘쿼드(Quad)’ 참여국이다.

이러한 기류는 외교 채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ㆍ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연쇄 통화 후 낸 보도자료에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봉쇄할 주축인 ‘한ㆍ미ㆍ일 협력’을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필리핀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는 “미국은 중국 공산당의 압박에 맞서 동남아 국가들과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며 직접 중국을 견제했다. 그러나 27일 첫 기자회견에서는 한반도 관련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2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 통화에서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비핵화 실현은 공동의 이익에 부합한다. 중국은 문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며 적극 지지한다”고 답했다. 중국 인민일보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이례적으로 1면에 주요기사로 보도했는데 다분히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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