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스탑 대첩' 완승한 美 '불개미'…헤지펀드 '팔자' 부메랑 맞나

중앙일보

입력 2021.01.28 16:57

업데이트 2021.01.28 18:12

월스트리트의 문법이 무너졌다. 헤지펀드가 주도하는 공매도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불개미' 군단이 승리하면서다. 비디오게임 유통 체인인 '게임스탑'을 둘러싼 공매도 대첩에서 막대한 손실을 본 헤지펀드가 백기 투항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불개미(nerd) 대 월가의 대결에서 역학관계가 바뀌었다"고 할 정도다.

게임 대첩의 승기를 몰아 미국 불개미는 SNS 등을 통해 세를 결집하며 일부 주식에 대한 집단 매수에 나서고 있다. 공매도 격파의 기치를 든 불개미의 강공은 시장의 급락이란 부메랑으로 날아오고 있다. 손실 만회를 위해 헤지펀드가 주식을 처분하며 증시가 급락하는 등 시장은 요동쳤다. 긴장하는 곳은 미국 금융당국과 정부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백악관까지 나서 “사태를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27일 뉴욕 맨하탄의 한 게임스탑 매장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27일 뉴욕 맨하탄의 한 게임스탑 매장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5일간 9배 폭증…‘게임스탑’ 뭐길래?

미국판 '공매도 대첩'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 게임스탑이다. 전 세계에 약 6000여개의 매장을 두고 비디오 게임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게임 소매상이다. 게임 소매상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지만 오프라인에서 게임 콘솔 등을 구매하는 고객이 크게 줄고 온라인 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적자가 이어졌다. 지난해 말에는 1000여 개의 매장을 닫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게임스탑 주가는 그야말로 폭등했다. 연초 10달러대이던 주가는 지난 12일 20달러를 넘어, 지난 13일에 31달러로 뛰었다. 27일(현지시간)에는 347.5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5거래일 만에 40달러에서 350달러 수준까지 로켓 상승했다. 이달 초 10억 달러 수준이던 시가총액은 25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한때 ‘잡주’로 불렸던 이 주식은 미국 금융시장과 사회를 뒤흔드는 핫 이슈로 떠올랐다.

게임스탑 주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게임스탑 주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게임스탑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미국의 온라인 반려동물용품 쇼핑몰인 ‘츄이’의 최고경영자(CEO) 라이언 코언이 지난해 8월 게임스탑 주식을 샀다고 밝히면서다. 4달러에 불과했던 주가는 3개월 만에 16달러가 됐다.

주가가 달아오른 건 지난 13일 코언이 게임스탑의 이사진에 합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미국 개미들이 게임스탑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점포를 모든 온라인 유통점으로 바꾸면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코언의 말에 몰려든 것이다.

헤지펀드도 판에 뛰어들었다. 개인투자자의 '사자'로 주가가 뛰자 기업가치가 고평가됐다고 판단하며 공매도에 나선 것이다. 유통물량의 144%를 공매도로 확보했다고 알려졌을 정도였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가가 내려가면 싼값에 사서 갚아 차익을 얻는 투자 기법이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는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개미들은 공매도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구심점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정보 공유방인 '월스트리트베츠(Wall Street Bets·WSB)'다.

작전주 '게임스탑'을 앞세운 불개미의 화력은 막강했다. 미국 개미의 '성지'로 불리는 WSB에서 “물러서면 배신자다” “게임스탑 주가가 오르면 복지 시설에 기부하겠다” 등 게시글을 올리며 서로를 독려했다.

개인투자자들은 현물 주식뿐만 아니라 파생상품시장에서 콜옵션(만기일 이전에 미리 행사한 가격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권리)까지 사들이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유명 투자가인 차마스팔리하파티야는 CNBC에 “평범한 사람이 프로 투자자와 똑같이 접근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개미군단이 화력을 뿜어내면서 26일 하루에만 게임스탑의 거래량은 1억7858만주를 기록했다. 같은 날 애플(9839만주)과 테슬라(2313만주)의 거래량을 압도했다. 1월 한 달을 놓고 보면 게임스탑(11억5301만주)의 거래량은 애플(19억2073만주)에는 못 미쳤지만 테슬라(6억4465만주)보다는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서학개미도 게임스탑 대전에 가세했다. 28일 예탁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18~27일 국내 투자자는 5992만 달러(667억원)어치의 게임스탑 주식을 사들였다.

미국 개인 투자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월스트리트베츠' 대문. 월스트리트베츠 캡처

미국 개인 투자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월스트리트베츠' 대문. 월스트리트베츠 캡처

美 ‘불개미’ 화력에 헤지펀드 5조 손실

대오를 결성하고 덤비는 하룻강아지의 일격에 무너진 건 헤지펀드다. 27일 헤지펀드인 멜빈 캐피털은 게임스탑으로 37억 달러(4조 1325억원)가 넘는 손실을 내고 공매도 계약을 종료했다. 금융분석업체 S3 파트너스에 따르면 올해 들어 공매도 세력들이 게임스탑 공매도로 본 손실 규모는 50억 달러(약 5조 5845억원)가 넘는다.

헤지펀드가 막대한 손실을 입은 건 주가가 더 오르기 전 손실을 줄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주식을 사들이는 '공매도 쥐어짜기(short squeeze)' 때문이다. 빌려서 판 주식을 다시 사서 갚아야 하는 데 주가가 오르면 공매도로 인한 손실이 무한대가 될 수 있는 만큼 어느 선에서 손실을 확정해야 한다.

불개미의 '사자' 행렬에 손실을 줄이기 위한 헤지펀드의 매수세까지 더해지며 게임스탑의 주가는 더 치솟았다. 헤지펀드가 손실을 멈추기 위해 주식을 사들이며 게임스탑의 주가는 더 치솟았다. ‘공매도 머니’를 태워 개미 군단의 화력에 보태준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셔터스톡

셔터스톡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견되는 공매도 대첩에서 불개미가 승리했지만 금융시장은 또 다른 후폭풍에 몸을 사리고 있다. 게임스탑 공매도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 '마진콜'을 요구받은 헤지펀드가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내다 팔며 시장이 출렁일 수 있어서다. 마진콜은 손실이 난 공매도 계약 등에 대해 증거금 부족분을 채우라는 요구다.

실제로 27일 미국 증시 3대 지수는 나란히 2% 넘게 하락했다. 시장 변동성도 커졌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변동성지수(VIX)는 전 거래일보다 61.64% 폭등한 37.21을 기록했다. 불개미의 승리가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적에 기반을 두지 않은 투기 광풍으로 인한 대규모 손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TD 아메리트레이드 등 몇몇 증권사가 이날 게임스톱 등의 주식 거래를 일부 제한했다. 시장에서는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여론을 주도해 특정 주식을 띄우는 행위를 주가 조작으로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데나 프리드먼 나스닥 CDO는 "익명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펌프 앤든 덤프'(헐값에 사들인 주식에 대한 거짓 정보를 온라인에 퍼뜨려 주가를 끌어올린 뒤 차익을 얻는 불법거래)를 유발할 가능성을 당국이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증권 규제 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SEC는 이날 성명을 통해 “투자자 보호와 효율적인 시장 관리를 위해 유관기관들과 협력하고 있다”며 “상황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 중”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기자들과 만나 “재닛 옐런 재무장관을 비롯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팀이 게임스탑 등 이상 주가 흐름을 보이는 주식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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