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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문, 이재명에 맘 안줬다"···제3후보들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입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의 양강 구도가 흔들리면서 여권에선 '제3 후보론'이 솔솔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의 양강 구도가 흔들리면서 여권에선 '제3 후보론'이 솔솔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의 차기 대선 구도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지속되던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양강 구도가 흔들리면서다.

새해 들어 발표된 여론조사에선 이 지사가 이 대표를 2배 이상 앞섰다. 한국갤럽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12~14일)에선 23% 대 10%,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18~20일)에선 27% 대 13%로 나타났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 지지율까지 흔들리면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상승세를 탄 이 지사 역시 지지율 30%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던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정치 생명이 벼랑 끝에 몰렸다. 당내에선 “제3 후보가 커나갈 ‘블루오션’이 충분히 남아 있다. 아직 ‘친문’은 무주공산”(민주당 전략통 의원)이란 말도 나온다. 친문 진영은 평소 관계가 서먹했던 이 지사에게 순순히 차기 후보 자리를 넘겨주지 않겠다는 정서가 아직 강하기 때문이다.

제3의민주당대선후보여론조사. 그래픽=김경진 기자capkim@joongang.co.kr

제3의민주당대선후보여론조사. 그래픽=김경진 기자capkim@joongang.co.kr

여권의 제3 주자가 누구인지를 묻는 여론조사도 등장했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의 의뢰로 지난 16~17일 실시한 ‘민주당 대선 제3주자 유력 인물’ 조사에선 정세균 국무총리 17.0%, 추미애 법무부 장관 12.1%,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7.4%,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6.4% 순이었다. 이 조사를 계기로 ‘친문’을 향한 여권 대선 잠룡들의 물밑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율 순서로 이들의 움직임을 정리했다.

① 최고 스펙 정세균

정세균 국무총리는 최근 코로나19 경제 대책 등 각종 국정현안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세균 국무총리는 최근 코로나19 경제 대책 등 각종 국정현안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여권 잠룡 가운데서 가장 주목을 받는 인사는 정세균 국무총리다. 정 총리는 최근 자영업자 손실보상제 도입을 지시하면서 자신만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이 25일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손실보상을 제도화할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하면서 힘도 실렸다.

지난달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빠른 교체를 문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했고, 이 역시 문 대통령이 수용했다. 이어 여당이 추천한 박범계 의원의 법무부 장관 내정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를 표하며 이 대표와도 각을 세웠다. “문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무총리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연일 확대하고 있다”(민주당 수도권 의원)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대표와 마찬가지로 호남 출신에 국회의장, 총리, 당 대표 등을 두루 역임해 ‘스펙’만 놓고 보면 정치권에서 따라갈 사람이 없다.

측근 그룹의 보폭도 커졌다. 이른바 ‘SK계(정세균계)’ 의원 모임인 광화문 포럼이 지난 25일 열렸다. 이날 행사엔 국회의원 40여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했다. 정 총리의 지지자들은 ‘우리가 정세균입니다’라는 제목의 ‘우정(友丁)’ SNS 페이지도 만들었다.

정 총리가 무엇보다 신경 쓰는 건 코로나19 방역이다. “코로나19 방역에 문재인 정부의 성패가 달려 있고, 이게 곧 정 총리의 임무”(총리실 관계자)라는 설명이다. 코로나19 확산이 계속되면, 자칫 총리 재임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 개각 이전엔 대선 행보가 불가능하다는 게 불안 요소로 꼽힌다.

② 여전사 추미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6일 퇴임 전 마지막 공개 일정으로 서울동부구치소를 찾아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6일 퇴임 전 마지막 공개 일정으로 서울동부구치소를 찾아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연합뉴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임기 중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완수했다는 게 최대 자산이다. 추 장관은 지난 21일 공수처 현판식 직후 자신의 SNS에 “최초 제안하셨던 김대중 대통령과 끝내 이루진 못했지만 희망의 씨앗을 심었던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린다”며 두 전직 대통령을 언급했다. 장관 퇴임 이후 행보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권리당원의 전폭적인 지지는 추 전 장관의 강점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 국면에서 권리당원의 지지세가 눈에 보일 정도로 커졌다”며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제3후보군으로 거론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추·윤 갈등’ 과정에 강경 이미지를 얻으며, TK(대구·경북) 출신의 확장성이 외려 무색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내 지지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당내에선 추 장관이 윤 총장에게 다소 감정적으로 대처하면서 당 지지율을 떨어뜨렸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며 “2016년 당 대표가 된 것도 친문의 조직력으로 된 거라, 자력으로 세를 불리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 컴백하는 임종석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해 4 ·15 총선에서 전국을 돌며 지원 유세를 했다. 최근 정치 활동을 재개하면서 재·보선 역할론이 나오는 이유다. 뉴스1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해 4 ·15 총선에서 전국을 돌며 지원 유세를 했다. 최근 정치 활동을 재개하면서 재·보선 역할론이 나오는 이유다. 뉴스1

2019년 11월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최근 정치적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임 전 실장은 지난 22일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논란에 대해 “고통과 피해가 큰 곳에 더 빨리 더 과감하게 더 두텁게 지원하는 것이 더 긴요하고 더 공정하고 더 정의롭다”며 이 지사를 에둘러 비판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임 전 실장은 지난 4일 “우상호 의원에게 아주 적극적으로 출마를 권유했다”고 밝힌 데 이어, 21일엔 우 의원과 직접 만났다. 임 전 실장의 측근은 “이미 역할을 다 했다”면서도 “요청이 오면 추가적인 선거운동도 할 수 있다. 지난해 총선 때도 그러지 않았느냐”고 추가 행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임 전 실장이 보폭을 넓히는 것에 대해 당내에선 “586과 친문을 한데 묶는 역할을 할 것”(재선 의원)이란 전망도 나온다. 임 전 실장 본인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 출신에, 문재인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이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호남(전남 장흥) 출신에 이념적 색채가 강해 대선 본선을 놓고 보면 기존 후보들보다 나은 점이 없다”(호남 지역 의원)는 지적도 나온다.

④ 통합카드 김부겸

김부겸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출마해 검찰개혁을 강조하는 등 친문 권리당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부겸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출마해 검찰개혁을 강조하는 등 친문 권리당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해 8·29 전당대회 패배 후 자성의 시간을 갖던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도 최근 외부 활동을 재개했다. 김 전 장관은 지난 16일 TV토론 프로그램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론에 대해 “대통령이 판단할 때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되고 경제회복, 국난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분위기가 되고 국민이 양해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며 신중론을 펼쳤다.

김 전 장관은 15일과 17일 자신의 SNS에 잇따라 글도 올렸다. 김 전 장관은 “코로나19 극복과 민생경제 살리기가 정치의 최우선 목표가 돼야 한다”며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정부 여당의 일원으로서 무한 책임을 느낀다.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전당대회 이후 김 전 장관이 정치적인 메시지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내면서 비주류 색채가 옅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전당대회 때도 강도 높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친문 권리당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김 전 장관 측 인사는 “TK 출신이라는 확장성은 확실한 강점이다. 여야 지지율이 박빙이면 당원의 호출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⑤원조친노 이광재

이광재 의원은 당 K-뉴딜 총괄본부장을 맡아 K-뉴딜과 탈탄소 에너지 전환 등 각종 정책에 관여해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광재 의원은 당 K-뉴딜 총괄본부장을 맡아 K-뉴딜과 탈탄소 에너지 전환 등 각종 정책에 관여해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광재 의원은 최근 ‘부산 갈매기 모임’을 띄우며 부산 선거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강원도 평창 출신이지만, 처가가 부산이라는 점을 들어 “부산의 사위”라는 걸 강조하고 있다. 강원도지사를 지낸 확고한 지역적 기반을 ‘노풍’의 진원지인 PK(부산·경남)까지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당내에선 해석한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여의도에 재입성한 뒤엔 ‘K-뉴딜 위원회’를 도맡아 당내 정책 업무를 수행해왔다. 지난해 연말엔 『노무현이 옳았다』를 출간해 자신의 ‘친노’ 적통성도 다시 강조했다. 최근엔 각종 재정 지원금 일색인 여권에서 “과학적이지 않은 정치 논리가 앞서가게 되면 결국 우리가 어려워지게 된다”며 신속 유전자 증폭 검사(PCR) 도입을 코로나19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다는 점은 이 의원의 단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신년 특별사면으로 복권 받긴 했으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으로부터 9만 5000달러를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경력도 약점이다.

⑥ 기타 그룹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김근태계’ 출신이나, 문재인 정부에서 여당 원내대표에 통일부 장관까지 지내면서 ‘비문(非文)’ 색채가 엷어졌다. 이 장관의 한 측근은 “친문과의 관계는 원내대표 시절 이미 개선됐다”며 “586 의원들 사이에선 이 장관을 대안으로 고민하는 흐름도 있다”고 전했다.

‘시골 이장 출신’ 김두관 의원도 지난달 윤 총장 탄핵을 공개적으로 제안하는 등 강성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5일엔 손실보상제에 대해 “논쟁이 아니라 행동해야 한다”며 다른 대선후보들을 공개 비판했다. 두 번의 대선 출마로 친문 진영과 다소 사이가 벌어졌지만, ‘친노’ 적통성과 PK 지역 기반이 강점이다.

여권 일각에선 TK 출신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차출론도 나온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강점으로 꼽힌다. “수사기관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어봤다”고 말한 것에 대한 최근 사과에 대해서도 “대선 출마 포석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았다. 하지만 지난해 정계 은퇴 선언에 이어, 이번 사과문에서도 “앞으로도 정 현안에 대해서는 일절 비평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유 이사장은 이미 대선에 출마할 뜻이 없다”고 전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405일 남은 대선…제3후보론 가능한가?

여권 내 ‘제3 후보론’의 한계는 시간의 문제다. 내년 3월 9일 열리는 대선까지 405일 밖에 남지 않았다. 민주당 당헌상 대선 후보 경선은 오는 9월 초에 열린다. 준비 기간은 앞으로 7개월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여당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제3 후보가 등장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선 캠프에 여러 차례 참여했던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양강 후보들에 대한 피로감이 분명히 있다”며 “설 이후 본격적으로 움직여도 전혀 늦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을 1년 앞둔 2001년 12월 출마를 선언해 당시 대세론을 펼치고 있던 이인제 전 의원을 꺾고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했다.

특히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해 ‘친문’ 지지층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이지 않는 점도 ‘제3 후보론’의 근거로 거론된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민주당의 주요 축이라 할 수 있는 586그룹과 친문 그룹의 후보가 없는 상태고, 여권 전체 입장에서도 이재명 지사의 독주 체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르지만 ‘제3 후보’는 반드시 등장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조만간 ‘586 텐트’가 구성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전대협 출신 586 후보들과 이광재 의원 등 80년대 학생운동 출신들이 뭉쳐 ‘제3 지대’를 형성하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친문 의원들이 주축이 돼 출범한 민주주의4.0연구원이 비슷한 역할을 할 거란 추측도 나온다.

한편 이낙연 대표가 다시 지지율을 회복할 경우 제3 후보의 공간이 생기지 않을 거란 관측도 있다. 광주 지역의 한 의원은 “사면론 이후 이 대표가 타격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호남에선 이 대표에 대한 지지세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당 전체 입장에서도 이 대표가 버티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 측 관계자 역시 “지금까진 이 대표가 당 대표의 업무에 충실했지만, 임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대선 행보를 벌일 것”이라며 “진짜 싸움은 그때부터”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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