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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 행위는 실패한 기습추행" 무죄 준 재판부의 판단

중앙일보

입력

정봉주 전 의원이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성추행 의혹 보도 반박' 무고 혐의 무죄를 선고받은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봉주 전 의원이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성추행 의혹 보도 반박' 무고 혐의 무죄를 선고받은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추행 의혹 보도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어 반박하고, 보도한 기자들을 형사 고소했다가 명예훼손 및 무고 등 혐의로 재판을 받은 정봉주 전 통합민주당 의원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받았다.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오석준, 이정환, 정수진 부장판사)는 27일 정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법정에서 “피해자의 진술에 따른다면 피고인의 당시 행위는 이른바 ‘실패한 기습 추행 행위’ 정도가 되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의 당시 객관적 행위를 법률적으로 평가하면서 성추행으로 딱히 명확하게 단정 지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라고 했다. 판결문에는 ‘실패한 기습추행 행위’라는 표현이 담기지는 않았다.

1ㆍ2심 “피해자 진술 일관성 전혀 없어”

1심과 2심은 판결에서 ‘성추행 사실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따졌다. 재판에서 문제가 된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공표, 무고의 주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검사는 “(정 전 의원은 A씨와 만났다) 헤어지는 과정에서 A씨 의사에 반해 얼굴을 피해자에게 들이밀며 키스를 시도하다가 입술이 스쳤고, 이에 놀란 A씨가 정 전 의원을 밀쳐내고 자리를 빠져나왔다”고 주장했다. A씨는 1심 법정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는데 정 전 의원이 다가와 강제로 세게 포옹을 하더니 얼굴을 들이밀며 키스를 하려 해서 밀치고 나왔고, 그 때 분명히 입술이 스쳤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에 1ㆍ2심 법원은 ▶강제 포옹이 있었는지 ▶입술이 스쳤는지 ▶얼굴을 들이밀었는지를 각각 판단했다. 1ㆍ2심은 강제포옹과 입술 스침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성이 전혀 없어 믿을 수 없고, 이를 달리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했다. 포옹과 입술 스침에 대한 A씨 주장은 1~7차 보도가 나오며 조금씩 바뀌었고, 수사기관 진술에서도 뒤집혔기 때문이다. 법원은 포옹은 상호 동의하에 한 것으로 봤고, 입술이 스쳤다는 주장은 아예 인정하지 않았다.

‘얼굴을 들이민 행위’에 대한 1ㆍ2심의 판단은 미묘하게 달랐다. 이 부분에 대한 피해자 진술은 비교적 일관됐다. 1심은 “진술의 일관성은 있지만, 일관성이 곧 신빙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다른 사정을 종합해볼 때 ‘얼굴을 들이민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그 이유로는 ▶A씨가 6년 넘게 한 번도 항의하지 않았고 ▶당일에도 정 전 의원은 서로 문제 될만한 행동이나 처신은 없었다고 보이게끔 행동했으며 ▶A씨는 평소 정 전 의원과 관계를 주변에 과시하기도 했고 ▶A씨의 다른 진술이 서슴없이 바뀌는 것으로 볼 때 이 진술도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꼽았다.

불쾌함 느꼈어도, 성추행 단정하긴 어렵다

2심 재판부는 “얼굴을 들이민 행위에 대한 진술이 대체로 일관성이 있지만, 그 행위가 키스하려는 등 성추행 의도나 목적이 있었는지 판별하기는 간단하지 않다”고 했다. A씨는 2심 법정에서 당시 정 전 의원의 행위로 불쾌한 감정의 기억이 남았다고 진술했다. ‘얼굴을 들이민 상황’ 자체는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은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 사건 발생 맥락을 이해하는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피해자가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고 해서 모든 행위가 성폭행이나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A씨와 정 전 의원이 포옹한 상태였다면 두 사람의 얼굴이 이미 매우 가까워진 상태였을 것이고, 이런 경우 서로 포옹을 풀거나 머리를 돌리기만 해도 특별한 의도 없이 얼굴이 가까워지는 상황은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다. 법원은 “합의하에 한 포옹이 풀리며 두 사람 얼굴이 잠시 가까이 있어 피해자는 불쾌감을 느꼈을 수 있지만 정 전 의원은 이를 추행으로 인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했다.

정 전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를 앞둔 지난 2018년 “2011년 기자지망생 A씨를 성추행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사실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기자회견을 해 취재진의 명예를 훼손하고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 이후 취재진을 무고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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