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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김종철 고발되자 장혜영 "유감"···친고죄 논란 번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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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의사를 무시한 채 가해자에 대한 형사고발을 진행한 것에 아주 큰 유감을 표한다. 매우 부당하다.”(장혜영 정의당 의원)
“정의당은 친고죄 폐지에 찬성해 놓고 자기 당 대표의 성추행 의혹은 형사 고발하지 말라고 한다.”(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친고죄 논란’으로 번졌다. 보수성향의 시민단체가 지난 26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성추행한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를 경찰에 고발하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뉴스1

장혜영 정의당 의원. 뉴스1

김종철 고발되자 장혜영 “내 의사 무시”

온라인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피해자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 법의 존엄함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거나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지않는 것도 2차 가해다”는 주장이 맞붙었다. 한 네티즌은 “당 대표가 왜 사퇴했는지 수사기관을 통해 정확한 사실을 알고자 하는 것도 당 지지자들의 권리다”는 주장도 했다.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를 서울영등포경찰서에 고발한 활빈단은 “사퇴와 직위해제로 끝날 일이 아닌 만큼 김 전 대표가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3년 6월 강제추행 혐의에 대한 친고죄 규정이 폐지됐기 때문에 행법상 활빈단의 성추행 고발 사건에 대한 수사는 가능하다.

이 상황을 두고 피해자인 장 의원은 즉각 반발했다. 같은 날 페이스북에 “저와 어떤 의사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제 의사를 무시한 채 가해자에 대한 형사고발을 진행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적었다. 이어 “일상으로 복귀를 방해하는 경솔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장 의원은 또 “사법체계를 통한 고소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가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며 “사법처리를 마치 피해자의 의무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또 다른 피해자다움의 강요일 뿐”이라고 적었다. 그는 친고죄에 대해서도 “성범죄가 친고죄에서 비친고죄로 개정된 취지는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권리를 확장하자는 것이지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나다. 형사고소는 피해자가 권리를 찾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종철 대표 성추행 사건으로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오른쪽은 심상정 의원. 오종택 기자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종철 대표 성추행 사건으로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오른쪽은 심상정 의원. 오종택 기자

“정의당, 친고죄 폐지 앞장섰는데…”

정의당과 장 의원의 입장에 대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의당은 성범죄를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당사자가 원치 않아도 제3자가 고발하면 처벌할 수 있게 하는 친고죄 폐지에 (정의당은)찬성해왔다. 그래놓고 자기 당 대표의 성추행 의혹은 형사 고발하지 말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친고죄 폐지는 지난 2012년 11월 심상정 당시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의 7대 여성 공약에 포함됐다. ‘성폭력·가정폭력 친고죄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4월에도 정의당은 가사노동자 성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을 두고 “성폭력 친고죄가 폐지되었음에도 아직까지도 피해자의 용서를 명분삼아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있는 재판부의 행태가 통탄스럽다”는 등 성추행 가해자에게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피해자 멱살 잡고 경찰서 가는 격”

전문가들은 성범죄 사건의 다양성이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사례가 천자만별이기 때문에 대응도 피해자의 의사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성폭력상담소의 한 관계자는 “성폭행 피해자들의 사례는 제각각이다. 피해를 밝히지만, 처벌은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피해자의 처벌 의사와 방법 등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사회에 던지고 있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자는 지난 26일 페이스북에 “피해자에게 고소하라고 그만하라”면서 “이건 친고죄 폐지 여부와 아무 관계가 없다. 사법절차가 아닌 공적 기구를 통해 해결하려는 피해자의 멱살을 잡고 경찰서로 가자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구제절차를 다변화해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가는 게 낫다. 그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승재현 연구위원은 “피해자가 일관되게 수사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는데 국가가 개입하는 건 2차 폭력”이라며 “이 사건에 대해 판단하고 추정하는 것 자체도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친고죄 폐지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며 피해를 왜곡하는 걸 막기 위해 생긴 것”이라며 “피해자가 싫다는데 억지로 수사하는 것이 과연 피해자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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