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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맞으면 악어 된다" 황당 주장 브라질 대통령 탄핵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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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종교 지도자들까지 나섰다.

'브라질 트럼프' 보우소나루 대통령 #가톨릭 지도자 등 380명 탄핵요구서 제출 #"코로나 대응 안일", 하루 사망 1000명

26일(현지시간)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가톨릭·개신교 지도자들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안일하게 대응하고 방역을 무시해 피해를 키우는 등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하원에 탄핵 요구서를 제출했다. 탄핵 요구서에는 가톨릭과 성공회·루터교·장로교·침례교·감리교 지도자 등 종교계 인사 380명이 서명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요구서를 브라질 가톨릭, 개신교 등 종교 지도자들이 제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요구서를 브라질 가톨릭, 개신교 등 종교 지도자들이 제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라질 기독교 교회협의회 대표인 호미 벤케 목사는 "코로나19 대응에서 정부는 총체적인 무능을 드러냈다"면서 "특히 북부 마나우스시에서 큰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생명을 부정하는 정부가 있기 때문"이라고 요구서 제출 배경을 밝혔다. 가톨릭과 개신교 등 종교 지도자들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 것은 브라질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현재 브라질 북부 마나우스시는 코로나 상황이 크게 악화하고 있다.

브라질의 한 담벼락에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코로나 바이러스를 합성한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다. [EPA=연합뉴스]

브라질의 한 담벼락에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코로나 바이러스를 합성한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다. [EPA=연합뉴스]

이날 에두아르두 파주엘루 브라질 보건부 장관은 마나우스에서는 병상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의료용 산소가 바닥나며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숨지는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변이 바이러스까지 퍼진 상태다.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보고서에 따르면 마나우스 주민의 76%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됐다.

브라질(인구 2억1000만명)에선 누적 확진자가 9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브라질 보건부에 따르면 26일 기준 누적 확진자는 약 893만명(세계 3위)으로 집계됐다. 누적 사망자는 약 21만명으로 세계 2위다. 최근 들어 브라질의 하루 사망자는 주말을 제외하면 매일 1000명 수준이다.

브라질 마나우스시의 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의 모습. [AFP=연합뉴스]

브라질 마나우스시의 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의 모습. [AFP=연합뉴스]

잇단 코로나 대응 실패로 파주엘루 보건부 장관에 대한 사퇴 압박도 커지고 있다. 브라질 하원에선 파주엘루 장관과 보건부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코로나 상황 악화로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대한 불만은 누적된 상태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처럼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저평가하면서 "감기의 한 종류"라고 치부했다. 올해 초에는 피서객들과 '노 마스크'로 물놀이를 즐기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한 채 뒤엉켜 비난을 자초했다.

그는 자신과 가족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가 회복했음에도 여전히 백신 사용에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악어로 변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쳐 국제 사회를 경악케 했다.

1월 22일 브라질 상파울루 거리를 지나고 있는 마스크 쓴 행인들 [신화=연합뉴스]

1월 22일 브라질 상파울루 거리를 지나고 있는 마스크 쓴 행인들 [신화=연합뉴스]

임기 3년차를 맞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대한 탄핵 요구서는 지금까지 62건에 달한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해 2월만 해도 7건이었으나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가 크게 늘며 탄핵 요구서도 빠르게 늘어났다.

지난 23일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보우소나루 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 40%로 '긍정적'(31%)을 앞섰다.

브라질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차량 시위가 지난 24일 벌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라질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차량 시위가 지난 24일 벌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4일에는 시민 수 천명이 브라질리아 시내로 나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차량 시위를 벌였다. AFP통신에 따르면 차량 시위는 상파울루 등 다른 도시 20여곳에서도 진행됐다.

브라질 대통령 탄핵 절차 개시 여부는 하원의장의 손에 달렸다. 대통령 탄핵이 이뤄지려면 하원에서 전체 의원 513명 가운데 3분의 2(342명) 이상, 상원에서 전체 의원 81명 가운데 3분의 2(54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앞서 현지 언론은 최근 하원의원 중 102명이 탄핵에 찬성하고 29명은 반대했으며, 382명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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