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100주에 100개 버킷리스트 끝내고 무인도 간 영국인

중앙일보

입력 2021.01.27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67)

직장 은퇴 후 인생환승역을 거쳐 인생 3막 1장이었던 여행업을 접고 제주로 이주해 인생 3막 2장을 펼쳐가고 있다. 제주 해녀가 살다가 세상을 뜬 후 16여년간 폐가로 남았던 집을 스스로 고치고 집 이름을 ‘가베’로 정했다.

가베란 원래 독일식 표현으로 점·선·면을 이용한 어린이 놀이를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나의 가베는 ‘GABE’로 쓰는데, 갤러리(G), 아트워크플레이스(A), 비치코밍스쿨(B), 환경보호 활동(E)을 아우르는 이름이다. 가베에서 나는 바닷가에서의 비치코밍을 통해 환경오염과 파괴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제주 어촌마을 주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바다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과 그를 통한 창작 활동, 미래세대에 대한 학습과 체험 활동도 펼친다.

제주해녀가 살던 폐가를 고쳐 환경보호, 봉사, 창작활동 지원을 아우르는 공간에 '가베'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진 한익종]

제주해녀가 살던 폐가를 고쳐 환경보호, 봉사, 창작활동 지원을 아우르는 공간에 '가베'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진 한익종]

학창시절 미술 시간에 배웠던, 점이 이어져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된다는 교육내용이 떠오른다. 점·선·면을 이용한 놀이인 가베를 하며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흔히 행·불행에 대해 논하며 어떤 삶이 행복한지 번뇌하고 그 방법을 모색하느라 부심한다. 엄밀히 말해 나는 행·불행에 대해 논하는 것이 별 의미 없다고 본다. 아니 이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행복하다, 불행하다 느끼는 순간은 시점에 불과하고 이를 느끼게 한 사건은 이미 과거시제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행·불행 걱정은 또 어떤가? 그 또한 발생하지 않은 점이며 예측불허인 현상이다. 그렇기에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현재 우리가 느끼고 있는 행·불행의 근거는 어디도 없다. 단지 시간·공간·환경에 따라 상대적인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행복한 삶을 점·선·면에 빗대어 하는 정의가 가능하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 행복한 삶이 구성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바로 순간 행복을 느끼는 점이 이어져 행복한 나날이라는 선으로 연결되고 그 선이 모여 그 사람의 행복을 규정지을 수 있는 면을 형성한다면 그것이 우리가 진정 바라는 행복한 삶이라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행·불행을 얘기할 때 ‘행복한 면이 있어’ 혹은 ‘불행한 면이 있어’라고 말하는 이유는 형성된 전체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를 두고 많은 사람이 행복해 보인다고 한다. 내 제주생활이 대단히 만족스러워 보인다고도 한다. 그건 아니라고 대답을 해 준다. 당신은 현재 내 면을 본 게 아니라 점을, 시점을 보고 하는 얘기라며. 더 두고 보라고.

인생 후반부는 인생 1막인 학창시절 동안의 한점, 한점 이벤트가 인생 2막인 직장생활을 통해 삶의 궤적이라는 선을 이어가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의 삶을 규명하는 면을 만드는 시기다. 인생 후반부는 삶의 전반부의 모든 행·불행을 망라해 자신만의 행·불행의 색을 흡수하는 ‘회색지대’다. 이 회색지대가 행복한 삶이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긍정적이고 밝은 회색인 실버세대가 되는 것이고, 불행한 면으로 마무리된다면 검정에 가까운 암울한 노년이 될 것이다.

삶의 라스트 스폿인 인생 후반부에 진정 행복한 삶의 주연이 되고 싶다면 한순간 한순간의 욕심을 내려놓고 함께 살아가는 자세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사진 pixabay]

삶의 라스트 스폿인 인생 후반부에 진정 행복한 삶의 주연이 되고 싶다면 한순간 한순간의 욕심을 내려놓고 함께 살아가는 자세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사진 pixabay]

행복한 삶의 면이 되려면 행복한 점을 이어가면 된다. 제임스 오펜하임은 ‘어리석은 자는 멀리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자는 자신의 발치에서 행복을 키워 간다’라고 했다. 발치에서 행복을 키워간다는 얘기는 순간순간의 행복한 점을 선으로 연결해 간다는 뜻이고, 그것이 면을 이룰 때 비로소 행복한 삶이 된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행복한 점을 모으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상대적인 욕심을 버리고 함께 산다는 삶의 자세를 갖는 것이다.

우연히 영국 BBC의 프로그램을 자주 보게 됐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나라 방송 프로그램으로 치면 ‘나는 자연인이다’ 정도 될 것 같다. 최근 본 프로그램은 한 영국 남성이 파나마의 작은 무인도를 싸게 사서 자신의 오두막을 짓고 영국에서 만난 여성을 초청해 동거하면서 살아가는 얘기를 담고 있었다. 그 남자는 제법 돈도 벌었고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전처와의 이혼과 함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100주 동안 100개의 버킷 리스트를 실현한 후 무인도에 정착한 것이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단연코 현재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을 했다. 그 이유는 욕심을 내려놓고 함께 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었다. 그는 바로 행복한 순간(점)을 ‘욕심 버리기’와 ‘함께’로 채우며 행복한 선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러한 삶이 계속된다면 행복한 삶이라는 면을 완성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1』이란 책에 ‘라스트 핏 이코노미(Last Fit Economy)’라는 용어가 나온다. ‘라스트 핏‘이란 용어는 사형수가 사형 집행장까지 가는 거리인 ‘라스트 마일(Last Mile)에서 유래한 용어란다. ‘진리의 순간(MOT, 투우사를 향해 달려오는 소를 창으로 찌르는 찰라의 순간)’과 유사한 용어로 고객이 갖는 마지막 순간 경험의 소중함을 일컫는다. 이는 삶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인생 3막의 주연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삶의 라스트 스폿인 인생 후반부에 진정 행복한 삶의 주연이 되고 싶다면 한순간 한순간의 욕심을 내려놓고 함께 살아가는 자세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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