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진중권 "김어준 왜 사과를 모를까, 유시민과는 다른 게임 중"

중앙일보

입력 2021.01.27 01:04

업데이트 2021.01.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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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요즘 나는 눈이 나빠서 책을 못 봐. 대신 유튜브를 봐. 김어준(방송진행자)이 하는 유튜브는 다 봤어. 김어준이 민주당을 위해서 큰일을 하는 거야.”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유시민 “공직자인 검사들 말을 불신했다”며 사과문
공작 아닌 실수…위법성 조각 사유 마련에 초점 둬
존재론적 진리게임 벌이는 김어준의 ‘세월호 음모론’
검찰의 ‘무혐의’ 결정에 사과 않는건 자신을 세뇌하기 때문

이해찬씨가 민주당 대표 시절 금태섭 전 의원에게 했다는 말이다. 이 말 속에 지금 민주당의 모든 문제가 압축되어 있다. 즉 공당에서 매번 음모론을 근거로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는 것.

정신적 대통령 노릇

당 대표부터 이러니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중요한 일이 생기면 김어준부터 찾아가 상의를 한다. 다들 김어준의 방송에 못 나가서 안달이 났다. 그의 성은(?)을 입어야 지지자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제 구실 못하는 사이에 사실상 김어준과 유시민(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정신적 대통령 노릇을 해왔다.

이들이 퍼뜨린 각종 음모론은 속속 무너져 내리고 있다. 정경심 교수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채널A 수사팀은 한동훈 검사장을 무혐의 처분한단다.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징계는 효력이 정지됐다. 법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금융기관으로부터 계좌추적의 통보를 받지 못했다.

결국 유시민씨는 사과를 했다.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고 공직자인 검사들의 말을 전적으로 불신했습니다.” 항소이유서로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리던 그 솜씨 그대로다. 나도 그를 거의 용서할 뻔했다. 그는 “어떤 형태의 책임 추궁도 받아들이겠다”고 하나, 그 ‘형태’안에 형사처벌은 포함되지 않은 듯하다.

그는 제 거짓말을 정서적 적대감과 논리적 확증편향의 소치로 돌린다. 공작이 아닌 실수라는 얘기다. 사과의 수취인도 ‘검찰의 모든 관계자’, 결국 한동훈이라는 특정인을 겨냥한 게 아니었다는 뜻이리라. 그의 사과문은 이렇게 위법성 조각 사유를 마련해 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치신학, 선포의 진리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김어준 그래픽=신용호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김어준 그래픽=신용호

유시민은 사과라도 하나 김어준은 절대 사과를 하지 않는다. 왜? 애초에 하는 게임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시민이 하는 것은 ‘인식론적’ 진리 게임. 가령 ‘x는 세월호다’라는 명제가 있다고 하자. 이 명제는 x가 세월호면 참, 아니면 거짓이 된다. 이 게임에는 검증이 따르기에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형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반면 김어준이 하는 것은 ‘존재론적’ 진리 게임이다. 그의 진리는 선포(kerygma)의 진리, 뭔가를 비로소 존재하게 하는 그런 진리다. 가령 진수식에서 "이 배를 ‘세월호’라 명명한다”고 하자. 이 말과 함께 그 배는 그냥 ‘세월호’가 된다. 이런 유형의 게임에는 거짓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세우다 실패한 진리가 있을 뿐이다.

신부님이 빵 한 조각을 들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면 빵이 정말 성체가 된다. 마찬가지로 김어준이 ‘냄새가 난다’고 하면 허구는 사실이 되고, 음모는 현실이 된다. 그렇게 표창장은 진짜가 되고, 검언 유착과 검찰 쿠데타는 현실이 되었다. 이 마술이 얼마나 신통한지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그 주문을 따라 외고 다닌다.

김어준은 토론이나 논쟁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가 하는 것은 진위를 가리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역할은 교주의 그것과 비슷하다. 사이비 교단 안에서 교주는 신의 노릇을 한다. 신이 어디 인간과 논쟁하던가. 신이 ‘빛이 있으라’고 하면 빛이 생기듯이 김어준이 ‘냄새가 난다’고 하면 정말 음모가 존재하게 된다.

한국의 라스푸틴

당 대표가 책 대신에 그의 유튜브를 보고, 의원들이 중요한 일을 그와 상의한다. 마치 제정 러시아 말기 황제 부처가 괴승 라스푸틴에게 국정의 자문을 받는 장면을 보는 듯하다. 김어준이 ‘무학의 통찰’로 민주당을 위해 큰 일을 한것처럼, 무학의 승려도 혈우병 황태자의 피를 멈추는 ‘영빨’로 궁정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교주의 영향력은 교단 내로 한정된다. 김어준도 신도 집단의 밖에서는 그저 흔한 음모론자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의 황당한 상상력에 ‘개연성’과 ‘진지함’을 보태주는 것이 바로 그동안 유시민이 해온 역할이다. 음모론자의 입에서 나온 괴담도 (설사 ‘어용’이라도) 지식인의 입을 거치면 신뢰도가 달라진다.

유시민은 맹신적 지지자들에 한정된 김어준의 영향력을 나름 합리적이라 자부하는 층에까지 확대하는 노릇을 해 왔다. 김어준이 음모론으로 하나의 세계를 지으면, 유시민은 지식인으로서 그 허구에 논리적 정합성의 외관을 덧씌운다. 합리화할 수 없는 것을 합리화하려다 보니 당연히 억지와 궤변이 동원될 수밖에.

두 사람의 콜라보는 민주당 지지층의 지적·도덕적 수준을 급격히 끌어내렸다. ‘대깨문’은 이미 이성적 소통의 능력을 잃었다. 윤리의식도 망가졌다. 박원순 성추행 사건 때 2차 가해를 가한 것이 바로 그들. 김민웅 교수는 피해자의 편지를 공개해 그를 모욕했고, 한 친문단체는 아예 피해자를 ‘박원순 살인죄’로 고발하고 나섰다.

법리와 유가족의 심정 사이의 괴리

김어준의 거짓말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세월호 음모론이다. 그 폐해가 아직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최근 검찰 특별수사단에서 AIS 항적 조작, 기무사 및 국정원 사찰 등 의혹들 대부분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좌절한 유가족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세월호 진상규명에 무능하고 무책임한 문재인 정부 규탄한다.”

무슨 진상을 더 규명해야 할까? 배를 인양해 샅샅이 뒤졌다. 아이들의 혼을 촛불 삼은 정권이 들어섰다. 이제까지 8차례 수사가 이루어졌다.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선장은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청와대 인사 9명과 해경지휘부 11명이 기소됐다.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조사받던 기무사령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다.

특수단장은 어떤 ‘괴리’를 언급한다. "유가족이 기대하는 결과에 미치지 못해 실망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법률가로서 되지 않는 사건을 억지로 만들 수는 없고 법과 원칙에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유가족의 기대와 법률가의 원칙. 그 어떤 수사로도 둘의 괴리를 메울 수 없을 것이다. 예정된 특검도 다르지 않다.

유가족은 그냥 상황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느 해명이 부모에게 자식이 희생된 상황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겠는가. 이 사회는 유가족의 영혼을 살피는 데에 실패했다. 한쪽은 이 사건을 ‘악재’로 관리하고, 다른 쪽은 ‘호재’로 이용하는 가운데 정작 유가족의 끔찍한 트라우마를 그대로 방치된 것이다.

세월호 고의 침몰설

그 외상을 더 깊게 만든 것이 바로 김어준이 유포한 세월호 음모론이다. 그는 제 개인방송을 통해 줄기차게 세월호 고의 침몰설을 주장해 왔다. 그가 제작한 영화 ‘그날, 바다’는 50만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 결과 고의 침몰설이 적어도 특정 집단 안에서는 공인된 사실로, 하나의 대안적 현실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버렸다.

고의 침몰설이 의심을 넘어 확신에 근접하면 당연히 거기에 어긋나는 결론은 심리적으로 수용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확신을 입증해주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사는 종결될 수가 없다. 문제는 이것이 외려 유가족의 외상을 덧나게 하고 그들의 고통을 무한히 연장시킨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어디 음모론으로 장난칠 대상이던가?

김어준은 세월호를 음모론적 상상력의 소재로 삼았고 그것을 사업 아이템으로 바꾸어 놓았다. 유가족의 절박한 심정과 대중의 집단적 외상을 돈을 버는 데 이용한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할 사회적 비용보다 더 큰 문제는 수사가 성과 없이 끝날 때마다 유가족이 새로 끌어안게 될 좌절감과 분노감, 이는 또 어쩔 것인가.

음모론은 ‘원인’을 ‘범인’으로 의인화함으로써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가로막는다. 그들은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킨 ‘범인’을 색출하려 한다. 그러는 사이에 침몰의 ‘원인’은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다. 생명을 이윤으로 바꾸는 관행.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일터에서 죽어간다. 육지의 세월호를 막아줄 중대재해처벌법은 누더기가 되었다.

세월호로 그는 돈을 벌었다. 누구는 배지를 달았고, 누구는 아이들 영혼을 천만 촛불로 바꿔 권좌에 올랐다. 그들은 뜻을 이루었고, 그 대가로 유가족들은 고통을 연장받았다.

그래도 김어준은 사과하지 않는다. 음모론자들은 남을 속이기 전에 그 거짓말이 확인되는 사실보다 더 깊고 더 참된 진실이라고 자기 세뇌부터 하기 때문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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