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퐁당당’이 최선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1.01.27 00:54

업데이트 2021.01.2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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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이지영 문화팀장

이지영 문화팀장

8%. 이달 우리나라 공연계의 전년 대비 매출액 규모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의 통계에 따르면, 올들어 25일까지 클래식·뮤지컬·연극·무용·국악 등 공연계 전체 매출은 26억9000만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334억5800만원)에 비해 92%가 줄어들었다.

1월 공연계 매출 지난해 대비 8%
전파 0건인데도 완화 조치서 제외
문화의 미래 공연장 지침,신중해야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방역 지침이 적용되는 서울·수도권 등의 공연장은 현재 객석 두 칸 띄어앉기를 지키고 있다. 이른바 ‘퐁당당’ 방식이다. 코로나19 3차 확산 이후 지난달 5일 서울을 시작으로 시행됐다. 한 칸 띄어앉기 시스템에서 어찌어찌 버텨왔던 공연 산업은 이때부터 무너졌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고스트’ ‘맨 오브 라만차’ ‘명성황후’ 등의 공연 중단과 연기 결정이 이어졌고, 국립발레단·유니버설발레단 모두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포기했다. 공연 시장의 최대 대목으로 꼽히는 연말연시가 완전히 망가진 것이다.

생업을 잃은 배우·스태프들은 대리 운전, 배달업체·김치공장 아르바이트 등 일거리를 찾아나섰다.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 더엠씨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김문정 음악감독은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수입이 0원”이라고 했다. 명실상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음악감독인 그가 “손가락 빨고 있다”는 표현까지 썼다. 김 감독은 “원래 연습 수당이 나오는데 공연을 못 올리는 제작사에 수당 지급을 요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며 “공연인들은 소상공인도, 자영업자도 아니어서 어떤 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보호를 못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공연계 매출액

공연계 매출액

공연을 강행하는 곳도 수익은 꿈도 못꾼다. 현재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를 공연 중인 서울 정동극장의 김희철 대표는 “총 객석 330석 중에 110석밖에 오픈을 못한다. 객석 점유율이 60∼70%은 돼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공연을 할수록 손해가 커지지만, 공공성 차원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동극장이 문체부 산하 공공극장이어서 가능한 얘기다.

전염병 예방이란 절대가치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던 공연계에서 불만이 터져나온 건 지난 16일 정부가 방역 조치를 완화하면서다. 헬스장과 노래방이 다시 문을 열었고, 카페에서 취식도 가능해졌다. 종교시설의 대면 예배도 허용됐다. 하지만 극장 객석의 ‘퐁당당’ 원칙은 그대로였다. 완화 조치에 앞서 헬스장 업주들이 시위를 벌인 것을 두고 공연계에선 “우리가 울고 떼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 민간극장 대표는 “2.5단계 이후 제작사 사람들을 만나 집단 목소리를 내자고 귀띔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라 순수해서인지 별 움직임이 없더라”고 전했다.

최근 ‘학교내 감염이 2.4% 뿐’이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논문이 알려진 뒤 등교 확대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공연계에선 “우린 0%인데 왜?”란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지난 1년 동안 공연장 내의 코로나19 전파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공연장은 관객이 말하는 곳이 아닌데다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비말감염 위험은 없다고 볼 수 있고, 한 자리씩 띄어앉으면 접촉 문제도 해결된다”고 말했다. 또 “공연장에 올 때까지 밀접 접촉 상태였던 동반자들이 객석에서 띄어앉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현재 거리두기 1.5단계 지침인 ‘동반자 외 거리두기’면 충분하리란 의견이다.

그러고 보면 왜 ‘퐁당당’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 방역당국이 내놓은 “공연은 무대에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위험도가 다르다” “밀집도를 완화하는 차원” 등의 주장도 두루뭉수리하기 짝이 없다. 이런 막연한 지침에 따르다 공연 시장은 고사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로 71주년을 맞은 국립극장의 설립일은 1950년 4월 29일이다. 개관하고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했다. 여전히 전쟁 중이었던 1952년 2월 피난지 대구에서 국립극장은 다시 문을 열었다. 그 사이 유치진 초대 극장장이 국립극장 재개관을 정부에 건의했다 묵살당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재개관 공연 팸플릿에 서항석 제2대 극장장이 남긴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전란과 피난의 창황(蒼黃) 중에서도 국립극장이 재개된다는 것은 이 나라 문운(文運)의 명일(明日)을 위하여 경하할 일이다.”

공연장은 우리 문화의 미래가 달린 곳이기도 하다. 예술과 관객이 만나는 극장이 문을 닫으면 공연 생태계는 무너진다. 공연장을 열 수 없게 만드는 지침은 그만큼 신중하게 시행돼야 한다. ‘퐁당당’이 과연 최선일까.

이지영 문화팀장

모비온

Innovatio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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