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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 읽기

수선화와 매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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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제주도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금방 푸른 바다에 이를 수 있고, 또 어느 곳에서나 한라산을 우러를 수 있는데, 요즘 한라산 고봉에는 흰 눈이 덮여 설산이 빛난다. 그 초연한 듯한, 고상한 듯한 설산을 매일 바라볼 적에는 신령한 기운을 조금은 느끼게도 된다. 김종길 시인이 북한산을 바라보면서 “고고(孤高)한 높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어제오늘 한라산의 설산을 바라보면서 시인의 그 표현이 매우 적절하다고 느끼게 된다.

한파에도 영롱한 수선화는 피어 #생명의 불꽃은 사그라지지 않아 #위축된 마음도 유연하게 풀리길

그러나 한라산이 거느리고 있는 협곡과 오름과 평원에는 매일 오가는 한파에도 불구하고 수선화가 꽃봉오리를 맺고 또 터뜨리기 시작했다. 집집의 돌담 아래에는 이 수선화를 심어놓고 수선화의 개화를 완상(玩賞)함으로써 오싹한 한파의 한기를 몰아내기도 한다.

한 편의 시로써 수선화의 개화를 표현한 이들 가운데에는 추사(秋史) 김정희도 있다. “술은 푸르고 등불은 파랗다 낡고 허름한 띠집 속에/ 수선화 중얼중얼 영롱한 옥(玉)이로세” 이 시는 추사의 시 ‘설야우음(雪夜偶吟)’의 일부다. 눈 내리는 밤에 홀로 앉아 피어난 수선화를 가만히 바라보며 우연히 생겨난 여러 겹의 심사를 읊은 시라고 하겠다. 거처하는 처소의 적적함과 함께 풀로 지붕을 얹은 집의 바깥에 몰아치는 한기, 그리고 흰 눈의 쌓임에 대비되는 수선화의 곱고 순수한 그 꽃의 청아한 빛깔이 대비적으로 읽히는 시이기도 하다. 동시에 맑은 마음의 광채를 지니려는 추사의 의지도 함께 읽힌다.

수선화의 개화도 개화이지만 어느새 남부 지방에서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매화꽃 소식을 들을라치면 다산(茶山) 정약용의 시 또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펄펄 나는 새야, 내 뜰의 매화나무에서 쉬어라/ 향기도 진하니 은혜로워라, 어서 오너라/ 여기에 올라 여기에 깃드니, 네 집이 즐거우리라/ 꽃이 아름다우니, 열매도 많으리라” 물론 이 시는 자녀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지만, 계절 감각 또한 돋보이는 시라고 하겠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봄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좀 이른 듯도 하지만, 나도 그 어느 해 겨울의 꽝꽝 언 날에 꺼지지 않는 생명의 빛에 대해 시를 적은 적이 있다. 졸시 ‘겨울 엽서’를 통해서였다. “오늘은 자작나무 흰 껍질에 내리는 은빛 달빛/ 오늘은 물고기의 눈 같고 차가운 별/ 오늘은 산등성이를 덮은 하얀 적설(積雪)/ 그러나 눈빛은 사라지지 않아/ 너의 언덕에는 풀씨 같은 눈을 살며시 뜨는 나” 자작나무 숲에 달빛이 내리고, 동천(冬天)을 머리에 이고서 살고, 또 눈이 내려 땅을 하얗게 덮었지만 풀씨와도 같은 생명의 운동과 에너지는 사라지거나, 그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아 얼어붙은 땅에서도 살며시 눈을 뜨려고 한다고 썼다.

우리가 불과 얼마 전에 눈이 소복하게 내린 아침을 맞았고, 눈보라가 요란하게 치는 시간을 살았고, 추위에 몸을 오들오들 떨었지만 그러는 가운데서도 수선화가 피어나고 매화가 화사하게 피어나듯이 말이다. 잔설이 녹지 않고 한쪽에 남아 있지만, 추위는 기세가 한풀 꺾이고 얼음도 그 두께가 얇아지고 있는 것이다.

“겨울 풍경은 이제 균형을 잡고 걸려 있다./ 고르곤의 눈에서 나온 파랗게 번쩍이는 빛에 얼어붙어./ 스케이트 타는 이들은 인상적인 돌 그림 안에서 갑자기 멈췄다.// 공기는 유리로 변하고 하늘 전체는/ 기울어진 도자기 그릇처럼 부서지기 쉽게 되었다./ 언덕과 계곡은 줄을 맞추어 경직되어 있다.// (……) // 호수는 크리스털 유리 상자에 갇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얼음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할 때/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새들이 모든 바위에서 솟아오른다.” 이 멋진 문장들은 실비라 플라스의 시 ‘봄의 서막’의 시구들이다. 시인은 겨울이 봄으로 옮겨가는 것을 경직된 것이 풀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리하여 봄의 때에는 생명의 새들이 뻣뻣해진, 견고한 바위에서 솟아오른다고, 날아오른다고 썼다. 이때의 바위는 경직된 겨울의 시간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어쨌든 움츠려서 위축되고 굳어진 어떤 것이 점차 펴지고 유연해지는 것, 그것이 봄의 시작이라는 뜻일 테다.

우리는 머잖아 겨울 공터에 홀로 서 있던 눈사람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융통성이 없는 겨울날의 일들도 회상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수선화와 매화는 지난 겨울로부터 온 서신(書信)을 우리에게 전해주면서 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대한(大寒)의 큰 추위로부터 입춘(立春)의 고운 햇살 속으로 옮겨가는 요즘이다. 우리의 마음도 생활도 봄이 서는 곳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동해 갔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