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야·생·화] '인천 SK'의 화려했던 21년이 저문다

중앙일보

입력 2021.01.26 19:09

2007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SK 선수단이 팬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중앙 포토

2007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SK 선수단이 팬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중앙 포토

[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프로야구 SK 와이번스는 21세기 KBO리그 최강팀 중 하나다. 한국시리즈(KS) 우승 횟수 톱3 안에 든다. 두산 베어스와 함께 네 차례 KS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00년 이후 SK보다 더 많이 우승한 팀은 삼성 라이온즈(7회)밖에 없다.

우승하지 못한 시즌에도 강했다. 준우승만 4회다. 어떤 팀은 20년간 한 번도 오르지 못한 KS에 여덟 번 진출했다는 의미다. 2000년대 후반에는 두산과 신흥 라이벌을 형성했다. 물샐 틈 없는 수비와 과감한 베이스러닝으로 명승부와 명장면을 연출했다. 2010년대 후반에는 장타 쇼로 팬들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2017년 역대 한 시즌 팀 최다 홈런(234개) 신기록을 세웠다. 18년에도 이 기록에서 하나 모자란 홈런(233개)을 쳤다. '홈런 군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가대표 에이스도 배출했다. 2007년 프로에 데뷔한 에이스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은 13년간 SK의 자랑거리였다. 메이저리그(MLB)로 떠나서도 좋은 활약으로 SK의 자존심을 세웠다. '소년 장사'로 불린 간판타자 최정은 어느덧 선수단의 리더로 성장했다. 2년 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뒤 6년 총액 106억원에 사인하고 SK에 남았다. 사실상 "SK에서 선수생활을 끝내겠다"는 약속인 셈이다.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하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 기뻐하던 에이스 김광현(오른쪽에서 두 번째). 중앙 포토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하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 기뻐하던 에이스 김광현(오른쪽에서 두 번째). 중앙 포토

그라운드 안에서만 강팀이었던 게 아니다. SK는 KBO리그에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를 도입한 구단이다. 일찌감치 "야구장에 온 가족이 '놀러' 오는 문화를 만들자"는 포부를 품었다. SK가 홈구장으로 쓰는 인천 문학경기장 야구장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선진화됐다. 매년 획기적인 리모델링을 진행해 점점 더 많은 팬을 끌어들였다. 2016년에는 MLB 구장들보다 더 큰 초대형 전광판을 설치했다. 4D 화면으로 리플레이를 볼 수 있는 '빅 보드'는 SK 홈구장의 명물이 됐다.

야구장 밖에서도 활발했다. 주변 지역과 상생하기 위한 사회 공헌 활동에 공을 들였다. 다양한 지역 밀착 이벤트와 자선 활동으로 '나눔'에 앞장섰다. SK 선수들은 기부와 봉사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전파했다. 투수 박종훈은 2년간 남몰래 4000만원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져 박수를 받기도 했다. SK는 어느덧 '인천 야구'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SK가 이제 프로야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과거 인천에 터를 잡았던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등처럼 말이다. SK는 이전 팀들보다 훨씬 오래 인천을 지키고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이제 신세계 이마트에 인수돼 새 간판을 달고 새 출발 한다. SK가 '와이번스'라는 이름으로 쌓아 올린 숫자와 시간은 이제 모두 '과거'로 남는다.

25일 처음 전해진 SK텔레콤의 구단 매각 소식은 야구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관련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SK 구단 관계자들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동시에 프로야구 위기론도 고개를 들었다. 과거 사라진 야구단들은 모두 모기업 재정이 어려워져 매각되거나 해체됐다. SK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다. 그런데도 야구단 운영에서 손을 뗐다. 수도권 한 구단 고위 관계자는 "야구단이 산업으로서는 물론이고, 마케팅 수단으로서도 점점 가치를 잃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라고 걱정했다.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한데 모여 기뻐하는 SK 선수들 [연합뉴스]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한데 모여 기뻐하는 SK 선수들 [연합뉴스]

물론 거대 유통 기업 신세계의 KBO리그 입성을 반기는 목소리도 있다. 주로 대중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브랜드를 운영해서 더욱 그렇다. 새 구단은 3월 중 네이밍과 엠블럼, 캐릭터를 확정해 정식 출범한다. 많은 야구팬은 벌써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소셜미디어로 몰려들어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이마트 레이더스', '이마트 피콕스', '이마트 일렉트로닉스', '이마트 노브랜즈' 등 유머러스한 이름이 대부분이다.

끝이 아니다. "SK 홈구장에 스타벅스를 열어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신세계가 운영하는) 스타필드처럼 맛집을 대거 입점시켜달라"는 기대도 나왔다. "유니폼은 이마트를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제작되나"와 같은 질문도 쏟아졌다. 올해 말 FA 시장에서 '새로운 투자자'가 어떤 선수에게 얼마나 돈을 쓸지도 벌써 관심거리다. 잠잠했던 스토브리그에 재미난 화젯거리가 생겨난 모양새다.

이렇게 한 구단의 화려한 시절이 저물어 간다. SK 와이번스의 문이 닫히고, 머지않아 새로운 팀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린다. 이마트 야구단은 SK 선수단과 프런트 전원의 계약을 승계계한다. 그리고 연고지 인천에 계속 머문다. 인천 야구의 이야기는 이어질 수 있다. 다행이다.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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