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계류 중인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안'이 사업 추진에 유리한 조항만 끌어모은 '특별법의 종합판'이란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발의한 여당 "2월 통과" #31개 의제 처리에 부담금도 면제 #민간업체에 토지 개발 사업권 부여 #국공유 재산 사용·매각도 수의계약
특히 사업시행자에게는 과도한 권한을, 민간 사업자에게 지나친 혜택을 부여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26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등 138명의 발의로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 중인 이 법안은 동남권 항공 물류의 처리, 24시간 운영 가능한 공항, 2030년 부산 세계박람회 개최 등을 위해 가덕도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는 4월 부산시장 보궐 선거용이라는 지적 속에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지난 22일 2월 임시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공언한 상태다.
지역 기업 우대는 평등권 침해 가능성
여야 정치권에서는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등을 둘러싸고 일부 공방을 벌였지만, 본격적인 검토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법안 곳곳에서 검토가 필요한 내용이 눈에 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법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을 지낸 전재경 박사는 2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먼저 법안 제24조의 '지역기업의 우대' 조항을 지적했다.
법안 24조에는 "사업시행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사·물품·용역 등의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신공항 건설 지역에 주된 영업소를 두고 있는 자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우대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전 박사는 "이 조항은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며 "다른 지역 기업이 위헌 법률 심사를 청구할 경우 평등권 침해라는 결론이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별법에서는 또 민간자본 유치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 개발사업자의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해 주변 토지 개발 사업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해서는 국가와 지자체가 소유하는 국공유 재산을 수의계약으로 사용 허가를 내줄 수 있고, 빌려주거나 매각할 수도 있게 했다.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박태현 교수는 "민간 사업자에게 개발 사업권을 줄 경우 친수구역 개발을 허용한 4대강 사업처럼 (환경을 훼손하는)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 사업자에게 혜택을 부여하려면 법에서 한계를 명확히 정해야 하는데 대통령령에 넘기는 바람에 백지위임이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가덕도 특별법안은 다른 특별법에 나오는 유리한 조항들을 끌어모은 '종합판' 같은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사업 진행 견제·감시할 위원회도 없어
전 박사는 "사업시행자인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업과 관련해 일부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했지만, 위임 사항을 법에서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에 넘겨 백지위임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가덕도 특별법안에서는 31개 의제 처리 조항이 포함돼 관련 법률에 의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사업 승인을 받으면 골재채취법·산지관리법·공유수면매립법·농지법·산림보호법 등 30여 개 법의 관련 조항에 대해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일괄 처리한다는 내용이다.
또, 각종 개발 부담금이나 점용료, 사용료도 면제할 수 있게 했다.
전 박사는 "의제 처리 조항이나 부담금 면제는 다른 개발사업 특별법에도 들어있는 내용이지만, 가능하면 범위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가덕도 특별법에는 '위원회'가 전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신 신속한 사업 추진을 위해 국토부 장관이 전담기구를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특별법에는 관계 부처에서 참가해 지원도 하면서 감시·견제 역할도 하는 '심의 위원회'가 있다.
30년 전인 1991년 제정된 '수도권신공항건설 촉진법'에도 '신공항 건설에 관한 심의위원회'를 뒀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에도 대회와 관련된 주요 정책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대회 지원위원회'를 두기도 했다.
'새만금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경우에는 총리가 위원장인 새만금 위원회와 함께 새만금 개발 통합 심의위원회도 두고 있다.
대표 발의자가 환경부 장관 취임
특별법안 제7조 '사전 절차 단축 이행' 조항에는 "국가는 신속한 신공항 건설을 위하여 신공항 건설사업에 필요한 사전절차를 단축하여 이행할 수 있다"고 했지만, 환경영향평가는 받아야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는 법안에 구체적으로 언급했지만, 환경영향평가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상 국토부 장관이 실시계획을 승인하기 전에 환경영향평가가 협의가 이뤄지는데, 국토부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환경부가 검토하고 국토부와 협의하게 된다.
문제는 법안 대표 발의자인 한정애 의원이 최근 환경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신분의 혼동'이 생기게 된 것이다.
전 박사는 "개발사업을 지원하는 특별법안의 대표 발의자는 사업자와 유사한 지위를 갖는데, 사업자와 감시자가 같아지면 하나는 없어져야 한다"며 "영국 법에서는 이를 엄격히 따지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고 말했다.
법안을 재발의하든지, 아니면 대표 발의자 명의를 한 장관에서 다른 의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대표 발의자 변경은 국회 입법 절차에 따라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환경영향평가의 원칙과 절차에 따라 환경성을 면밀히 검토한다는 게 환경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편, 법안에는 '신공항 건설을 신속하게 추진'처럼 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신속·조기·원활·효율 등의 표현이 10차례나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강찬수 기자 kang.chan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