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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이미 ‘IMF급’ 줄폐업…손실보상제로 ‘좀비’가 사라질까

중앙일보

입력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유명 대형 중식당 ‘하림각’이 지난 1일 문을 닫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적자를 감당 못해서다. 1987년 개업 이후 첫 영업 중단 선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 위기는 34년 역사의 고급 식당도 넘지 못할 만큼 심각했다.

2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영업자 수(관련 종사자 포함)는 657만3000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11만명 감소했다. 2015년(-16만3000명) 이후 5년 만에 가장 많이 줄었다. ‘월급쟁이’로 대변되는 임금근로자 감소 폭(-10만8000명)을 뛰어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거리두기 지침 완화 첫 주말인 지난 24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임대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거리두기 지침 완화 첫 주말인 지난 24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임대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전체 자영업 취업자 수는 임금근로자(2033만2000명)와 비교해 3분의 1 남짓으로 적은데, 실직 인원은 더 많았다. 자영업계에 닥친 실업 한파가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전체 자영업자 가운데 ‘나 홀로 사장님(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보수 없이 일하는 가족(무급 가족 종사자)을 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고용원을 두고 있는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137만2000명으로 1년 사이 16만5000명 줄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8년(-16만9000명) 이후 최대 감소다.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는 ‘종업원 두고 있다가→종업원 내보내고 가족과 또는 나홀로 꾸려가다가→폐업’하는 수순을 밟는 게 보통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된다면 IMF 때를 뛰어넘는 자영업계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코로나로 자영자 폐업 속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코로나로 자영자 폐업 속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여당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자영업 손실 보상제는 지난해 3차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한 현금 지원에 치중돼 있다. 제도 내용과 재원을 둘러싼 당ㆍ정 간 줄다리기만 이어지는 중이다.

이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손실 보상제를 두고 “2월 임시국회 통과, 늦어도 4월 초 지급”을 공식화(홍익표 정책위의장)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당ㆍ정ㆍ청 회의에 몸살 감기를 이유로 불참하며 반대 의사를 우회적으로 드러냈지만 ‘브레이크’는 걸리지 않았다. 여당은 오는 4월 7일 재ㆍ보궐 선거 전 지급을 위한 속도전을 펼치는 중이다. “매표 행위”라는 야당의 공세도 소용이 없다.

민주당은 손실 보상 근거는 법으로 규정하고, 세부 보상 범위와 기준은 시행령을 통해 기재부가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한 번 법으로 못을 박아버리면 1회성이었던 재난지원금과 달리 되돌리기가 어렵다. 이 법을 근거로 실제 지급이 이뤄진 후 차등 보상, 법령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4월 선거를 목표로 한 ‘졸속 입법’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배경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같은 집합 금지, 영업 제한 업종이라 하더라도 헬스장ㆍ노래방은 아예 영업을 못했고 음식점ㆍ카페는 배달이 가능하지 않았냐”며 “1~3차 재난지원금은 빨리 주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세분화가 제대로 안됐는데, 이번에 법제화를 추진하는 만큼 세분화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자영업자 분류와 피해 정도에 따른 차등 지원은 사실 어렵지 않다. 사업자번호 등 기존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가려낼 수 있다”며 “그동안 공무원들이 안한 거지 못한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자영업 위기가 손실 보상제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점도 문제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자영업자 수는 39만9000명 줄었다. 같은 기간 임금근로자 수는 322만3000명 늘어난 것과는 정반대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산업 구조가 발달하면서 자영업 비중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이미 진행되고 있던 자영업 구조조정의 속도를 더 빠르게 했을 뿐이다.

자영업 구조조정.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자영업 구조조정.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비대면 업무ㆍ회식 등 일하는 문화와 삶의 방식이 크게 바뀌는 ‘강제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데, 감염병 상황이 해소된다 하더라도 이런 변화가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며 “자영업 비중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좀비화돼 있는 자영업에 현금을 몇 번 지원한다고 해서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짚었다.

이어 권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생존을 위해 정책적 지원금을 주되, 중장기적으로는 자영업 종사자가 임금근로시장에 다시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시급히 준비해야할 때”라며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시장 진입 교육ㆍ훈련, 다양한 일자리 알선 등 행정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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