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2019년 그날 파견 검사는 헌법 12조를 훼손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1.26 00:31

업데이트 2021.01.2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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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공익 신고로 불거진 김학의 불법 출금의 진상

김학의 전 차관이 2019년 3월 23일 오전 비행기가 떠나고 난 뒤 111번 탑승구를 배경으로 서 있다. 동행자가 찍어 당일 김 전 차관이 휴대폰으로 본지에 보낸 것이다. 당사자 요청에 따라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으나 사태가 확산됨에 따라 21개월만에 공개한다. [사진 김학의]

김학의 전 차관이 2019년 3월 23일 오전 비행기가 떠나고 난 뒤 111번 탑승구를 배경으로 서 있다. 동행자가 찍어 당일 김 전 차관이 휴대폰으로 본지에 보낸 것이다. 당사자 요청에 따라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으나 사태가 확산됨에 따라 21개월만에 공개한다. [사진 김학의]

그땐 정말 긴가민가, 알쏭달쏭했었다. 어느 쪽이 맞는지 궁금 답답했었다. 2019년 3월 23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이 저지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규정에 없는 부당한 조치라고 소리 없이 ‘절규’했다. 법무부는 검사의 긴급 출국금지 요청에 따른 적법한 결정이라고 일축했다. 국민 대다수는 닷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 특권층 비리’라며 철저 수사를 지시한 ‘별장 성접대’ 의혹 당사자보다는 법치행정 주무부처의 발표를 더 신뢰했던 것 같다. 지난해 말 국민권익위원회에 날아든 한 건의 공익신고가 묻혀있던 진상의 일단을 드러냈다. 축약하자면 ‘국가권력 남용에 따른 기본권 침해 의혹 사건’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살아있는 권력’ 수사 목록에 추가됐다. 이를 둘러싼 법철학적 논란, 피해자 겸 수감자 김 전 차관의 딜레마를 추적했다.

이륙 10분전 탑승구 앞에서 저지
21개월만에 ‘불법 출금’ 드러나
국가 권력에 의한 헌법 파괴 행위
재발않게 철저히 수사·단죄해야

지난주 늦은 밤 인천공항을 찾았다. 김 전 차관이 2019년 3월 22~23일 지나간 경로를, 시간대에 맞춰 따라가보기 위해서였다. 곧장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가 발권 및 탑승수속 창구 L구역으로 갔다. 그가 3월 22일 금요일 밤 10시25분 태국 방콕행 왕복항공권(타이에어아시아항공 0시 20분발)을 구매한 곳이다. 항공사 직원은 “0시 20분발 비행편이 있긴 한데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월·화·목 운행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김 전 차관이 통과한 T1 4번 출국장 앞에는 시간이 늦어선지 인적이 없었다. 그 이상 들어갈 순 없었다. 표 없는 사람 출입금지가 당연한데도 가슴이 답답했다. 하물며 비행기표 사서 탑승을 학수고대하다 출발 10분 전에 긴급 출금 통보를 받고, 빈 좌석을 싣고 떠나가는 비행기를 속절없이 바라봐야 했던 이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그때 맞닥뜨린 건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거대 석상, 진격의 거인이었을 듯하다. 이때부터 김학의의 시간과 동선은 역방향으로 흘러갔다. 4시간여 갔던 길을 되돌아 결국 집으로 향했다. 가택 연금된 셈이다. 다만 불복의 흔적은 남겼다. 비행기가 떠나고 난뒤 탑승 게이트에 홀로 남은 자신의 사진을 찍어두고 공항 직원이 작성을 요구한 ‘출국취소 신청원’에 펜으로 X표시를 한뒤 사진을 찍어뒀다. 그는 같은 날 오전 5시께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중을 생각해 기록을 남겨둔 것”이라고 말했다.〈중앙일보 2019년 3월 28일자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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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김 전 차관은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의해 수사 의뢰됐다. 조사단에 파견 갔던 이규원 검사가 긴급출금 요청서에 미리 기재(‘3·25일경 대검찰청에 뇌물수수 등 수사 의뢰 예정’)한 그대로였다. 이후 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은 1심에선 무죄가 선고됐으나 지난해 10월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정의 실현 vs 명백한 불법

〈중앙일보 2019년 3월 28일자 25면〉

〈중앙일보 2019년 3월 28일자 25면〉

반전이 일어난 건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 1, 2차 공익신고서가 접수되면서다. 신고자에 따르면 이규원 검사는 긴급출금 요청서에 가짜 사건·내사번호를 넣어 조작했다. 당시 법무부 장·차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과 휘하 공무원들, 대검 간부 등은 민간인의 출입국 정보를 사찰하거나 수사 중단 외압을 가한 공모자로 지목됐다. 사실이라면 검찰개혁과 정의를 입버릇처럼 외쳐오던 법무부·검찰 간부들이 공문서 위조·조작에 가담한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당시는 중대한 혐의를 받고 있던 김 전 차관이 심야에 국외 도피를 목전에 둔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정당성을 주장했다. 성범죄와 뇌물 혐의의 잠재적 피의자에 대한 사법 정의의 실현 측면에서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이에 판사 출신 방희선 변호사는 “김 전 차관이 선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는 공항에 나갈 때 조사중인 사건이 전혀 없는 평범한 시민이었다”며 “그런데도 검사가 가짜 서류를 만들어 출국을 막은 것은 외국 같으면 중죄로 처벌받는다”고 잘라 말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신체의 자유(제12조)와 거주이전의 자유(제14조)인데, 이는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제한할 수가 없다”며 “불법 출금 사건은 굉장히 위험한 비민주적 사고에 기반한 헌법 파괴 행위”라고 강조했다. 헌법 제12조는 국가의 사법절차나 권력행사는 반드시 적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듀 프로세스(Due Process)’ 원칙이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김 전 차관 사례를 통해 드러난 사찰과 불법 긴급출금은 국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기에 중차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불법 긴급출금은 민간인을 불법 체포한 것과 유사한 인권 침해”라는 진단도 나왔다.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수사중인 수원지검이 지난 21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압수한 물품 상자를 들고 철수하고 있다. [뉴스1]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수사중인 수원지검이 지난 21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압수한 물품 상자를 들고 철수하고 있다. [뉴스1]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독일 사례를 들면서 “이 사안은 법철학적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예전에 독일에서 아이 유괴 사건이 발생했다. 공범 한 명을 검거한 경찰이 가혹행위를 통해 아이를 데리고 있는 다른 공범의 소재를 파악, 아이의 생명을 구했다. 범인을 폭행해서라도 아이의 생명을 구한 건 칭찬받을 일이다, 그렇다 해도 폭력을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논란이 격렬했다.” 이 논란의 결말은? 경찰은 기소됐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최근 자택·사무실을 압수 수색당한 이규원 검사의 가짜 서류 작성과 관련해 수사기관 고위 관계자는 “정의감이 넘쳐 형사소송법의 룰(절차)을 무시하고 돌격했다가 부대 전체를 전멸로 이끈 형국”이라며 “정의감 있는 검사일수록 법적 절차 준수가 수사의 생명임을 더 잘 알고 있었을 법도 한데…”라고 안타까워했다.

피신고자 중 차규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 25일 “익명의 공익신고자가 검찰 관계자로 의심된다”며 공무상 기밀유출 혐의로 고발할 뜻을 비치면서 양측의 공방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밤 11시께 인천공항 출국장 내 L구역은 한산했다. 김학의 전 차관은 2019년 3월 22일 오후 10시 25분 태국행 왕복티켓을 구매하고 발권한 뒤 T1 4번 출국장을 통해 출국심사를 마쳤다.   조강수 기자

지난 23일 밤 11시께 인천공항 출국장 내 L구역은 한산했다. 김학의 전 차관은 2019년 3월 22일 오후 10시 25분 태국행 왕복티켓을 구매하고 발권한 뒤 T1 4번 출국장을 통해 출국심사를 마쳤다. 조강수 기자

김 전 차관이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다면 자기주장대로 1~2주만에 귀국했을지, 아니면 해외 도피 행보를 벌였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령 해외 도피의 길로 들어서 수사가 장기간 지연됐다 하더라도 국가 권력이 미래의 범죄를 상정해 기본권을 침해해선 안되는 것이었다. 공권력의 잘못은 가혹하리만치 철저하게 규명하고 단죄해야 한다. 그래야 기본적 인권이 다시 짓뭉개지지 않는다.

김학의의 딜레마…“진상 규명 반갑지만 대법원 선고에 영향 미칠까 걱정”
아이러니한 건 피해자인 김 전 차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로 수원지검 형사3부(이정섭 부장검사)가 진행중인 불법 출금 의혹 수사 소식을 달갑게만 여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김 전 차관을 1~2주에 한 차례씩 면회했다는 측근 변호사로부터 근황과 입장을 전해 들었다.

예상보다 불법 출금 관련 의혹이 빨리 터진 것 같다.
“맞다. 정권이 바뀌고 사건화될 줄 알았는데.”
김 전 차관은 어떻게 지내나.
“(구치소) 안에서 신문 꼼꼼히 보고 관련 기사도 (제가) 우편으로 보내줘 주의깊게 읽고 있다. 구치소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면회가 제한되고 있다. 이번주는 다 막혔다.”
늦었지만 묻혔던 진상이 드러나게 돼 좋아하나.
“진상규명하고 싶은 마음은 있겠지만 겉으로 표현하는 것조차도 거북스러워한다. 이것 자체도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다.”
검찰 조사에는 협조할 계획인가.
“(국가권력 남용의) 피해자로 조사한다는 얘기가 수원지검에서도 나온다. 그런데 뇌물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어서 부담스러워 한다.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지 않을까 걱정한다. ‘원래 나쁜 사람인데 긴급 출금 갖고 떠드느냐’는 식으로 몰아갈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2019년 3월 비행기 타기 직전 출금 통보받고 되돌아왔을 때 상황은.
“그때 긴급출금 자체가 위법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더라. 왕복 티켓 끊고 나갔는데 국민 여론에는 ‘도피 시도범’으로 찍혔다. 그네들(이규원 검사 등)도 당시 내부적으로 위법하다는 것 확실히 알고 있었다. 부랴부랴 수사 의뢰한 것만 봐도 그렇다. 신속하게 피의자 만들어야 했으니까.”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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