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졌다는 절망감’ 요양병원 온 노인들 건강 더 악화

중앙일보

입력 2021.01.26 00:02

업데이트 2021.01.26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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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요양병원 대해부 〈상〉 

“평소 오지도 않던 사람들이 부모를 걱정하면서 난리를 쳤어요. 심지어 숨진 환자의 유품을 안 가져가려는 보호자도 있었습니다.”

요양병원 입원노인 71명 심층조사
4명 중 1명 “자식이 안 돌봐 입원”
“위급” 연락해도 자녀 안 오기도

지난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수도권의 한 요양병원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요양병원에는 집단감염 발생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40~50명의 미감염 환자가 남아 있다. 이 병원 의사는 “산소 치료 등이 필요하거나 집으로 가도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거나 자가격리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 노인들은 왜 요양병원에 입원했을까. 2016년 5월 동서간호학연구지에 실린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노인의 건강상태, 사회적 지지 및 거주 만족도’ 논문(윤동원 한걸음병원 간호사)에 따르면 3곳의 요양병원 입원 노인 71명 중 41명이 입원한 이유가 건강 문제 때문이라고 했지만 16명(24.3%)은 ‘자녀의 지지 부족’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자녀가 돌보지 않으려고 해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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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돌봄 때문에 자녀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예사다. 80대 중반의 B씨는 3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지만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2년이 넘었다. 자녀와 같이 살다가 치매 증세가 생겼고, 자녀들이 누가 모실지를 두고 다퉜다.  B씨는 비대면 면회가 가능할 때도 자녀들을 보지 못했고, 치매 증세가 악화했다고 한다. 노인들은 ‘이제 완전히 버려졌다’는 절망감이 심해지면 건강 악화로 이어진다.

경기도 광주시 이영춘(56·광주성심재가복지센터장)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거의 와상 상태인 남편(63)을 아들(34)과 함께 14년째 집에서 돌본다. 요양보호사가 하루 네 시간 와서 도와준다. 지금은 남편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됐다. 이씨는 “요양병원에 보냈다면 남편이 벌써 하늘나라로 갔을 거다. 관심과 사랑만 한 약이 없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9년 3월 현재 요양병원 입원환자 중 1년 넘은 사람이 17%에 달한다. 이 중 3년 넘은 사람만 9.6%다. 지난해 중순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80대 노인의 목에서 피가 계속 났다. 병원 측이 자식에게 “어머니가 위급한 상황이다”고 연락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의사는 “이게 현대판 고려장이 아니고 뭐냐”고 말했다.

손덕현 대한요양병원협회 회장이 운영하는 요양병원에는 3년째 2000만~3000만원의 병원비를 연체하는 환자가 있다. 보호자가 한 번도 안 오고 연락도 없다고 한다. 손 회장은 “요양병원마다 이런 환자가 다 있다”고 말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가정 돌봄-요양원-요양병원 순으로 만족도가 떨어진다. 동서간호학연구지 논문에 따르면 5점 척도로 쟀을 때 요양원은 3.97점, 요양병원은 3.53점이었다.

하지만 선진국처럼 집에서 돌볼 수 있게 방문 의료, 재활 등의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다. 집과 요양병원 중간 정도 기능을 하는 주거시설도 거의 전무하다. 김윤(의료관리학) 서울대 의대 교수는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중앙정부·지자체 등이 각자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가정 돌봄은 나 몰라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요양병원을 수술 직후 관리, 회복기 재활, 호스피스 등으로 전문화하고, 그렇게 안 되는 요양병원은 의료와 돌봄 필요도가 낮은 환자의 입원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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