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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노동 분쟁, 사실상 종료…정부, 압박에 유감 표명

중앙일보

입력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019년 4월 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집행위원과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한-EU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을 근거로 한국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압박을 했다. 연합뉴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019년 4월 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집행위원과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한-EU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을 근거로 한국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압박을 했다.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한국의 노동문제를 문제 삼으며 제기한 무역분쟁절차가 사실상 종료됐다. 한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의 협정문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면서다.

우리 정부는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애초 분쟁의 대상이 아닌 사안을 들어 압박을 하고 있는 데 대해서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은 25일 이런 내용의 한·EU FTA 전문가 패널 보고서를 공개했다.

"ILO 협약 비준은 노력 조항…한국, 협정 위반 없어" 결론 

보고서는 "한·EU FTA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의무'는 비준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의미"라며 "한국이 협약 비준을 위해 기울인 노력을 고려할 때 한국이 협정문을 위반한 바 없다"고 판단했다. FTA 협정문으로 ILO 협약 비준을 강제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U는 2018년 12월 한·EU FTA 제13장(무역과 지속가능발전)의 노동문제를 들어 무역분쟁절차에 들어갔다. 1차 정부 간 협의에서 EU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2단계인 전문가 패널 절차로 넘어갔다. 이번 보고서는 그 결과물이다. 향후 양국 간 국장급 협의 절차가남았지만, 위반이 없는 상황에서 추가 조치는 없을 전망이다.

전문가 패널은 한국이 FTA를 위반하지 않았다면서도 노조법 중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일부 조항의 개선을 권고했다. 자영업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실업자, 해고자 등 모든 사람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노조 임원을 조합원이 아닌 사람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실업자 등의 노조 가입을 허용한 개정 노조법이 반영되지 않아서 생긴 권고"라고 설명했다.

일부 개선 권고에 정부 "유감"…기업별 노조인 한국에 산별노조 체제 강요 인상

정부는 이와 관련 "한·EU FTA 제13장을 구속력이 있는 의무로 판단하고 권고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항의의 뜻을 전했다. 노력 조항을 확대해석해 무조건 이행하도록 압박한다는 판단에서다. EU의 부당한 압박에 대한 항의로도 해석된다.

특히 패널의 권고 가운데 일부는 유럽에서도 정리가 안 된 사안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자성과 관련된 것이 대표적이다. 유럽에서도 이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놓고 결론을 내지 못한 국가가 상당수다. 여기에다 한국에서도 이들의 산별노조 가입과 특고 노조 설립은 막지 않는다. 기업별 노조에 가입하지 못할 뿐이다. 패널의 권고는 산별노조 체제인 유럽의 노동문화를 한국에 이식하려는 듯한 부당한 압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뒷북 유감표명에 비판 나와…"애초 무역분쟁 대상 아니었다"

비록 한·EU FTA 분쟁이 사실상 마무리 됐지만 정부의유감표명이 뒷북 항의라는 비판이 나온다. EU가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때 왜 강하게 유감표명을 하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EU의 압박을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ILO 협약 비준의 정지작업 격인 노조법 개정을 위해 분위기 띄우기용으로 활용했다는 의미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도 EU가 제기한 사안이 애초 무역분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며 "그런데도 EU의 조치를 지나치게 부풀리며 정치적으로 활용해 국내 갈등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항의는 노조법 개정이 마무리되자 나온 셈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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