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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왕자의 인생3막…"내려놓으니 새 세상" 이영철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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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에서 지도자인 '발레마스터'로 첫발을 내디딘 이영철(오른쪽). 그냥 서있는 발도 완벽하게 턴아웃한 상태다. 지도를 받고 있는 발레리나는 기수지 코르드발레. 우상조 기자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에서 지도자인 '발레마스터'로 첫발을 내디딘 이영철(오른쪽). 그냥 서있는 발도 완벽하게 턴아웃한 상태다. 지도를 받고 있는 발레리나는 기수지 코르드발레. 우상조 기자

2020년은 국립발레단에게도 힘든 시기였다. 팬데믹 때문에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고, 무용수들은 안팎으로 다단한 아픔을 겪었다. 발레단의 간판인 수석 무용수 이영철은 그해를 보내며 결단을 내렸다. 이젠 무대에서 내려와 후배들을 위해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결심이다. 올해 마흔셋. 무용수로서 기로에 서는 나이다. 층층이 쌓인 경험으로 기량은 성숙했지만, 체력이 저하되는 시기여서다. 결국 그는 ‘무용수’ 타이틀을 내려놓고 지도자인 ‘발레 마스터’로 첫발을 내디뎠다. 대중가요 가수의 백댄서로 활동하다 스무살에 발레를 접한 뒤 승승장구해온 그로서는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첫 수업을 진행한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의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타이츠와 슈즈 대신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이영철 발레리노의 활동 당시 사진과 인터뷰 당시의 사진 모음. [국립발레단, 중앙포토, 우상조 기자, 전수진 기자]

이영철 발레리노의 활동 당시 사진과 인터뷰 당시의 사진 모음. [국립발레단, 중앙포토, 우상조 기자, 전수진 기자]

그의 후배 사랑은 발레단에선 워낙 잘 유명하다. 이영철이 무대에 서지 않는 국립발레단 공연을 가면 객석에선 으레 ‘브라보’라는 환호가 우렁차게 울리곤 했다. 후배들 응원을 위해 객석에 앉아 박수를 보내는 이영철의 목소리다. 후배 사랑이 각별한 그를 눈여겨본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은 수년 전부터 그에게 발레 마스터 자리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는 “솔직히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무대에 더 서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털어놨다. 지도자 제안이 섭섭했을 수 있다는 고백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진짜인 거 같다”며 “무용수로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젠 뒤도 보고 발레단 전체의 공동 작업을 위해 뛰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의 지도를 받던 발레단의 기수지 단원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선배 무용수이자 선생님”이라며 “우리를 워낙 잘 알고 있어서 지도자로서 믿고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백댄서에서 발레리노, 이젠 지도자로서 제3의 인생을 막 시작한 그의 심경을 물었다.

20년 무대 떠나는 ‘영원한 왕자님’ 발레리노 이영철. 우상조 기자

20년 무대 떠나는 ‘영원한 왕자님’ 발레리노 이영철. 우상조 기자

스무살에 발레를 처음 접하고 국립발레단 주역이 되다니 기적에 가깝다.  
“백댄서를 하면서 친한 형들이 ‘춤 기본기를 다지기엔 발레가 최고’라고 해서 배우기 시작했다. 똑같은 춤인데, 백댄서인 나는 어른들이 혼을 내고 발레리노인 나는 어른들이 환호하는 게 재미있더라. 어린 시절엔 언더팬츠(발레리노들이 착용하는 하의)도 어색하고 발레에 대한 관심이 전무했다.”
그러다 국내 발레계에선 최고 수준인 세종대에 입학했는데.  
“진짜 우연이었다. 선생님도 ‘넌 세종대는 안 될 거야’라고 했고. 진짜 잘하는 애들은 어떤지 구경하려고 시험을 쳤다. 시험 당일 몸을 푸는데, 다들 너무 잘하니 주눅이 들어서 난 구석에 쳐박혀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당시 조교 선생님이 일어나라고 했고, 용기를 내서 시험을 봤는데 덜컥 붙었다.”  
알고 보니 발레 천재였던 거 아닌가.  
“전혀. 은사님들이 아니면 난 바로 사라졌을 거다. 학교 다닐 때도 기본기가 워낙 없으니 제일 못했다. 선생님들께서 그런 나를 제일 앞줄에 세우시더라. 창피하니까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연습실 열쇠를 몰래 복사해서 새벽2~3시까지 연습했다. 발레는 단순한 기본동작인 탕듀(tenduㆍ발을 옆으로 내밀기)부터 플리에(plieㆍ발꿈치끼리 붙이고 서서 무릎을 굽히는 동작)를 수만번 꾸준히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근육이 서서히 각성을 하면서 계단식으로 발전한다. 정직한 예술이다. 그러다 콩쿨에서 상을 받기 시작했고, 자신감이 붙었다.”  
이영철 발레 마스터에 대해 기수지(왼쪽) 솔리스트는 "강하고도 부드러운 선배이자 선생님"이라고 표현했다. 우상조 기자

이영철 발레 마스터에 대해 기수지(왼쪽) 솔리스트는 "강하고도 부드러운 선배이자 선생님"이라고 표현했다. 우상조 기자

국립발레단에 스카웃된 뒤 슬럼프가 왔는데.  
“역시 기본기가 문제였다. (하이라이트만 모아 올리는) 갈라 공연에선 얼추 괜찮은데, 2시간 가까운 전막 공연에선 내 기본기 부족이 다 드러났고, 결국 3년 정도 하다 그만뒀다. 러시아로 유학을 가려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단장이 불러주셔서 갔다가, 국립발레단에서 객원으로도 다시 활동했다. 그러다 주역 무용수 부상으로 대역 기회를 받았고, 다시 주역으로 뛰게 됐다.”  
발레 마스터 이영철은 안무가로서도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 우상조 기자

발레 마스터 이영철은 안무가로서도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 우상조 기자

발레 무용수는 대개 10살 이전에 무용을 시작해 발레에 최적화된 체형을 조각해 나가고, 예중ㆍ예고를 거쳐 대학에서 콩쿨에 출전한다. 이영철은 이런 탄탄대로와는 거리가 먼 길을 돌아왔고, 그만큼 좌절도 겪었다. 그 좌절은 지도자로서, 또 안무가로서의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는 그에겐 최고의 자양분이다. 국립발레단의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인 ‘KNB 무브먼트 시리즈’를 통해 안무가로서의 경력도 탄탄히 쌓아나가고 있다. 오는 29일엔 『발레리노 이야기』(플로어웍스)도 출간한다.

이영철 발레리노가 29일 출간하는 책 표지.

이영철 발레리노가 29일 출간하는 책 표지.

지난해 12월 ‘호두까기 인형’으로 고별무대를 준비했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공연이 취소된 건 발레 팬들에겐 큰 아쉬움이다. 이영철 본인은 그러나 “은퇴 결정이 쉽지 않았던 만큼 매 순간이 ‘내려놓기’를 연습하는 과정이었고, 무대에 서는 것도 좋았겠지만 혼자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발레 공연은 무용수와 발레단 모두의 공동 작업이고, 무엇보다 관객 여러분을 위한 작업”이라며 “팬데믹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여러 시도를 많이 하고 있고, 앞으로도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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