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1년 지나면 살인충동" 전문 변호사도 이사 갔다

중앙일보

입력 2021.01.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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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19년 5월 4일 세종시 고운동의 한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15층에 살던 40대 남성이 아래층에 살던 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 세종소방본부

2019년 5월 4일 세종시 고운동의 한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15층에 살던 40대 남성이 아래층에 살던 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 세종소방본부

“뭘 그런 거로 화를 내고 따지느냐.” 지난해 3월 대전 동구의 한 빌라에서 층간소음 때문에 위층 주민과 다투고 내려온 A씨는 옆집 주민 B씨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화가 난 A씨는 곧바로 자신의 집에서 흉기를 챙겨 나온 뒤 B씨를 향해 휘둘렀고 결국 B씨는 숨졌다.

“재택근무 방해” “애 혼내느라 지쳐”
코로나 집콕, 소음민원 60% 늘어

갈등 초기가 문제 해결 골든타임
“아파트마다 층간소음위 마련 필요”

광주 광산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지난 5월 주민 C씨가 계속되는 층간소음에 “도저히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며 자신의 집에 있는 흉기를 들고 위층 D씨를 찾아가 항의했다. 1월 남구에서는 층간소음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주민들이 주먹질을 주고받고 흉기로 위협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웃 간에 층간소음 갈등이 커지면서 보복소음뿐 아니라 폭력, 살인 등의 범죄로 번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층간소음 갈등이 풀리지 않고 장기화하면서 소음이 아닌 감정싸움으로 번진다는 것이다. 주거문화개선연구소가 층간소음 사례를 분석한 ‘층간소음 민원저감형 가이드라인 개발을 위한 피해자 경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층간소음 갈등은 기간에 따라 3단계로 나뉜다.

우선 6개월 이내에는 단순히 해결을 위해 압박을 가하는 수준으로, 큰 사고로 번지진 않는다. 하지만 2단계(6개월~1년)가 되면 층간소음 갈등이 당사자 간의 감정 문제로 확대된다. 위층뿐 아니라 관리사무소 등 중재기관에 대한 불신이 시작된다. 이후 1년 이상이 되면 그동안 제시된 층간소음 해결 방식이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고 느끼고, 결국 피해 세대가 법적 소송을 준비하는 등 직접 해결에 나서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가해 세대에 대한 살인 충동이 생기고, 폭행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층간소음으로 인한 폭행이나 살인사건은 대부분 갈등을 겪은 지 1년이 넘어간 세대에서 발생한다”며 “층간소음 갈등이 1년이 지나면 그때부터는 소음은 중요하지 않고 감정이 80%를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층간소음 피해 변호사도 “소송 포기하고 이사”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층간소음 갈등이 발생하면 우선 관리사무소에 중재를 요청할 수 있다. 여기서 해결이 안 되면 층간소음 전문기관인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민원을 제기해 방문상담이나 소음측정을 받을 수 있다. 측정 결과, 층간소음 기준치를 초과하면 이를 근거로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소음 분쟁을 주로 다루는 이승태 변호사(경기도 환경분쟁조정위원)는 “처음에 층간소음 갈등이 발생한 뒤 이웃사이센터가 나서 소음 측정을 하기까지 보통 1년이 넘게 걸리고, 측정 수치를 근거로 환경분쟁조정위에 재정신청을 해도 길게는 6개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아래층에서는 이를 기다리면서 점점 피폐해지고 말 그대로 지옥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년간 층간소음 피해를 겪었다는 이 변호사는 “층간소음 피해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고 소송을 할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이사를 했다”고 했다.

층간소음 민원 급증…61%는 “걷거나 뛰는 소리”

한 아파트 가정에 깔린 매트 위를 걷는 아동의 모습. 천권필 기자

한 아파트 가정에 깔린 매트 위를 걷는 아동의 모습. 천권필 기자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층간소음 민원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웃 간 갈등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를 해서 주 중에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윗집 아이들이 뛰는 소리, 가구를 끄는 소리가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들립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움직이는 동선이 파악될 정도고요.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크게 놀라는 일이 자주 있어요.” - 아래층 E씨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 유학이 취소돼서 국내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어요. 저도 가급적 슬리퍼를 신고, 아이들도 소음저감 매트 위에서 생활하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라 발걸음 소리가 잘 통제되지 않네요.” - 위층 F씨

최근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로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층간소음 민원이 들어왔다. 담당자가 현장에 방문해보니 아래층 세대는 재택근무를 하느라 층간소음을 참기 힘들고, 위층 세대는 종일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다그치느라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요즘 이웃사이센터에는 이런 층간소음 민원이 매일 200건 넘게 접수된다.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층간소음 전화 상담 건수는 4만 2250건으로 전년보다 60%가량 늘었다. 특히, 겨울로 접어들면서 집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창문까지 닫고 살다 보니 층간소음 민원이 여름철보다 두 배로 폭증했다.

숫자로 본 2020년 층간소음 갈등.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숫자로 본 2020년 층간소음 갈등.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웃사이센터가 지난해 방문상담을 한 내용을 토대로 층간소음 갈등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뛰거나 걷는 소리’가 61.4%로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망치 소리(4.7%), 가구 끄는 소리(4.6%), 문 개폐(2%), 악기연주(1.1%) 등이 뒤를 이었다.

이웃사이센터를 운영하는 서병량 한국환경공단 주거환경관리부 과장은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이 층간소음에 더 예민해지고, 피로감도 많이 쌓인 거 같다”며 “근본적인 해결을 해달라고 하지만 중재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직원 수는 똑같은 데 민원이 폭증하면서 방문상담이나 측정을 위해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정확히 답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소음을 측정하려면 24시간 동안 집을 비워야 하는데 방역 조치 강화로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 측정 자체를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갈등 초기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중앙일보 디지털스페셜 ‘층간소음 번역기’에 접속해보세요!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거나, 링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주소창에 링크(https://news.joins.com/Digitalspecial/343)를 붙여넣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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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층간소음 갈등을 풀려면 초기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면서 아파트 등 공동체 단위에서부터 갈등 중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학교에 학교폭력위원회가 있는 것처럼 아파트 공동체마다 층간소음위원회를 의무적으로 구성하게 해서 거기서 내린 결정이 어느 정도 강제력을 갖도록 자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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