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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나의 디지털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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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과 교수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과 교수

처음에는 그저 시곗바늘이 떨어져 나간 대신 깜빡거리는 숫자판으로 대체된 시계가 디지털의 모든 것인 줄 알았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흘러 우리 삶의 곳곳에서 디지털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던 즈음, 한 TV 광고 속 좌판을 벌여놓은 할머니의 “돼지털?”이라는 되물음에서 ‘디지털’과 ‘돼지털’ 사이의 그 정감 어린 여운의 거리가 얼마쯤 될까 가늠해본다.

디지털 존재가 뚜렷해질수록 #자취 감추는 듯했던 아날로그 #사람의 냄새처럼 헤집고 나와

나의 디지털 기억은 실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미국에서 오랜 이민생활을 하고 계신 외삼촌이 직접 만들어주신, 까맣고 네모난 시계 상자를 받아들었을 때이다. 그때가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이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 청계천 근처 세운상가에 자그마한 가게를 가지고 무슨 기계든 척척 고쳐내시던 외삼촌 주변에는 늘 납땜하던 고데기 같은 기계가 어질러지고 어수선한 선반 위에 있었던 것 같다. 기다란 납으로 된 철사 같은 것을 달궈진 고데기 끝에 대면 긴 철사는 맥없이 녹아내려 은색의 표피에 둘러싸인 물방울처럼 출렁거리면서 이리저리 굴러다니기도 했다. 이 신기한 은색의 액체 덩어리 주변에서 나던 그 금속성의 야릇한 냄새가 기억 속에 함께 배어있다.

어느 날 외삼촌께서 직접 만드신 것이라 하면서 까만 상자같이 생긴 플라스틱 물건을 하나 건네주셨다. 이름하여 “디지털시계”. 그 당시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받는 선물이 뻔했다. 콘사이즈 영한사전 혹은 영영사전, 옥편도 있었고, 빠이롯트 만년필, 그리고 좀 괜찮은 형편이면 손목시계를 선물로 받았다. 대부분 둥그런 얼굴을 하고 있던 그 당시 시계들은 반드시 긴바늘인 분침과 짧은바늘인 시침이 있었고, 좀 큰 얼굴에는 바쁘게 그러나 또박또박 한 걸음을 잰 듯 돌아가는 초침도 있었다. 이 시계 침들은 이렇게 하루만도 수없이 몸을 부대껴가며 공전하는 단순하면서도 정교한 일을 담당했다. 물론 때 찾아 밥도 먹어가면서. 게으른 주인을 만나면 ‘죽기’ 일쑤였다. 그래도 신통방통 밥만 주면 벌떡 일어나 숨 쉬듯 다시 군소리 없이 제 갈 길을 갔다.

삶의 향기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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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내 손에 쥐어진 까만 상자는 시곗바늘은 물론 둥근 얼굴은 고사하고, 그 둥근 낯짝에 다섯 걸음씩 건너뛰며 겨우 12까지만 쪼잔하게 쓰여 있던 숫자마저도 없는 녀석이었는데 당당하게 시계라 했다. 탁상 위에 놓는 것인데, 쥐꼬리마냥 긴 전선을 달고 있었다. 플러그에 꽂으니 그저 까만 숯 검댕이 같던 네모진 상자에서 하얀 숫자가 깜빡깜빡하며 마치 생명줄이 닿아 첫 호흡을 시작하는 양 그러나 제법 규칙적으로 할딱거렸다. 그러더니 숫자가 어느 순간 바뀌고 있는 게 아닌가? 나무막대기로 보내는 수신호처럼 각진 모양을 만들며 스스로 0에서 59까지의 숫자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 까만 상자는 내가 처음으로 보고 만져본 디지털의 실체였다.

시간은 아날로그이건 디지털이건 늘 그래왔던 그 속도로 흘러간다. 그 시간의 흐름 안에서 많은 변화들을 겪으며, 어느 순간 우리는 디지털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자연스레 말하게 되었다. 그렇게 디지털은 이제 우리의 삶에서 그 어떤 것으로든 자신을 투영시킬 준비가 되어있는 듯하다. 더구나 ‘스마트’한 녀석들은 우리 손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부재가 인식되는 순간 ‘분리불안’ 증세마저 유발한다.

디지털의 존재가 뚜렷해질수록 아날로그의 자취들이 사라지는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즈음에 한 가닥 끈질긴 생명의 줄기처럼 아날로그를 그리는 향수(鄕愁)가 기억과 추억을 헤집으며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달걀 프라이와 진주햄 소시지를 얹은 양철 도시락부터, 대놓고 “불량식품”이라는 간판을 내건 추억의 과자가게며, 섬세한 손동작과 함께 울렁이듯 돌아가는 숨결 소리에 맞물려, 귓속이 아닌 가슴을 후벼 파는 LP의 귀환들이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이 한 번의 클릭으로 움직이는 디지털의 세상은, 우리의 감각과 감성이 맞닿아 있는 소유의 실체를 허우적거리는 현란한 손짓으로 가상(virtual)의 공간에서 실재하도록 증강현실의 마법을 부린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고 완벽함만을 좇아 숨통을 죄어 오는 디지털 세상의 그 엄격함에 지쳐, 어디론가 찾아가야 할 푸근한 고향 같은 곳을 그리게 되는 것일까? 점차 사라져가는 줄로만 알았던 아날로그에 대한 아쉬움이 가벼운 푸념처럼 새어 나오고, 그 넉넉한 감성의 체취를 좇고 있다. 그리고 그 체취가 바로 그 어떤 인공지능도 따라오지 못한 사람의 냄새라고, 그래서 한 줄기 바람이 숨결로 다가오듯 “사람의 결”을 그리워한다고.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