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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보란듯 트럼프가 들인 처칠상, 바이든은 바로 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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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지난 20일(현지시간) 업무를 개시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사흘 간 각종 정책을 쏟아내며 빠르게 국정을 주도해 가고 있다. 반(反)이민 정책을 되돌리는 행정명령 등 ‘트럼프 지우기’가 주를 이뤘지만, 달라진 건 정책 뿐이 아니었다. 백악관 집무실 구성은 물론 일 하는 스타일도 트럼프 시대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고 있다. 외신들이 분석한 ‘바이든 시대’ 대표적인 변화들을 꼽았다.

①사라진 처칠 동상과 콜라 버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과 함께 백악관 집무실도 새 단장을 했다. 업무를 보는 ‘결단의 책상’ 주위에 흑인해방운동가 마틴 루서 킹과 노동 운동가 세자르 차베스 흉상 등을 배치하면서 인권과 통합을 강조하는 기조를 그대로 담았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과 함께 백악관 집무실도 새 단장을 했다. 업무를 보는 ‘결단의 책상’ 주위에 흑인해방운동가 마틴 루서 킹과 노동 운동가 세자르 차베스 흉상 등을 배치하면서 인권과 통합을 강조하는 기조를 그대로 담았다. [AP=연합뉴스]

대통령의 업무 공간인 백악관의 오벌 오피스 구성부터 달라졌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백악관은 워싱턴포스트(WP)에 새로운 오벌 오피스를 단독으로 공개했다. WP를 비롯한 주류 언론들을 배척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출발부터 사뭇 다르다.

WP에 따르면 백악관은 바이든 집무실을 대통령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그의 철학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꾸몄다. 대통령이 서류를 처리하는 이른바 ‘결단의 책상’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콜라 버튼이 사라졌다. 술을 마시지 않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이어트 콜라를 달고 살았고, 책상 위 빨간색의 콜라 전용 버튼을 누르는 모습이 외신에 자주 등장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책상 위에 수십권의 결재서류, 만년필과 전화기가 놓여 있는 상태에서 취재진을 맞았다. 첫날부터 업무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오른편 벽에 놓았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의 동상도 사라졌다. 대신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노동 운동가 세자르 차베스, 마틴 루서 킹 목사 등 인권 운동가들의 동상을 새로 갖다놨다. ‘결단의 책상’ 바로 뒤편에는 가족들 사진들을 배치했다.

특히 처칠 동상은 지난 반세기 갖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오벌 오피스 안팎을 맴돈 역사가 있다. 영국의 조각가 제이콥 엡스타인이 제작한 처칠 동상이 처음 백악관에 기증된 건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 때였는데, 이후 파손됐다고 한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같은 작가의 처칠 동상을 2001년 백악관에 대여 형식으로 다시 건넸다.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이 조지 W.부시 대통령에게 우정의 징표로 준 일종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처칠 동상을 오벌 오피스 바깥으로 뺐고, 이는 과거 영국 제국주의에 비판적인 제스처를 취했다는 해석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보리스 존슨 당시 런던시장(현 영국 총리)이 “절반은 케냐 사람인 대통령이 영국 제국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있다”며 현직 미국 대통령을 인종적으로 비하하는 발언을 해 국제적으로 큰 논란이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런 사연이 있는 처칠 동상을 임기 첫날부터 오벌 오피스 한 편에 배치했고, 존슨 총리와도 남다른 밀착 관계를 이어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바이든 대통령이 존슨 총리를 “트럼프의 정신적, 정서적 복제품(clone)”으로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다 바이든 대통령 시대를 맞으면서 처칠 동상은 오벌 오피스 밖으로 다시 밀려나게 됐다. 영국 총리실은 이에 대한 질의에 “오벌 오피스는 대통령의 집무실로, 이를 어떻게 꾸밀지는 그의 마음에 달렸다”며 즉답을 피했다고 CNN은 전했다.

23일 미ㆍ영 정상 간 첫 통화는 이런 미묘한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존슨 총리와 통화를 갖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취임 이후 캐나다ㆍ멕시코에 이은 세 번째 해외 정상 통화였다.

②백악관 일일 브리핑, NYT·WP도 재구독

'결단의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 [AFP=연합뉴스]

'결단의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 [AFP=연합뉴스]

임기 초반이긴 하지만, 언론과의 관계도 순항하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더 힐에 따르면 백악관은 최근 뉴욕타임스(NYT)와 WP를 재구독하기 시작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짜"와 "부패"의 온상이라며 두 신문을 2019년 10월부터 끊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NYT, WP, CNN 등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가짜뉴스”로 몰아세우며 전쟁을 벌이다시피했다. 2018년엔 기자회견장에서 자신과 설전을 벌인 CNN의 백악관 출입기자 짐 아코스타의 출입증을 백악관이 압수했다가, 법원의 명령으로 이를 취소한 적도 있었다. 백악관 대변인실도 브리핑이 뜸해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반면 바이든 정부의 젠 사키 백악관 신임 대변인은 20일 첫 데뷔 브리핑부터 호평을 받았다. 사키 대변인은 이날 일일 브리핑을 약속하면서 “언론과 (정부의)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다”고 밝혔다.

포브스는 사키 대변인이 국가 안보, 공중보건 등 현안에 대해 막힘 없이 매끄럽게 답변했고,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거취 문제 등 민감하지만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얼버무리지 않고 “대통령과 아직 논의하지 않은 문제”라고 솔직하게 말한 것에 높은 점수를 줬다.

③트위터엔 대통령 대신 전문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는 모습. 바이든 정부는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을 기치로 걸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는 모습. 바이든 정부는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을 기치로 걸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시대를 상징하는 또다른 장치는 트위터다. 언론을 믿지 않았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하루 수십개의 트윗을 쏟아낸 적도 있다. 이와 관련 여론조사전문가인 닐 뉴하우스 퍼블릭오피니언스트레티지스 공동창립자는 WP에 “트럼프의 비정치적인 접근이 유권자들에게 어떤 호소력이 있었다”며 “일례로 많은 미국인들이 트위터로 소통하는데 익숙하고, 실제로 (트럼프 방식을)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WP는 바이든 정부에선 이런 모습은 사라지는 대신, 전문가 집단이 전면에 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전문가들(technocrats)의 귀환”이라고 표현했다.

실제 백악관 공식 트위터 계정에는 23일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이 등장해 “마스크를 착용하세요”라고 권유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워싱턴에서 잔뼈가 굵은 행정 관료와 전문가들이 등장한다는 건 트럼프 정부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단 워싱턴의 소수 엘리트 그룹으로 굴러가는 업무 방식은 대중들에게 또다시 ‘그들만의 리그’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이 한계가 될 수 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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