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공매도 논의서 사라진 금융위, 선거철 반짝 등장한 정치권

중앙일보

입력 2021.01.24 09:00

금융위원회가 사라졌다. 금융정책 총괄하는 부처인 금융위가 정작 금융시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공매도 금지 조치 연장 관련 논의에서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2021년 금융위원회 업무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2021년 금융위원회 업무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최근 금융위 당국자들은 공매도에 대해 ‘묵언 수행’을 하고 있다. 개인의 공매도 참여 방안 등 제도 개선에 관한 사항에도 “지금은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지난 18일 “저도 금융위 직원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말씀드릴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은 위원장은 “공매도 관련 사항은 9명으로 구성된 금융위 전체회의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공을 금융위로 넘겼다.

금융위가 처음부터 묵언 수행을 한 건 아니다. 금융위는 지난 11일 ‘한시적 공매도 금지조치는 3월 15일 종료될 예정’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이후 금융위 고위당국자를 인용해 ‘공매도 재개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튿날인 지난 12일 다시 “11일 발송된 문자메시지 내용이 금융당국의 공식 입장”이라고 재확인했다.

금융위가 침묵 모드로 바뀐 건 공매도 재개와 관련해 개인투자자와 정치권의 거센 압박을 받으면서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은성수 위원장 해임을 요구하는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정치권에서는 “국회ㆍ총리도 무시하는 금융당국이 불쾌하다”(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등의 거친 반응도 나온다.

금융위의 침묵은 민감한 사안을 결정하기 전 혼선을 줄이기 위한 노력일 수 있다. 다만 우려스러운 지점은 금융위가 금융 정책 결정에 제 목소리를 내는지 여부다. 금융위가 묵언 수행을 이어가는 동안 공매도 관련 논의를 주도하는 곳은 정치권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공매도 금지 조치 연장에 무게를 둔 발언이 잇따라 쏟아진다. 민주당 관계자를 인용해 ‘공매도를 6월부터 제한적 허용한다’는 등의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공매도 연장을 결정하는 금융위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연장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지난 20대 국회 때 발의된 공매도 관련 법안. 모든 법안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홈페이지 캡처

지난 20대 국회 때 발의된 공매도 관련 법안. 모든 법안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홈페이지 캡처

공매도 제도에 대해 정치권이 목소리를 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불법공매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제도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등 각종 입법과제는 국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가 나오는 시점과 배경이다. 서울과 부산시장 선거(4월 7일)를 3주가량 앞두고 예정대로 공매도가 재개되면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봐 여당이 공매도 금지 연장을 주장하고 있다는 의구심이다. 공매도 제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 지방선거라는 '한 철 장사'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지적에는 근거가 있다. 실제 정치권은 그동안 공매도 제도 개선에 무관심으로 일관해왔다. 지난 20대 국회(2016년~20년) 당시 공매도 제도 개선을 위해 발의된 법안은 14개였다.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 강화와 공매도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는 등의 내용이 담긴 법안이다. 이들 법안은 모두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의 문턱도 넘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정무위 속기록이나 회의록에는 법안에 대한 논의 내용조차 남아있지 않다. 철저한 무관심의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다.

개인투자자가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주장하지만 공매도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함께 존재하는 제도다. 제도적 미비로 인해 공매도 재개 여부에 대한 시장 참여자와 전문가의 의견도 엇갈린다. 그럼에도 지금 필요한 것은 공매도 관련 논의에서 중심을 잡는 금융위의 역할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여론과 정치 논리가 아니라 관료와 전문가 집단이 중심을 잡고 경제적 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회사에는 목소리를 높이다 정치권 앞에서는 침묵을 지키는 금융위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선거철에 '반짝' 제도 개선의 선봉장인 양 여론에 편승해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권의 행태는 우려스러울 뿐만 아니라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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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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