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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왕후’는 왜 철종을 택했을까…두 얼굴 오가는 부창부수

중앙일보

입력

드라마 ‘철인왕후’에서 철종 역을 맡은 배우 김정현. [사진 tvN]

드라마 ‘철인왕후’에서 철종 역을 맡은 배우 김정현. [사진 tvN]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방송 첫주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로 표현하고 신정왕후 등 실존 인물을 사실과 다르게 표현하면서 역사 왜곡 논란이 일고, 중국 원작 소설 『태자비승직기(太子妃升职记)』의 작가 셴청(鲜橙)의 혐한 성향이 알려지면서 발목을 잡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았다. 제작진은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집안을 각각 안송김씨, 풍안조씨 등으로 수정하는 등 해당 논란을 빠르게 진화했고 시청자들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이를 지켜봤다. 타임슬립을 결합한 퓨전 사극이 굳이 철종 시대를 택한 이유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12회 시청률은 13.2%를 기록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전체 20부작으로 추가 상승 여력도 충분하다.

[민경원의 심스틸러] #조선판 지킬 앤 하이드 철종 역 김정현 #허수아비부터 사랑꾼까지 다양한 매력 #펄펄 나는 신혜선 연기 든든하게 뒷받침 #‘시간’ 논란 딛고 ‘사불’로 재기, 탄탄대로

극 중 철종(김정현)을 소개하는 키워드는 ‘조선판 지킬 앤 하이드’다. 겉보기에는 대왕대비 순원왕후(배종옥)의 수렴청정에 밀려 정사에는 관심이 없는 ‘허수아비 왕’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가식 끝판왕’이란 이유에서다. 하나 두 얼굴을 가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중전 김소용(신혜선)의 몸에는 사고로 타임슬립한 대한민국 청와대를 호령하던 마초 셰프 장봉환(최진혁)의 영혼이 깃들어있고, 후궁 조화진(설인아)은 가짜 김소용 행세를 하며 철종의 첫사랑이 되었다. 궁 안에 있는 인물 중 가면을 쓰지 않고 진짜 얼굴을 드러낸 이는 조선의 실정에 무지한 장봉환이 깃든 김소용 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서로 속고 속이는 데 여념이 없다.

겉보기엔 허수아비 왕 같지만 속으로는 비리 척결을 꿈꾸는 야심가다. [사진 tvN]

겉보기엔 허수아비 왕 같지만 속으로는 비리 척결을 꿈꾸는 야심가다. [사진 tvN]

중전 김소용(신혜선)과 안 맞는 듯 하면서도 잘 맞는 독특한 케미를 선보인다. [사진 tvN]

중전 김소용(신혜선)과 안 맞는 듯 하면서도 잘 맞는 독특한 케미를 선보인다. [사진 tvN]

‘황금빛 내 인생’(2017~2018) 이후 ‘시청률 보증수표’로 거듭난 신혜선이 파격 중전 역을 맡아 펄펄 날아다닌다면, 철종 역의 김정현(31)은 이를 탄탄하게 받쳐준다. 중전이 ‘노타치’ 등 생전 처음 듣는 단어를 내뱉어도 “각자 잘 살자”는 말로 찰떡같이 받아들이고, 물만 보면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등 기행을 일삼아도 다시금 제자리로 돌려놓으면서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다. 수릿날 연회 음식 준비에 차질이 생기자 중전이 초청 숙수로 분해 기지를 발휘한 콩고기 버거 맥두날두를 보고 ‘보릿고개엔 콩고기’라며 보리 맥(麥), 콩 두(豆), 살찔 날(妠), 배 두(肚)로 해석해 내는 철종을 보면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서로 품은 뜻은 다르지만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김정현의 성장세도 눈에 띈다. 전작 tvN ‘사랑의 불시착’(2019~2020)에서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삶을 영위하는 영국 국적 사업가 구승준 역으로 호평받은 데 이어 ‘철인왕후’에서는 한층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다. 자신이 허수아비처럼 보여야 할 때와 강인한 군주처럼 보여야 할 때를 알고 그에 맞는 얼굴을 끄집어낸다. 한문 교사와 국사 교사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역사에는 일가견이 있는 장봉환이 알던 철종과는 전혀 다른 면모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부인을 8명이나 둔 호색한이 아닌 사랑에 목숨 거는 다정다감함이랄지, 민생고 따위는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이 아닌 백성의 마음을 두루 살피고자 애쓰는 속내 등 반전매력이 속속 등장하면서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구승준 역의 김정현과 서단 역의 서지혜. 서브 커플로 사랑받았다.[사진 tvN]

‘사랑의 불시착’에서 구승준 역의 김정현과 서단 역의 서지혜. 서브 커플로 사랑받았다.[사진 tvN]

‘시간’ 천수호 역의 김정현. 연기는 호평 받았으나 태도 논란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진 MBC]

‘시간’ 천수호 역의 김정현. 연기는 호평 받았으나 태도 논란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진 MBC]

MBC ‘시간’(2018)으로 마음고생 했던 시간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제작발표회 당시 태도 논란으로 시작해 섭식장애와 수면장애로 중도 하차한 이후 한동안 그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불성실 혹은 책임감 부족 등의 꼬리표가 오랜 시간 따라다닐 수도 있었지만 1년 5개월간의 공백기 끝에 돌아온 ‘사랑의 불시착’으로 이를 말끔히 씻어냈다. 이정효 PD와 3~4시간 동안 작품 외적인 얘기를 나누며 나중에 대본을 건네받았다는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이 PD와 박지은 작가를 ‘은인’이라 칭했다.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지만 많은 사랑을 받은 덕분에 마음에 살을 붙이며 재활할 수 있었다”고. 숨 고르기 끝에 “몸도, 마음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준 셈이다.

2015년 첫 장편영화 ‘초인’으로 데뷔한 그는 초반부터 ‘기대주’로서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다. 중학교 학예회에서 더빙 연기를 한 것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때 연극부를 만들어 직접 쓴 극본으로 무대에 올릴 만큼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박정민ㆍ변요한ㆍ엑소 수호 등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동기들보다 데뷔는 조금 늦었지만 KBS2 ‘학교 2017’,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등에서 잇따라 주연을 맡으며 칼날을 벼려왔다. 이제는 공백기를 줄이고 “소처럼, 경운기처럼 부지런히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그가 제 속도를 찾는다면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 아닐까. “연기는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그의 말처럼 필모그래피가 쌓일수록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날 수 있기를.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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