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빈자리 크다” 미래 먹거리 시름 깊은 신동빈

중앙선데이

입력 2021.01.23 00:20

업데이트 2021.01.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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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호 16면

재계 5위 롯데의 절치부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아버지이기 이전에 제게 큰 스승이기도 했다. 어려움이 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그것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이겨내겠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 타계 1주기인 18일 유튜브에 공개한 추모영상에서 “아버지의 빈자리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롯데그룹은 신 명예회장의 1주기를 기리기 위해 18일부터 22일까지 온라인 추모관을 운영했다.

신격호 회장 추모사에 고민 담겨
반도체도 없고, 배터리도 없고…
주력 사업 혁신 뒤져 곳간 비어가

온라인 유통 ‘롯데온’ 정비 나서고
화학 등 새 성장동력 개척 총력전

신 회장이 맞닥뜨린 현실에 대한 고민은 그의 사부곡(思父曲)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롯데그룹은 반도체도 없고, 전기차 배터리도 없다. 언택트(비대면)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주력 사업은 여전히 ‘오프라인’에 머물러 있다. 미래 먹거리는 확보하지 못했는데, 기존 먹거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롯데의 이 같은 현실은 지난해 10대 그룹의 시가총액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그룹의 시가총액은 약 42.2% 증가했지만 롯데는 유일하게 감소(-2.24%)했다. 주력이 호텔·소비재인 만큼 코로나19 여파로 타격을 받은 계열사가 많기도 했지만, 체질 개선이나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예컨대 롯데쇼핑의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12조2285억원으로 전년 동기간보다 8.1% 줄었다. 이와 달리 경쟁사인 신세계그룹의 이마트는 지난해 전년보다 5.9% 증가한 15조535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삼성·현대차·SK 등 다른 대기업은 반도체나 전기차, 배터리 등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코로나19 속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배인해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나 국정농단 재판과 신동빈 회장 구속 등 그룹 안팎으로 시련이 잇따르면서 시장 변화 등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던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그래픽=이정권 기자

그룹 안팎에선 신 회장이 2018년 2월 13일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이후 그해 10월 5일 석방되기까지 235일간 ‘경영 공백’이 생기면서 현안에 대한 대처가 늦었던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통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롯데는 ‘유통 공룡’으로 불렸지만 총수 부재 등으로 온라인으로의 유통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유통뿐 아니라 그룹 전체가 존재감을 잃어 가고 있다”며 “정치권에 쉽게 휘둘리는 한국 산업의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지난해 4월 온라인쇼핑몰 ‘롯데온(ON)’을 선보이고 본격적으로 ‘온라인’으로의 전환을 시도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쿠팡과 같은 e커머스(전자상거래) 강자나 또 다른 오프라인 유통 강자 신세계그룹의 SSG닷컴과의 차별화에 실패하면서다.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롯데온 애플리케이션 월 사용자 수는 112만 명으로 1위 쿠팡(2141만 명)의 5.2% 수준에 그쳤다.

신 회장은 14일 열린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긴장을 불어넣으면서도 미래 사업 추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고위 임원은 “롯데알미늄이 지난해 1100억원을 들여 헝가리에 전기차용 배터리 양극박 생산 공장을 세웠는데, 신 회장께서 새로운 먹거리를 위한 과감한 투자라며 격려했다”며 “130여 명이 참석하는 사장단 회의에서의 특정 계열사를 칭찬하는 일은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롯데알미늄 사례는 기존의 사업과 매출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먹거리를 마련하라는 우회적인 주문이었다는 게 그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재계에선 올해 롯데 유통 부문의 구조조정이 더 빨라질 것으로 내다본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2월 오프라인 점포 700개 중 200개를 정리하겠다는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지금까지 114개 점포를 닫았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통 부문의 구조조정은 늦은 감이 있는데, 워낙 오프라인이 강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구조조정에) 속도를 낸다면 온라인에서도 빠르게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협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구조조정이 끝나면 연 2000억원의 실적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전환을 알린 롯데온을 정상궤도에 올리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도 시작했다. 롯데가 전통적으로 강점을 갖고 있는 ‘식료품’을 롯데온 주력 상품군으로 정하고, 다른 e커머스와의 차별화에 나선다. 그룹 내 식품 계열사나 스타트업과의 협업 등을 통해 가정간편식(HMR)·밀키트·초신선식품 등을 대거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임현동 롯데온 상품부문장은 “결국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야 구매도 하고 또 방문한다”며 “롯데온에 등록된 판매 업체는 현재 2만여 곳인데 연말까지 이를 2배로 늘려 물품을 확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그룹의 또 다른 축인 화학 부문에선 적극적인 투자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고부가가치 소재에 강점을 갖고 있는 일본의 화학기업 쇼와덴코 지분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롯데케미칼의 포트폴리오를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유통을 중심으로 수익성 위주의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고, 투자를 늘리고 있는 만큼 올해가 롯데그룹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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