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냥으로 LBO 대도약 이룬 동갑내기 사촌 투톱

중앙선데이

입력 2021.01.23 00:20

업데이트 2021.01.2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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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호 24면

[월스트리트 리더십] KKR 공동 회장 로버츠·크래비스

워런 버핏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그의 사업 파트너 찰리 멍거다. 버핏과 멍거는 모두 90대의 나이인 지금도 함께 투자회사 버크셔헤서웨이를 이끌고 있다. 버핏은 멍거를 “훌륭한 사업 파트너이자 인생 파트너”라고 부르며 “서로 깊이 존경한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60년 넘게 이어진 두 사람의 ‘케미’가 사업 성공 비결의 하나인 것이다.

비상장기업 사서 되팔아 잇단 성공
나비스코 인수 때 냉혹한 헌터 오명
부동산·헤지펀드 등으로 영역 넓혀

작년 팬데믹 절정기에 과감한 베팅
지속가능성에 초점 맞춘 윈윈 투자

버크셔헤서웨이 못지않게 끈끈한 파트너십이 특징인 투자회사가 KKR이다. 글로벌 사모투자운용사(PEF) KKR에선 공동 CEO 두 사람이 리더의 역할을 양분하고 있다. 그런데 공동 CEO는 매우 드문 기업지배구조다. 이상적으로 운영된다면 균형 잡힌 최고 의사결정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리더 간의 이견이나 갈등으로 자원의 낭비가 막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핏의 민첩한 투자 롤 모델 삼아

조지 로버츠

조지 로버츠

이처럼 리스크가 다분한 ‘투 톱 리더십’의 주인공이 KKR의 공동 회장이자 공동 CEO인 헨리 크래비스와 조지 로버츠다. 둘은 아주 특별한 관계다. 동갑내기 사촌지간으로 유아 시절부터 함께 자랐고 같은 대학을 졸업한 후 같은 직장에서 일했다. 그렇다 보니 상대방의 눈빛만 봐도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워낙 두터워 아주 어릴 때 이후론 다툰 적조차 없다고 한다. 이런 리더들을 둔 까닭에 KKR은 엄연히 상장회사지만 가족기업으로 통하기도 한다.

두 사람은 1960년대 후반 베어스턴스에서 대표적 사모투자 기법의 하나인 LBO(Leveraged-Buy-Out)에 입문했다. 그들을 LBO라는 신세계로 이끈 인물은 제롬 콜버그였다. 콜버그는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부채로 조달해 비상장기업을 인수하는 LBO의 선구자였다. 콜버그와 팀을 이룬 두 사람은 특히 상속 문제에 봉착한 가족기업 인수에서 연이어 큰 성공을 거두며 회사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었다.

다만 투자의 회수 기간이 문제였다. LBO의 특성상 사업을 개선해 기업 가치를 높여 매각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단기 성과에 매몰된 베어스턴스의 최고경영진은 인내심이 부족했다. 결국, 세 사람은 76년 회사를 떠나 창업에 나섰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세 동업자 이름의 이니셜을 사명으로 한 KKR이었다.

조지 로버츠(George Roberts)
KKR 공동 회장 겸 공동 CEO

출생연도 1944년(77세)

최종 학력 캘리포니아주립대학 헤이스팅스 로스쿨(1969년 졸업)

개인 자산 70억 달러(2021년 1월 기준, 포브스)
미국 93위·세계 308위

KKR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건 사모투자를 둘러싼 환경에 두 가지 큰 변화가 생기면서다. 첫째는 78년의 법 개정으로 퇴직연금의 사모투자 규제가 완화된 것이었다. 이는 곧 KKR의 외연 확장으로 이어졌다. KKR은 기관 투자자로의 고객 다변화와 함께 펀드의 규모를 크게 늘릴 수 있었다. 둘째는 정크본드의 급성장이었다. 그동안 외면받던 투기등급 채권이 80년대 들어 ‘정크본드 제왕’ 마이클 밀켄에 의해 재탄생한 것이다. 그러자 정크본드 발행을 통한 인수 자금 조달이 봇물을 이루며 투자 규모가 급증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헨리 크래비스

헨리 크래비스

80년대는 그야말로 LBO의 대도약기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KKR이 있었다. 선도주자 KKR의 뒤를 이어 블랙스톤, 칼리일 등 PEF의 설립이 줄을 이었고, LBO는 틈새 투자가 아닌 주류 투자 기법으로 당당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당시 LBO 열풍의 정점을 찍은 것도 크래비스와 로버츠였다. 89년 식품·담배제조기업 RJR 나비스코를 무려 250억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인수하면서다. 투자 규모로 역대 최대였고 그 후 17년 동안 깨지지 않은 기록이었다.

그런데 이 거래는 두 사람에게 양날의 칼로 작용했다. 우선 치열한 인수 경쟁에서 드러난 두 사람의 공격적인 면모는 세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금융 자본이 산업 자본을 압도하는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모양새였다. 동시에 두 사람은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다. 인수 가격의 적정성 시비에 휩싸였고, 거래의 이면을 파헤친 소설과 영화(Barbarians at the Gate)에 등장하며 냉혹한 기업 사냥꾼의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볼 때, RJR 나비스코 인수는 유명세에 비해 경제적 실익이 없는 투자였다. 지분을 완전 매각하기까지 15년이 걸린 데다 7억5000만 달러의 손실이 발생하는 등 ‘승자의 저주’에 시달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90년대에 들어서며 시장 상황마저 급변했다. 밀켄이 구속되며 정크본드 시장이 유명무실해지자 LBO의 자금줄이 막힌 것이다. 그러자 두 사람은 고객 달래기에 나섰다. 무리한 투자의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수수료 체계를 대폭 조정해야 했다. 또 이익이 많이 난 거래를 중심으로 투자금을 회수해 고객들에게 상환했다.

헨리 크래비스 (Henry Kravis)
KKR 공동 회장 겸 공동 CEO

출생연도 1944년(77세)

최종 학력 컬럼비아대학 MBA(1969년 졸업)

개인 자산 68억 달러(2021년 1월 기준, 포브스)
미국 102위·세계 315위

크래비스와 로버츠는 2000년대에 들어 사업 다각화에 박차를 가했다. 투자의 대상을 부동산·인프라·크레딧(대출·채권)·헤지펀드 등으로 확장하고 아시아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그러면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안정적인 자금의 확보였다. 지켜야 할 조항이 까다롭고 상환 부담이 큰 펀드 투자금과 달리 KKR이 임의로 투자할 수 있는 ‘영구적 자본’을 확충하는 것이었다. 투자 기회를 포착해 빠르게 집행하고, 일시적인 시장 충격에도 흔들림 없이 초장기 투자를 이어가려면 주식 발행 등을 통한 자체 자본력이 필요했다.

모두의 편익 늘려 더 큰 수익 전략

두 사람이 추구한 건 워런 버핏의 사업 모델이었다. 버핏이 거둔 성공 투자의 원천이 바로 영구적 자본이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에 목격한 버핏의 민첩한 투자는 두 사람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금융위기를 맞아 KKR이 리스크 관리에 부심하고 있을 때, 오히려 버핏은 골드만삭스·GE 등에 대거 투자하며 바겐세일을 즐기는 모습을 씁쓸하게 지켜봐야 했다. 사실 KKR은 2007년에 주식 상장 직전까지 갔었다. 하지만 경쟁사 블랙스톤에 선수를 뺏긴 후 갑작스러운 시장 상황 악화로 2010년에야 뜻을 이룰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이끈 변화는 지난해 팬데믹 위기의 대응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동안 축적한 자체 자본과 대규모 고객 투자금을 기반으로 기업 인수는 물론 대출 등 크레딧 투자에 빠르고 과감하게 뛰어든 것이다. 위기감이 극에 달했던 3월부터 6월까지 KKR은 총 127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집행해 대형 PEF 중 1위를 차지했다. 이는 2위에서 4위까지 3개 사의 투자액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큰 수치였다.

그렇다면 현재 크래비스와 로버츠가 그리고 있는 사모투자의 큰 그림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투자다. 투자 기업의 주주만이 아닌 모든 이해관계자의 편익을 증진해 궁극적으로 더 큰 투자 수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평소 두 사람이 강조하는 ‘KKR이라는 브랜드에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관점과도 같은 맥락이다. 두 사람은 지난 반세기 동안 업계의 변화를 선도했듯이 이번에도 PEF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KKR(KKR & Co. Inc.)
설립연도 1976년

설립자 제롬 콜버그, 헨리 크래비스, 조지 로버츠

업종 금융서비스업(사모투자운용)

운용 자산 2340억 달러(2020년 9월 기준)

직원 수 1600명(2020년 9월 기준)

경쟁 않고 이익 칼같이 나눠 굳건한 파트너십 유지
크래비스와 로버츠의 공동 CEO 리더십은 KKR의 가장 값진 자산으로 꼽힌다. 사업 모델이나 투자 전략 등과 달리 누구도 모방하기 어려운 경쟁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리더십의 기저에 깔린 두 사람의 두터운 신뢰 관계는 많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런데 두 사람이 생각하는 신뢰의 비결은 의외로 단순하다. 관계를 설정하는 여러 요인 중에서 잠재적 갈등 요인 두 가지를 해결한 데 있다는 것이다. 첫째 ‘자의식’을 내세우지 않는다. 혈연이라는 가족애로 시작해 단짝 친구라는 우정까지 더해진 결과 상대방에 대해 자기중심적 사고나 경쟁심이 없다는 얘기다. 두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서로가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얘기할 정도다. 둘째는 ‘경제적 이익’의 명확한 배분이다. 두 사람은 회사 지분은 물론 모든 권한을 정확히 나눠 가지고 있다. 심지어 주 활동 무대도 서로 달라 크래비스는 동부의 뉴욕, 로버츠는 서부의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며 KKR을 이끌고 있다. 그러니 합심해서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어 전체 이익을 키우는 데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최정혁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jhchoy@hycu.ac.kr
골드만삭스은행 서울 대표 및 유비에스·크레디트스위스·씨티그룹 FICC(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자산관리학과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 등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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