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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자동차 동승자가 하차하다 떨어져 다쳤다, 누구 책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정세형의 무전무죄(38)

도로교통공단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교통사고는 총 22만9600건, 1일 평균 629건에 이른다. 그중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1만5708건으로 사망자는 295명, 부상자도 2만5961명이나 된다.

이 통계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자전거 등의 교통수단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승용차나 승합차, 화물차 등과 같은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는 이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동차와 관련해 발생하는 사고도 워낙 빈번해 각종 법률이 제정되어 있다.

자동차 사고와 관련해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법률로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도로교통법’,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들 수 있다. 이들 법률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용어를 살펴보면,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은 ‘운행’, 도로교통법은 ‘운전’,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교통사고’이라는 표현이다.

자동차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자동차와 관련한 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진 pxhere]

자동차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자동차와 관련한 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진 pxhere]

언뜻 보기엔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이들 용어는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고, 민·형사 등 법적 책임과도 연결된다. 이번 글에서는 각 법률에서 규정하는 용어의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

우선,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은 자동차의 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보장하는 자동차보험에 관한 것이다. 이 법에서는 ‘운행’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 의미에 대해 사람 또는 화물의 운송 여부와 관계없이 자동차를 그 용법에 따라 사용하거나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동차를 그 용법에 따라 사용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에 대해 대법원은 자동차의 용도에 따라 그 구조상 설비돼 있는 각종의 장치를 각각의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며 자동차가 주행이 아닌 상태에서 각종 부수적인 장치를 사용하는 것도 이에 포함한다고 본다.

대법원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법의 취지에 맞게 그 개념을 상당히 넓게 해석하고 있다. 자동차 ‘운행’에 관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구급차로 환자를 병원에 후송한 후 구급차에 비치된 들것(간이침대)으로 환자를 하차하던 중 잘못 조작해 환자를 땅에 떨어뜨려 상해를 입게 한 경우, 이는 자동차의 운행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가 있다. 또 동승자가 주차한 자동차에서 하차하다가 차량 밖의 터널 바닥으로 떨어져 다친 사고도 자동차의 운행으로 인한 사고라고 보았다. 이 외에도 화물차량을 운행하던 중 적재물의 적재상태가 불량함을 느끼고 도로변에 차량을 세운 후 적재물을 정리하던 중 적재물이 떨어져 사고가 발생한 경우도 자동차 운행 중의 사고에 해당한다는 하급심 판례도 있다.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과는 달리 도로교통법에서는 ‘운전’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운전’의 개념에 대해서는 도로교통법상의 도로에서 차마를 그 본래의 사용 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자동차운전’은 자동차의 원동기를 사용하는 고의의 운전행위로, 엔진의 시동뿐만 아니라 발진조작의 완료까지 요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움직이게 할 의도 없이 다른 목적을 위해 자동차의 원동기 시동을 걸었는데, 실수로 기어 등 자동차의 발진 장치를 건드려 원동기의 추진력에 의해 자동차가 움직이거나, 불안전한 주차상태나 도로여건 등으로 인해 자동차가 움직이게 된 경우는 자동차의 운전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술에 취한 사람이 자동차 안에서 잠을 자다가 추위를 느껴 히터를 가동하기 위해 시동을 걸다가 실수로 자동차의 제동장치를 건드렸거나, 처음 주차할 때 안전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원동기의 추진력에 의해 자동차가 약간 경사진 길을 따라 앞으로 움직여 피해자의 차량 옆면을 충격한 사안에서 법원은 자동차를 운전했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았다. 그 결과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혐의를 받던 운전자에게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처럼 도로교통법에서 정하는 ‘운전’은 주·정차 상태에서 각종 부수적인 장치를 사용하는 것도 포함하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서 정한 ‘운행’의 개념보다는 좁은 개념으로 해석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살펴보자.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대한 형사처벌의 특례를 정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데, ‘교통사고’의 의미에 대해 차의 교통으로 사람을 사상하거나 물건을 손괴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동차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면 민 형사책임이 따른다. 자동차 운행으로 인한 사고에 해당하는지는 자동차 보험 적용과 직결되는 문제다. [사진 pxhere]

자동차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면 민 형사책임이 따른다. 자동차 운행으로 인한 사고에 해당하는지는 자동차 보험 적용과 직결되는 문제다. [사진 pxhere]

대법원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서 정하는 ‘차의 교통’은 차량을 운전하는 행위 및 그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밀접하게 관련된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고 본다.

이와 관련된 사례를 살펴보면, 트렉터(추레라)를 운전하던 사람이 피곤하고 잠이 온다는 이유로 편도 2차로의 도로에서 2차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불법주차한 채 아무런 안전 조치 없이 운전석 뒤 칸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오토바이로 통닭 배달을 다녀오던 피해자가 이 차량 뒤 적재함 부분을 추돌해 상해를 입게 되었고, 트랙터 운전자는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기소가 되었다. 그런데 법원은 이 사고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상의 교통사고로 인해 업무상과실치상죄를 범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았지만 트랙터는 공제에 가입되어 있었기에 결국 위 운전자는 형사처벌을 면하게 되었다.

다만 대법원에서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의 ‘교통’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서 정한 ‘운행’보다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의 입법 취지와 자동차 운행으로 인한 피해자의 보호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의 입법 취지가 서로 다른 점과 ‘교통’이란 원칙적으로 사람 또는 물건의 이동이나 운송을 전제로 하는 용어인 점 등을 고려한 것이다.

화물차를 주차하고 적재함에 적재된 토마토 상자를 운반하던 중 적재된 상자 일부가 떨어지면서 지나가던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이 있었다. 이때 위 사고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서 정한 ‘교통사고’에 해당한다고 보면 자동차가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된 경우 운전자는 형사처벌을 면하게 되지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정한 ‘교통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게 되면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상죄가 성립해 자동차종합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이 사안에서 법원은 피고인이 화물차를 피고인의 가게 입구 앞 노상에 주차하고 하역작업을 시작한 후 약 1시간이 지나서야 발생한 점과 사고 발생 당시 화물차의 운전석은 비어 있었고 시동이 꺼져 있었으며 차의 열쇠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정한 ‘교통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결국 운전자에게는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상죄가 인정되었다.

자동차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면 민사책임이 문제가 된다. 특히 자동차 운행으로 인한 사고에 해당하는지는 자동차 보험 적용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또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형사책임도 문제 될 수 있다. 가해자냐 피해자냐를 떠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사고가 발생했다면 관련 규정과 사례를 꼼꼼하게 확인해 보는 것이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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